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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이야기_산야를 점령하는 송전선과 송전탑
생각하는 이야기_산야를 점령하는 송전선과 송전탑
  • 이도원 서울대
  • 승인 2004.06.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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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에 와서 빈 시간 하나를 만난다.
온 나라의 산과 언덕을 오르내리며
잇달아 금을 긋는 송전탑 송전선들이 사라진 곳.

시인 황동규 교수는 우포늪의 아름다움을 그렇게 봤다. 아름다움을 앞에 두고 어두운 기억이 시인의 마음으로 왔다. 그의 시간에는 예사 사람이 보는 아름다움 옆으로 흉물스러운 것이 나란히 들어섰다.

시인의 기억처럼 숨 막히게 앞을 가로막는 송전탑과 송전선이 이 나라 곳곳에 슬금슬금 기어들고 있다. 마음에 여유를 달고 먼 곳을 바라보면 어김없이 거슬리는 풍경이 다가온다. 멋있는 풍경을 사진에 담자고 보면 턱 하니 한 자리 버티고 나타난다. 바쁜 일상으로 이런 모습을 인식할 틈이 빼앗긴 것은 다행일까. 시각 예술가들의 눈에는 이런 경관이 어떻게 비치는 것일까. 이러한 모습이 마침내 자아낼 생태는 또 어떨까.

송전선이 하는 주요 기능은 전기 이송이다. 그러나 이는 이 땅에 검은 그림자도 드리운다. 전기가 긴 거리를 옮겨가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삐져나온다. 그러게 버려지는 전기도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무언가 하게 된다. 버려지는 전기도 에너지고, 에너지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낭비되는 에너지가 좋은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송전선은 하늘을 갈라놓고 다른 요소들이 가로질러 건너지 못하게 하는 장벽 기능을 가진다. 지나가는 새들은 고압 전류가 흐르는 공간에 장애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강한 전기 흐름이 이웃한 주민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잘 모르는 일이다.

송전탑이 세워지는 곳에는 땅을 파고 노출하니 토양 침식도 생긴다. 그렇게 땅을 떠난 흙 알갱이들은 낮은 지역 물에 흘러들어 물에 사는 생물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그들이 먹이를 찾고 잠잘만한 곳을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몰골사나운 모습으로 다가서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이 땅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뒷면에 작용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기에 따라 여러 가지 작용이 들어 앉아 있지만 전력을 생산하는 곳과 사용하는 곳이 거리를 두게 된 일과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전기를 먼 곳으로 이송해야 하니 길고 굵은 전선이 필요하다. 무거운 전선을 지탱하자니 철탑도 생겨났다. 삼천리 금수강산, 아름다운 조물주의 작품에 흉물스러운 덧칠을 하고 있다.

이 모습의 뒷면에는 또 오늘날의 에너지 정책이 버티고 있다. 한 곳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중앙집권적 전력에너지 생산 방식이 그것이다. 이는 원자력 발전소 건립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대량으로 생산된 전기를 먼 곳으로 보내자니 어쩔 수 없이 비싼 값을 치려야 하는 송전탑과 송전선이 필요하다. 밤 동안 전기가 남아도니 양수발전소로 낭비를 줄여볼 궁리도 하게 된다. 이 또한 가련한 땅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그래서 내가 자주 가는 강원도 인제의 진동계곡에 양수발전소가 들어서고 있다. 아름드리 거목들을 베어내고, 이름과 달리 아름다운 개불알꽃의 서식지를 불도저로 밀어내었다. 이제 하늘에서 인공위성으로 내려다보면 숲 경관에 큰 구멍이 보인다. 이는 세세손손 살아온 터주 야생동물의 위세를 꺾어놓는 한 가지 길이다. 경관생태학자들은 이런 결과를 서식지 구멍내기 또는 천공이라 한다.

우리나라에 이미 19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고, 2006년에는 23기로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더 많은 송전탑과 긴 고압 송전선이 전국 곳곳의 경관을 가로질러 건설될 것은 당연하다. 더욱 흉물스럽게 될 삼천리 금수강산이 될 것이 뻔하다. 그런데도 이러한 요소가 사람과 생물들에 미칠 영향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 환경 훼손 현상들이 비용편익분석에 어느 정도 반영되는지 아직 제대로 된 대답을 들어본 적도 없다. 에너지 집중생산체제에서 분산생산체제로 갈 수 있는 정책전환도 고려해봐야 하는데 그런 논의도 그다지 들리지 않는다.

사실은 여기에서 자연생태가 정책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그런데도 인간생태로 오면 그것들은 거의 항상 따로 논다. 정책을 다루는 집단은 현장생태에 마음을 열 여유가 없고, 생태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정책에 눈을 돌릴 새가 없다. 두 세계를 연결하는 일이 쉽지 않으나 이 땅을 지키자면 필요하다. 그런데도 진전 없는 세월은 가고 있다. 누군가 시급히 다리가 되어야 할 틈이 거기에 있다.

이도원 / 서울대 사회생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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