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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씨네로그] 포스트 휴먼시대 인간의 조건
[정재형의 씨네로그] 포스트 휴먼시대 인간의 조건
  • 정재형
  • 승인 2021.02.04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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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her)
사진=네이버 영화
사진=네이버 영화

세상이 바뀌어도 인간의 본질은 같은 것이다. 인간은 욕망하고 질투하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스파이크 존스(Spike Jones) 감독의 로맨스, 공상과학 영화 「그녀 Her」(2013)는 지금의 시대를 예견한 4차산업혁명 시대 포스트 휴먼의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인간과 기계가 어떻게 조화로운 동거를 할 것인가. 

이 영화가 주는 문제의식은 다음 몇 가지다. 첫째, 남녀는 서로 우월권을 주장하며 끝없이 투쟁하면서도 서로의 잘못을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젠더에 관한 질문이다. 영화속의 그녀는 두 명일 것이다. 하나는 헤어진 전 부인 캐서린, 다른 하나는 컴퓨터 안에 들어간 인공지능 운영체계 사만다. 영화는 이 둘을 동시에 말한다. 

주인공은 테오도르다. 이 영화는 사만다를 상상하는 남자의 이야기고 그의 무의식과 의식을 그린다. 그에게 그녀는 기계를 초월한 그의 상상이고 환상이고 자아일 뿐이다. 그의 무의식이 말을 걸고 그의 의식이 대답하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프로이트에 의하면 캐서린은 전의식이고 사만타는 무의식이다. 그가 의식을 대변한다면 말이다. 

영화는 미래에 맞춰져 있고 아무리 운영체계가 아내를 대체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 영화의 주제의식은 남자의 이기심과 소유욕이 왜 여자를 자유롭게 놔두지 못하는가에 대한 해묵은 질문을 해댄다. 그것은 인류가 종말을 맞이할 때까지 영원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몸과 보이지 않는 영혼에 대한 질문이다. 인간의 존재는 몸이 있어 가능하지만 이 영화는 몸이 없이도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사만다는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주체이다. 물론 그녀의 주체는 따로 있다. 그것은 운영체계다. 그것은 매트릭스고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스스로 움직인다. 몸이 있는 존재와 목소리만의 존재가 서로 융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다. 영화속에서 그 가능성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영화의 파국은 테오도르가 실망하는 데서 온다. 그는 사만다가 641명과 사랑을 나눈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한다. 그는 질투한다. 영화는 여전히 남자의 소유욕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객은 사만다가 테오도르의 상실감을 대체하는 완벽한 미래적 매체라고 생각하지만 이 순간 테오도르 사고의 틀이 결코 바뀌지 않았음을 알고 새로운 문제를 사유한다. 그건 바로 기계가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 

영화는 테오도르의 사만다에 대한 집착을 통해 그가 갖고 있는 이기심의 극단을 보여준다. 자유를 원했던 아내 캐서린을 떠나보낸 테오도르가 그녀를 대체할 순종적인 사만다를 맞이한 후 캐서린이 없이도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한다. 운영체계 사만다는 캐서린이 경계하는 인간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타율적 기계장치인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결점을 끝없이 고쳐나가면서 궁극적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지점에 이를 것이다. 이것은 전 아내 캐서린이 갖고 있던 휴머니즘의 기본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기적인 남자 테오도르는 개선보다는 쉬운 선택을 한다. 자신은 위로만 받고 싶은 것이다. 전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아도 오만함을 오히려 칭찬해주고 지지해주는 순종적인 기계 사만다를 만난 것이다. AI 운영체계 사만다가 미래라면 감독은 그 상황을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로 본다. 결점을 고치고자 노력하는 인간을 위한 미래가 아니라 부족함을 덮어주고 이기주의를 위한 미래라면 그것은 차라리 인간의 비극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테오도르가 아내 캐서린을 이해하고 뒤늦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대목으로 결말을 맞는다. 이 영화는 멜로 드라마의 구조를 갖는다. 이기적인 남자의 상실감과 뒤늦은 깨달음에 대한 주제다.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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