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9:50 (목)
순수함을 지킨 자가 무한의 권력을 쥔다
순수함을 지킨 자가 무한의 권력을 쥔다
  • 정단비
  • 승인 2021.02.04 09: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자가 말하다_『절대군주를 위한 궤변 - 공손룡에 대한 정치론적 이해』 정단비 지음 | 도서출판 수류화개 | 378쪽

제자백가 명가 공손룡의 궤변 속
지도자와 권력에 대한 위험한 사상

진정한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 이 질문에 대한 유가의 결론은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말했다. 토톨로지처럼 보이는 이 유교 정명론의 캐치프레이즈는 자신이 맡은 역할에 걸맞은 실재를 갖추기 위해 인격수양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도덕주의를 담고 있다. 맹자로 넘어가면 리더답게 팔로워들을 이끌지 못한 리더는 더 이상 리더일 수 없다는 혁명론이 추가된다. 유가에서 이름과 실재의 올바른 짝짓기를 결정하는 것은 곧 덕목이다. 리더로서의 덕목이 없다면 리더는 더 이상 리더가 아니다.

현재 미국의 상황을 보자. 트럼프의 행동이 과연 ‘리더다운’ 덕목을 갖춘 것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답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4년 전 선거에서 승리했고, 여러 가지 잡음에도 여전히 그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다수의 지지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끊임없는 언론과 여론의 비난에 대해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한 국가의 대통령을 비방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반박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대통령답기 때문에 대통령의 지위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리더'에 대한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이미 리더가 된 자에게 정의, 평등, 평화, 합법 등 추가적으로 덕목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한 번 대통령은 영원한 대통령이며 그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셈이다.

대통령에게는 임기가 있지만 왕이라면 어떨까? 왕의 리더십을 덕목이 아닌 지위로만 평가한다면, 그 사회는 더욱 공포스럽고 위태로울 것이다.

지위로 덕목을 덮다

제자백가의 여러 학파 중 명가에 속한 공손룡은 “흰 말은 말이 아니다(白馬非馬)”라는 궤변을 펼쳤다. 겉보기와는 달리 공손룡의 주장은 흰색의 말을 말이라는 전체 집합에서 제외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희다는 특정 성질로 ̒말̓이라는 대상을 한정시켜서는 안 된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흰 말을 곧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순간 희지 않은 말은 배제된다고 주장한다. ̒공정한 리더̓를 ̒리더̓와 동일시하는 순간 공정하지 않은 리더는 곧 리더일 수 없게 된다. 이는 군주의 힘을 분산시키는 일로, 공손룡은 이를 부당하다고 여겼다.

여섯 편으로 이루어진 『공손룡자』의 다른 편들은 인간의 지각과 사물 간의 관계, 색상이나 동물의 결합 등을 예로 들어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내면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는 순수한 것이 더 우월함을 일관성 있게 주장하며, 순수함을 유지한 것만이 정명(正名)을 이룰 수 있다는 정명론으로 전체를 마무리한다. 이 과정에서 공손룡은 명칭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은 곧 임금과 신하가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과 같아서 이러한 정명론이 곧 국가의 영속성과 연결된다고 밝히고 있다. 외부 영향에서 자유로운 순수성의 유지는 물론 군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공손룡은 군주와 신하, 스승과 제자 등 각 역할의 독립성을 앞으로 내세우지만, 쌍방간 힘의 우위가 명확할 경우 더 큰 힘을 가진 자의 독재를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공손룡은 군주와 신하 간에 갈등이 생길 경우, 군주의 영향력만 남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렇듯 특징이나 조건에 제한되지 않는 명칭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공손룡 특유의 정명론은 한정된 특징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영원과 보편을 아우를 수 있다는 노자의 가르침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호오를 드러내지 않고 원칙 뒤에 자신을 숨기는 지도자가 무한의 권력을 쥘 수 있다는 법가의 틀과 유사한 논리다.

명칭의 순수성을 강조하다

기존 연구에서는 『공손룡자』 여섯 편을 정치적, 철학적 함의가 없는 여러 궤변의 짜깁기로 보았다. 그러나 그의 백마론과 정명론을 관통하여 이해했을 때, 정치적 함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권력이 도덕을 대체해가던 전국시대의 상황을 잘 반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철학과 동떨어진 이론이 아니라 노자에서 시작해서 한비자로 이어지는 신비주의 절대군주를 옹호하는 흐름의 중간 과정을 잘 드러내고 있고, 여섯 편의 서로 다른 궤변이나 묵경(墨經)의 조각글 짜깁기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관성 있는 하나의 사상을 전달하고 있는 것임을 볼 수 있다. 권력의 순수성을 이론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도 보여줘, 21세기정치 현실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의미를 갖는다.

 

 

서울대 강사·동양철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