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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한국사회에 넘겨준 자본주의 착취구조
일제가 한국사회에 넘겨준 자본주의 착취구조
  • 김채수
  • 승인 2021.02.02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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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글로벌시대의 도래와 홍익종군의 정신 10
자본주의세계에 대한 일본의 문호개방과 일본의 한국지배 

일본은 서구에서 자본주의가 완성되어 나온 19세기 중반 신흥자본주의국이었던 미국에 의해 강제로 문호를 개방 당했다. 일본은 순전이 서구로부터의 기독교 유입을 차단해갈 목적으로 서구문화권과의 무역으로부터 취해지는 다양한 국익을 통째로 포기하고, 그때까지 200여년이상 쇄국정책을 단행해 왔었던 나라였다. 그랬었지만, 서구의 근대화된 무기들의 위력을 당해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문호개방을 계기로 일본도 영미 등과 같은 자본주의국들의 세계에 편입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당시 일본의 국력은 갑작스런 근대산업자본의 보유가 불가능했었던 관계로 청일전쟁 전까지는 미국과 같은 서구 열강 국들에 비해 턱없이 약했다. 일본은 문호개방이 채 10년이 되기도 전에, 재래경제체제가 완전 붕괴되어, 그 때 이후는 미국의 자본력에 의해 완전 컨트롤 당하지 않을 수 없는 나라로 전락했다. 

그러자 일본은 그러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한 방책으로, 미국이 자신들에게 행했었던 것처럼, 미국의 치밀한 코치 하에, 다시 말해 미국과 협잡해서, 그들 중심의 외교수법과 무력을 동원해, 굳게 닫혀있던 조선의 문호를 일본과 서구의 자본주의세계에 개방시켰다. 그 결과 그러한 강제적 문호개방이 계기가 되어, 한국도 일본과 더불어 서구의 근대산업자본주의세계의 일원으로 편입되지 않을 수 없게 됐던 것이다. 그 후 조선의 서구화가 행해지는 과정에서 그것이 조선보다 한발 더 빨랐던 일본은 자신들에게 행했던 미국의 태도를 모델로 해서 조선에 대해 마치 ‘창조주’와도 같은 절대적 존재의 대리인 격의 행세를 취해 갔었던 것이다. 

일제의 조선에 대한 그러한 행세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이 조선보다 더 빨리 서구의 근대산업자본력을 끌어들여 그것을 활용해 감으로써였다. 일제는 한국을 자신들의 식민지국으로 만든 다음, 우선 그것을 자신들과 동일한 자본주의사회로 전환시켜 나갔다. 그러고 나서 일제는 자본주의사회에서의 그 사회질서를 지배해가는 경제력을 이용해 한국인들을 절대빈곤상태로 몰아넣은 다음에 당시 외국인들에 대해 서구의 정치적 지도자들이 취해가는 절대적 존재의 대리인 격의 행세를 취해갔었던 것이다. 

일제가 한국사회를 절대빈곤상태로 몰아넣는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절대빈곤상태란 의식주해결이 불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한일합방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조선은 농업중심국으로서 의식주해결을 자체적으로 능히 해결해갈 수 있는 국가였었다. 그러나 문호가 개방되어 일제와 서구열강의 자본주의국가들의 세계에 맞물리게 됨에 따라, 한국의 면·삼베·비단, 곡물, 그리고 목재 등과 같은 의식주 자료들이 공출물들로 아니면 거의 헐값에 팔려, 게다가 면세 형태로, 철도로 연결된 원산·인천·군산·부산 등의 항구 등을 통해 일본으로 줄줄이 흘러나갔다. 그 결과 결국 한국인들은 절대빈곤상태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생명체들이 생존해가는 지구상의 모든 지역들에는 가뭄·홍수·산불 등과 같은 자연재해나 혹은 인재가 발생하지 않는 한, 각 지역들에는 그 지역의 기후에 적응해 나름대로 생존해 가는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의 종류나 수는 적자생존과 생존경쟁 등의 법칙들에 의거해 자연스럽게 조절된다. 자연의 법칙에 의거해 인구와 생산량이 조절되어왔었다는 것이다. 한반도에 존재하는 인간들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들도 사실은 그러한 자연의 법칙에 입각해 생존 해왔다. 따라서 일제가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그러한 것들을 한국인들로부터 여러 명목으로 빼앗아가지 않았었던들, 한국인들은 절대로 그러한 절대빈곤상태에 빠져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이 절대빈곤상태로부터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1980년대로 들어 와서 부터였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30여년이 지난 후까지도 한국인들은 그들이 겪었던 그 절대빈곤상태의 물질적 폐해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들은 7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제가 한국인들에게 넘겨준, 친일파 특권층 중심의 자본주의 착취구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강점기 때 받은 정신적 피해는 아마도 해방으로부터 1세기 후에나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김채수 전 고려대 교수·일어일문학
일본 쓰쿠바대에서 문예이론을 전공해 박사를 했다. 2014년 8월 정년퇴임에 맞춰 전18권에 이르는 『김채수 저작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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