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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씨알이 서 있습니다"
"거기 씨알이 서 있습니다"
  • 김용준 교수
  • 승인 2004.06.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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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교수의 내가 본 함석헌41

<씨알은 외로와서는 아니됩니다. 우리는 많은 동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우선 그 소식부터 전해드려야겠는데, '씨알의 소리'가 할 일이 있다면 바로 그것인데 그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신문 잡지가 뭐 하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라디오·텔레비는 정말 약과 술과 화장품이나 팔아먹기 위해 있는 것입니까? 그래 그것이 문명이요 근대화요 복지요 번영입니까?
팥은 풀어져도 솥안에 있다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진 우리의 동지들은 살았나, 죽었나, 목을 졸리우고 있나, 살을 뜯기우고 있나, 알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현실을 씹으십시오. 현실이란 의미를 덮는 누더기입니다. 들여다보십시오. 들여다보면 뚫어집니다.
눈에 아니 뵈는 것은 눈으로 보지 말란 말이요 귀에 아니 들리는 것은 귀로 들으려 하지 말란 말입니다. 씨알은 듣지만 귀에 있지 않습니다. 보지만 눈에 있지 않습니다. 말하지만 입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서 뺏겨진 것은 보다 더 힘있게 보고 듣고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눈으로보다 귀로보다 입으로보다 손으로보다 더 힘있게 가지는 것은 사랑입니다.
씨알은 사랑입니다. 나찌스의 포로수용소에서 존재의 밑바닥까지를 내려가서 체험하고 사람은 의미에 살고 보람에 산다는 것을 밝혀내어 로고테라피(말씀의 고침)를 부르짖는 오스트리아의 프랑클은 그 수용소 안에서 악마같은 파수병들의 혹독한 매질을 당하면서도 사랑하는 아내 생각을 하니 "그녀가 옆에 있건 없건 몸으로 살아 있건 죽었건 상관없이 그녀와 대화를 계속할 수 있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거기 있더라"했습니다.
사랑하십시오. 사랑하는 자를 명상하십시오. 거기 있습니다. 있어서 말을 합니다. 지나간 날의 기억을 되새기는 것만 아닙니다. 산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금의 뜻을 말해주고 장차 올 역사의 방향을 말해줍니다.
거기가 어디입니까. 거기입니다. 거기를 알기 위해 물을 필요도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거기 이르기 위해 무슨 일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거기 선 자리에 있는 그 모양 속에 있습니다. 거기 너와 나와 우리는 있습니다.
거기 도둑놈 없습니다. 어떤 문명의 기술을 가지고도 거기 못 들어옵니다. 거기 여우도 없고 사냥개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기 감출 것도 잃을까 두려울 것도 업습니다. 그러므로 자연 미워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자유입니다.>(전집 8:126-127)

위의 함 선생님의 글은 '씨알의 소리'지 1974년 4·5월호에 '거기 씨알이 있습니다'라는 글의 일부이다. 언젠가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지만 일제시대 '성서조선' 사건으로 일년간 옥살이 하셨을 때 형사들의 취조는 그 심문의 수준이 선생님이 때로는 감탄하실 정도로 높았는데 요새 심문하는 사람들은 그 정도가 도무지 저질이어서 일일이 대꾸하기가 민망할 정도라고 한탄하시었지만 같은 호에 실린 이미 소개한 '民主靑年學生聯盟 事件과 우리의 反省'이라는 글보다는 '거기 씨알이 있습니다'라는 글이 훨씬 더 깊은 내용이 담겨져 있는데 이 글은 삭제가 되지 않고 게재된 것을 보면 당시의 검열한 사람들의 수준도 가히 짐작이 간다.

이 글에 나오는 '프랑클'이라는 사람은 세계 2차대전 중에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경험한 비참한 체험을 근거로 1947년에 'Ein Psycholog erlebt das Konzentrationslager'라는 저서를 발표한 'Viktor Emil Frankle'이라는 오스트리아 빈대학 교수를 가리키며 그는 프로이드의 '쾌유를 향한 의지'와 '권력을 향한 의지'를 제창한 아들러(Alfred Adler)를 대비하면서 '의미를 향한 의지'라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여 '로고테라피'(Logotherapy)라는 실존분석적 정신요법을 창시한 정신의학자로서 유명하다.

