UPDATED. 2024-03-29 17:25 (금)
도덕경의 철학
도덕경의 철학
  • 교수신문
  • 승인 2021.02.05 13: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스-게오르크 묄러 지음 | 김경희 옮김 | 민음사 | 295쪽

 

오늘날 『도덕경』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도덕경』에 담긴 철학적 가르침에 대한 가장 현대적인 고찰

 

『도덕경』(또는 『노자』)은 20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동아시아인들에게 사랑받아온 고전이자, 현대에 들어서는 여러 문화권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될 뿐만 아니라 동일한 언어로도 새로운 번역들이 계속해서 시도되는, 전 세계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세계적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문화, 종교, 경제, 경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도덕경』 관련서들이 계속해서 출간되는 것을 보면 『도덕경』이 얼마나 폭넓게 읽히며 많은 이의 사유와 통찰을 자극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도덕경』은 다른 어떤 고전보다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난해한 책으로 유명하다. 특유의 간결함과 모호함으로 인해 단번에 읽히지도 않을뿐더러 내용의 전모가 명확하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마카오대학의 철학∙종교학과 교수로 도가 철학과 동서 비교철학 및 사회∙정치사상을 연구하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한스-게오르크 묄러는 이 책에서 『도덕경』의 그러한 난해함과 모호함의 “어둠”을 걷어내고 『도덕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읽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지침을 제시해준다. 중국어와 이탈리아어로도 번역되어 동서양의 『도덕경』 연구자들과 입문자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는 이 책은 『도덕경』의 성격과 구조, 본질과 핵심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과 통찰을 보여주며 오늘날 우리가 『도덕경』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도덕경』이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철학적 가르침을 전해주는지에 대해서 다채롭고도 깊이 있는 논의를 펼쳐 보인다.

 

하이퍼텍스트로서의 『도덕경』

 

‘『도덕경』의 철학’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도덕경』이 철학 텍스트임을 강조하고 철학적 관점에서 『도덕경』을 해석하겠다는 지은이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 책은 『도덕경』을 불가해한 수수께끼로 가득한 신비주의적 텍스트로 치부하거나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도교의 경전으로만 보는 관점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이 책은 두 가지 측면에서 『도덕경』이 철학적으로 의미 있는 텍스트임을 분명히 한다. 첫째, 『도덕경』은 성립 초기(기원전 4-3세기경)부터 소수의 정치적 리더들에게 사회, 더 나아가 우주의 질서 확립과 좋은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철학적 토대를 제시하려는 정치철학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둘째, 『도덕경』의 철학적 가치는 과거의 어느 시기에만 유효했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도덕경』은 “무위(無爲, 행위하지 않음)”와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함)”이라는 격률을 통해 근대 이후 서양 문화에서 당연시해온 인간적 행위주체성 개념과 인간주의적(humanist) 관점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경』을 철학 텍스트로 인정하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특히 서양의) 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까닭은 『도덕경』의 내용상의 불명료함과 불가해함 때문이다. 이 책은 『도덕경』의 그러한 불명료함과 불가해함은 우리가 현대의 철학 저술에 기대하는 것을 오래전 전혀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 탄생한 이 고전에도 기대하는 해석학적 오류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본다. 『도덕경』이라는 텍스트는 읽히기 위해, 특히 21세기 독자들에게 읽히기 위해 저술된 것이 아니었다. 『도덕경』은 격언들의 모음집으로서 수세기에 걸쳐 분량이 점점 늘어나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으며, 초창기에는 저술의 형태가 아니라 구두로 전해졌다. 그것은 암송되기 위한 것이지 정독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도덕경』은 우리가 철학 텍스트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세 가지 요소, 즉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한 명의 저자, 명확하게 제시된 주제, 시작과 끝을 포함하는 일정한 순서가 없다. 이런 점에서 지은이는 『도덕경』을 일종의 하이퍼텍스트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의 하이퍼텍스트 역시 한 명의 명확한 저자가 결여되어 있고 시작과 끝이 없으며 특정한 한 가지 사안만을 다루지도 않는다. 일직선으로 전개되는 논의나 줄거리를 따라 펼쳐지는 선형적 텍스트들과 반대로 하이퍼텍스트는 풀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지은이는 “『노자』를 일종의 하이퍼텍스트로 다룬다면, 즉 비선형적임에도 불구하고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자료들의 모음집으로 다룬다면 그때 ‘어둠’은 사라지고 『노자』는 정말로 ‘온갖 오묘함의 문[衆妙之門]’이 될 것”(26쪽)이라고 말한다.

