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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노동자’라는 말의 무게
‘지식 노동자’라는 말의 무게
  • 교수신문
  • 승인 2021.02.0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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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유연한 노동의 시대, 되풀이되는 역사
어떤 이들의 노동은 더 무겁다

각 학기가 수업으로 기억된다면 방학은 별 특징 없이 흐릿할 때가 많다. 그 와중에 2019년 여름방학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박사과정을 들어오고 나서는 이런 저런 장학금과 연구비로 연명을 하지만, 논문에 돌입하기 직전에 생활비가 유난히 부족했다. 학교의 근로장학금도 놓쳤다. 결국 일하게 된 곳은 용산의 대형 쇼핑몰에 입점한 키즈카페였다. 알바 동료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이었고 나는 젊은 사장과 2살 밖에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았다. ‘왜 이 나이 먹도록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애써 질문을 참는 그들의 눈빛 앞에서 ‘대학원생입니다’라고 실토했다.


문제는 무례한 손님들이다. 지금은 코로나로 한산해졌겠지만, 당시엔 여름방학과 대형 쇼핑몰이라는 조건이 겹쳐 키즈카페는 늘 아이들로 북적댔다. 가게에 도착하기 몇 미터 전부터 보이는 바글거리는 모습에 일을 하기도 전에 지치곤 했다. 그러나 정말 고된 쪽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었다. 네 다섯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서로 자기를 봐 달라고 아우성치고, 레고를 밟아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난리는 차라리 귀여운 편이었다. '왜 우리 아이는 안 봐주세요?' '왜 우리 아이가 먼저 왔는데 저 애를 먼저 입장시켜요?' '여기 일한 지 얼마 안되셨구나?' 쏟아지는 컴플레인들. 사실 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언어 자체보다는 팔짱을 끼고 위아래로 훑어보는 시선이 알바생들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아이를 향한 부모의 사랑이 때로는 타인에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왜곡되어 강화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키즈카페에서 일하는 두 달 동안 여러 번이고 ‘나는 본업이 있는데’ 되뇌었다. 이 말은 손님 앞에서 부서지고 갈려 나가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자기 주문과도 같았다. 한편으로 그럴 때마다 ‘나는 무엇이 그리 대단한 존재인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제는 많이들 인식하듯 대학원생도 ‘지식노동자’다. 하지만 내가 키즈카페에서 겪은 '노동'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 매일 낯선 사람으로부터 어떤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내게 될지 노심초사하는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다. 각자가 처한 노동의 무게 아래서 어떤 이들의 노동은 감히 말하자면, 버거울 정도로 더욱 무겁다.


나는 프랑스로 넘어간 북아프리카 이민자들의 노동운동과 권리투쟁을 연구하고 있다. 양차대전으로 황폐해진 산업을 복구하기 위해 대량의 노동력이 필요했던 프랑스와 생존의 길을 모색하던 북아프리카인들의 필요가 맞물려 수많은 이민자들이 지중해를 건넜다. 그들이 남긴 기록물에는 프랑스인과 비교해 같은 일을 하더라도 현저히 적은 임금을 받는 처지와 열악한 환경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었다. 작업장과 사회에서 마주하는 낙인과 차별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변화를 호소하는 목소리도 생생했다.


노동은 물질적인 것을 위한 투쟁이면서 감정적인 것들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과정임을 목격한다. 동시에, 당시에는 유럽 경제에 필수적인 존재였다가 이제는 애물단지 취급 받는 이민노동자들의 역사가 '유연한 노동'의 시대에 사람만 바꿔 되풀이되고 있음을 느낀다. 예상치 못한 팬데믹으로 그 당시 함께 일했던 친구들은 키즈카페를 떠나야 했을 것이다. 힘들게 일을 하면서도 알바비를 차곡차곡 모아 젊은 날의 계획을 세우던 친구들의 꿈이 잠시나마 멈춘 것 아닐까 마음이 아프다.


나는 아직도 스스로 지식노동자라 일컫는 일이 부끄러울 때가 많다. 지식 생산과 전달의 거대한 책임감을 맡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지식이 자기개발에 머물지 않고 영향력을 가진 노동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깊다. 경험은 계량화할 수 없지만, 연구자라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현장에서의 만남이든, 책이든 상관없다. 숫자로는 담아낼 수 없는 삶의 현장과 감정들이 지천에 있다. 노동자의 역사를 연구하는 지식노동자의 삶을 선택하고, 차츰 이 직업의 책임감을 받아들이는 노정 속에서 나의 논문을 진심으로 격려해줬던 키즈카페 친구들의 응원이 자주 생각날 것 같다.

 

 

 

 

 

조영지

서강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프랑스 히잡금지법을 둘러싼 라이시테와 페미니즘 담론을 중심으로 논문을 썼다. 현재는 1950년대 공산주의 및 생디칼리슴에 영향을 받은 알제리 이민노동자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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