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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잠식한 ‘가짜뉴스 바이러스’
남아공 잠식한 ‘가짜뉴스 바이러스’
  • 장용규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소장
  • 승인 2021.01.20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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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한국어로 세방화(世方化)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이 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로 ‘세계적 경제 시스템의 통합과 지역별 정치문화의 분화가 동시에 벌어지는 경향성’을 가리킨다. 영국의 사회학자 롤랜드 로버트슨이 만든 말이다. 금융과 무역으로 촘촘히 연결될수록 문화적, 국가적 반목은 심화되는 오늘날의 역설적 현실이 이 표현에 담겨 있다. 세계 각 지역 이슈와 동향을 우리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유수의 해외지역학 연구소 전문가의 통찰을 매주 싣는다. 세계를 읽는 작은 균형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해 12월 26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아발론 묘지에서 코로나19바이러스 사망자 매장을 준비하는 모습 사진=AP연합
지난해 12월 26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아발론 묘지에서 코로나19바이러스 사망자 매장을 준비하는 모습 사진=AP연합

 

지난 1월 5일,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에테크위니(eThekwini, 더반)시에서 무선송전탑 3개가 전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남아공 <선데이 타임즈>에 따르면 이 사건은 “최근 코로나19바이러스 확진자가 급증하는 원인이 5G 무선통신망과 관련 있다는 루머에서 시작되었다”라고 한다. 실제 사건은 에테크위니 시의원 시피소(Sifiso Mngadi)가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것은 없고, 무선송전탑을 통해 전파되는 5G 전자파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주장한 다음날 발생했다. 이에 대해 에테크위니 시장인 시흘레(Sihle Zikalala)는 시피소의 주장을 “헛소리”라고 일축하고 “보건당국의 과학적 견해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라며 가짜 뉴스의 근절을 촉구했다.

 

코로나19 방역 대응 ‘아프리카에서 최악’

 

단순 해프닝으로 보이는 이 사건 이면에는 코로나19를 대하는 남아공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 불만이 담겨 있다. 남아공 코로나19 상황은 아프리카 국가 중 최악이다. 남아공에서 첫 코로나 확진자가 보고된 것은 2020년 3월 5일. 지난해 말, 남아공 코로나 확진자는 117만 590명을 기록했다. 불과 10개월 사이에 백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온 것이다.

새해 들어서도 상황이 호전되는 것 같지는 않다. 현재 하루 평균 1천 500명가량 신규 확진자와 400명대의 사망자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1월 8일에는 하루 만에 2만1천 980명의 확진자가 나와 정점을 찍었다. 여기에 연초부터 감염력이 높은 남아공발 변이 바이러스가 확인되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남아공 정부는 방역 3단계를 선언하고 필수 시설 외에는 실질적인 ‘락다운’에 들어갔다. 

남아공 보건부는 “문제해결은 집단 면역이며 이를 위해 전체 인구의 67%가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남아공 정부는 올해 말까지 4천만 명(전체 인구의 67%)에 대한 백신 접종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계획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남아공 같은 개발도상국은 백신 수송과 냉동보관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여기에 백신 관련 예산이 확보되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계획대로 진행되어도 정부가 예상하는 집단 면역은 빨라야 올해 말이다. 코로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국민에게 남아공 정부의 발표는 희망보다 낙담을 던져 주는 것처럼 보인다.

 

화웨이가 우한과 남아공에 무선망을 심었다

 

사회적 불안감과 무기력은 각종 음모론이 퍼지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사람들은 쉽게 가짜뉴스에 빠져들게 한다. 유럽에서 코로나를 ‘아시아 질병’이라고 부르며 아시아인에게 적대적 시선을 보내는 일이 대표적이고 에테크위니 송전탑 전소 사건도 마찬가지다. 사실 코로나19와 5G 연계설은 지난해 4월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코로나19가 5G 송신탑을 통해 퍼져 나간다는 루머가 퍼지면서 버밍햄 등 몇몇 지역에서 송신탑이 파괴되고 직원이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사한 사건이 8개월 만에 남아공에서 재현된 것이다. 왜 갑자기 남아공에서 일 년 전 루머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중국에 대한 남아공 국민의 부정적 정서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의 진원지로 우한이 지목되면서 남아공에도 ‘코로나=중국(아시아)’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공교롭게도 남아공에서는 현재 중국 화웨이 그룹이 무선통신망을 5G로 업그레이드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화웨이 그룹은 팬데믹 이전에 중국 일부 지역에서 5G 송신망 시범사업을 시작했는데, 우한도 그중 한 곳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5G 전자파를 통해 인체 면역시스템을 공격한다는 루머가 나돌기 시작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였다. 이런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였을까? 지난해 6월, 화웨이 그룹은 남아공 국민들이 바이러스와 싸우는 것을 돕기 위해 5G와 인공지능을 연계한 코로나19 추적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화웨이의 선의는 ‘코로나=5G’라는 편견으로 왜곡된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에 대한 마땅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시피소 시의원의 가짜뉴스는 일부 에테크위니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 불만에 불을 질렀다. 5G를 타고 퍼지는 위험 바이러스는 코로나19가 아니라 ‘가짜뉴스’ 바이러스였다.

 

 

 

장용규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소장

남아공 크와줄루-나탈대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한국아프리카학회 회장과 외교부 아프리카지역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춤추는 상고마』(한길사, 2003)를 썼고 『아프리카 종교와 철학』(지만지, 2010), 『상징의 숲』(지만지, 2020) 등 책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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