함선생님은 당시의 암울한 사회를 개탄하시면서 소리도 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눈물을 흘리시며 '거기 씨알이 서 있습니다'라는 글을 쓰셨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당시의 상황은 석연하게 풀리지 않지만 여하튼 총장의 발령에 따라 일본으로 떠나려던 나는 비행장에서 여권을 압수 당하고 출국이 정지되었던 것이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 사실을 보고 받은 김상협 총장은 즉각 당국에 항의하였다는 것이고 이미 정 목사의 글에서 정보부와 군의 보안사령부 사이에 불협화음이 감지되지만 여하튼 나의 여권을 압수한 기관은 보안사령부였던 것 같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집을 떠나기 전에 당시의 문교부장관과 정보부 판단기획실장과 전화로 작별인사까지 나누었다는 사실 자체가 마치 내가 굉장한 사람이나 된 것 같은 우스꽝스런 일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다시 한번 나의 출국에 지장이 없는지를 확인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린 행위였던 것이다. 여기서 당시의 내 주변상황을 자세히 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예상했던 대로 즉시 체포가 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마치 허공에 떠 있는 사람같이 며칠을 하릴없이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고려대학교 교수휴게실에 앉아있는 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김영광 실장의 음성이었다. 지정된 날짜에 자신의 정보부 사무실에 출두해달라는 것이었다. 분명히 강제성을 띈 말은 아니었다. 정 목사의 글대로 보안사령부의 혐의가 풀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김영광 실장으로부터 직접 여권을 되돌려 받았고 그의 지시대로 조용히 출국한 것이 4월 19일이었다. 4·19라 나는 이 날짜를 기억하고 있다.

동경 하네다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와세다 대학교의 외사과장이 나를 마중하러 나와있었다. 원하면 당장 객원 교수 숙사로 안내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하루 이틀 그저 멍하니 쉬고 싶었다. 그래서 외사과장에게 사연을 말하고 객원교수 숙사에는 며칠 후에 들어가기로 하고 우선 동경의 아까사까 도큐호텔에 투숙하였다. 우선 호텔 방에서 한숨 자고 일어나니 다소 시장기를 느껴서 거리고 나갔다. 길 건너에 한식집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길가에서 신문을 사서 펴 보았더니 그사이에 국내에서는 김동길 및 김창국 교수가 체포되었다는 기사가 일면에 실려있었다. 그 순간 나는 철퇴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이 눈앞이 아찔하였다. 내가 붙들려갔어야 했던 것을 두 김 박사가 나 대신 붙들려 간 것 같이 느껴졌다. 우선 두 분께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지난 6월 4일 동아일보에 '팬티 고무줄에 새겨진 '옥중편지'', '74년 '민청학련사건' 수감 김찬국 前총장 부인 성창운 씨와 주고 받은 '속옷편지'공개'라는 기사를 보고 다시 한번 그 당시를 회고하며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동갑인 김창국 교수도 이제는 노환으로 병석에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도 오래 됐는데 그의 근황이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 때부터 75년 3월 20일에 귀국할 때까지 11개월간의 동경의 생활은 4년간 체류했었던 미국생활보다도 나의 평생에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경험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것을 일일이 소개하는 것은 본고에서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됨으로 생략하기로 하겠다. 다만 '민청학련'사건과 관련하여 한국 KSCF 이사장의 자격으로 일본 NCC(일본 교회협의회) 및 일본 기독자교수협의회의 후원을 얻어서 '한국기독교학생운동총연맹 사건 진상조사 국제위원회'를 조직하여 한국에 파견했던 일, 물론 당시의 중앙정보부의 허락을 받고 참석한 일이지만 당시 WCC(세계교회협의회) 주최로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에서 개최되었던 '과학·기술 그리고 인간개발'이라는 국제회의에 6월 중순경 한 10일간 참석하여 세계적인 석학 및 저명인사와 만날 수 있었던 일, 그리고 영국의 '가디언' 신문의 동경 특파원의 간청으로 김지하 시인의 '五賊'이라는 시를 특파원과 같이 영역하여 '가디언'지에 게재하였던 일, 그리고 미국 '기독교고등교육재단'(United Board for Christian Higher Education in Asia)의 아시아 이사로 피선되어 그 첫 모임에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었던 일은 본고에 분연해놓고 싶은 중요한 사건들로 기억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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