 

『도덕경』을 효과적으로 읽기 위한 지침서

 

『도덕경』에서는 어떤 주제가 여러 장과 여러 구절에 걸쳐 조금씩 변주되면서 반복적으로 출현한다. 각 장들과 각 구절들을 연결하고 각 부분들 사이의 응집력을 갖게 하는 것은 선형적으로 전개되는 논리적 구성 방식이 아니라, 변주를 통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들이다. 일정한 패턴 없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듯 보이는 이 이미지들(골짜기, 물, 뿌리, 수레바퀴, 갓난아이 등등)은 유사성과 연관성에 의해 서로 연결된다. 『도덕경』은 이 이미지들이 수사학적 연결 고리가 되어 각 부분들이 복합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미지들의 그런 네트워킹과 상호 참조를 통해 철학적 의미를 드러낸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제1장에서는 그 이미지들을 촘촘하게 쫓아가면서 『도덕경』이 전하려는 철학적 메시지들을 분석해 보인다. 만일 우리가 오늘날의 철학 텍스트를 읽듯이 『도덕경』을 읽기를 고집한다면 『도덕경』의 독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제1장은 『도덕경』의 효과적인 독해를 위한 지침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후의 장들의 토대가 되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장부터는 제1장에서 제시한 독해 전략에 따라 『도덕경』이 담고 있는 철학적 내용들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구체적으로는 성, 정치, 전쟁, 정서, 욕구, 시간, 죽음과 관련된 문제들을 둘러싸고 『도덕경』이 어떤 철학적 입장을 보여주는지를 고대 그리스 철학이나 기독교의 세계관, 근대의 계몽주의 등과 비교해서 분석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드러난 『도덕경』의 철학이 현대인들이 당연시해온 관념들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인다.

 

인간주의적 사유에 대한 반성이자 대안

『도덕경』의 비(非)인간주의적 관점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도덕경』은 자유, 권리, 정의, 민주주의 같은 현대 정치철학의 주요 개념들을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도덕경』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는 시대착오적이거나 이질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도덕경』의 이런 특성이 오히려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관념들과 인간관, 세계관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외재적 준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자신이 쓰는 언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국어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듯이 자신이 어떻게 사유하는지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으로 철학하고 사고하는 것을 연구하는 게 중요하다. … 이 텍스트는 사람들이 너무나 친숙해져 있는 것을 달리 생각하고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13쪽) 지은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도덕경』은 우리가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한 대안들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더 적극적인 가치를 갖는다고 본다. 그 대안적 지점을 그는 인간주의(humanism)에 도전하는 탈(脫)인간주의와 공명하는 『도덕경』의 전(前)인간주의에서 찾는다. 근대 이후 서양 문화를 지배해온 인간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등장한 탈인간주의적 사유를 발전시키는 데 『도덕경』의 비(非)인간주의적 또는 전(前)인간주의적 관점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비인간주의적 관점은 “더 진실되고 겸손한 자기 기술이다. 그것은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또는 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를 고려할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하는 척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하는 척해서도 안 되는 게 무엇인지를 고려하는 자기 기술이다. 그것은 적어도(at least) 그리고 마침내(at last) 인간들을 많은 곤란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270쪽) 제10장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도덕경』의 비인간주의적 입장을 강조하면서 책 전체를 개괄한다.

 

이 책은 전체 분량에 비하면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이 책에 대한 한 서평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간결하면서도 우아하게 제시되어 있는 10개의 장에서 한스-게오르크 묄러는 철학 및 초기 도가를 연구하는 이들이 틀림없이 흥미롭게 생각할 비교 연구의 쟁점들과 텍스트의 쟁점들을 폭넓고 다양하게 탐구하고 있다. 묄러는 특히 『도덕경』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비인간주의적’ 철학을 강조하면서, 그런 철학이 개인과 사회 및 세계에 대한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던지는 도전들을 개괄한다. 그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몇 가지 예를 들자면 텍스트 자체의 특성으로부터 정치, 전쟁, 윤리, 성, 욕구, 죽음과 죽음의 형벌에 대한 견해들, 그리고 영속성 개념에 이르기까지 수도 많고 종류도 많다. … 묄러의 책은 이 텍스트에 대한 보통의 분석이나 번역에서는 볼 수 없는 흥미로운 관점들과 통찰들을 제공하고 있다.”(Erica Brindley, “Book Review”, in Journal of Chinese Philosophy, 35(1), 2008, p. 185) 이 책은 『도덕경』에 대한 해석적 지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도덕경』을 활용해 오늘날에도 여전히 쟁점이 되는 철학적 주제들을 다루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에 더 천착하고 더 많은 철학적 주제를 다루는 데 『도덕경』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독자들에게 열려 있는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