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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노인들…하루하루가 ‘기적’인 사람들
요양원 노인들…하루하루가 ‘기적’인 사람들
  • 교수신문
  • 승인 2021.01.1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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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이 아니라 인생을 배우는 중입니다 (요양보호사가 쓴 요앙원 이야기) | 전계숙 지음 | 일월일일 | 284쪽

언젠가 마주해야 할 마지막 여정
그래도 존중 받아 마땅한 삶
존엄하게 죽을 권리는 공허한 메아리

# 좀 낡긴 했지만, 응접실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집에서 음악가 출신의 금슬 좋은 노부부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에게 마비 증세가 나타난다. 지성인답게 부부는 침착하게 대응한다. 병원에도 가고 약도 열심히 먹는다. 그러나 아내는 병세가 점차 악화되고 치매에 반신불수가 된다. 주위에선 요양시설에 보낼 것을 권하지만 남편은 이를 거절하고 집에서 아내를 수발하기로 한다. 자존심 강한 아내를 남의 손에 차마 맡길 수가 없었다. 본인도 늙어서 힘에 부치자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면서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아내의 병세는 차도가 없고 남편은 점점 지쳐간다. 아내가 기억도 몸도 사위어만 가던 어느 날, 더 이상 비참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남편은 마침내 결행을 한다. 침대에 누운 아내의 얼굴에 베개를 얹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누른다. (영화 「아무르」, 미카엘 하네케 감독, 2012년 개봉작).

# 장-루이와 안느는 50여 년 전쯤에 애틋한 사랑을 함께 나눈 적이 있는 사이다. 2019년 장-루이는 치매환자로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의 특이 행동은 교육 프로그램을 거부하고 늘 혼자 정원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 생각에 잠기거나 어떤 여자 이야기만 한다는 것. 이 요양원에 안느가 찾아온다. 장-루이 아들의 부탁으로. 그러나 장-루이는 안느를 끝내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이 기억하는 ‘과거의 안느’ 이야기만 계속 늘어놓는다. 안느는 그것이 자기임을 알아채지만 모른 체한다. 장-루이는 자기 기억 속의 안느와 비슷한 안느를 만나면서, 안느는 여전히 호기로운 전직 바람둥이 카레이서 장-루이를 만나면서 서로 행복해했던 젊은 시절의 추억을 한 자락씩 잘라내어 유쾌한 시간들을 만들어나간다. (영화 「남과 여: 여전히 찬란한」, 클로드 를르슈 감독, 2020년 개봉작).

이 두 영화는 결은 약간 다르지만 우리가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할 생의 마지막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요양보호사 겸 작가인 전계숙은 이렇게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거나 요양시설에 입소해 있는 어르신들의 일상을 ‘하루하루가 기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의 근작 『돌봄이 아니라 인생을 배우는 중입니다』(책익는마을, 2020)는 그가 요양보호사로 3년 동안 ‘어르신 돌봄’을 하면서 그 분들이 이승과 이별해가는 과정을 지켜본 기록이다. 

존중 받고 돌봄 받아 마땅한 삶

‘죽음과의 교전이 한창인 요양원에서, 지극히 조용하지만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하루하루를 기적처럼 살아내는 어르신들 곁을 지키며 ‘죽음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경건하고 숙연하게 맞이하도록 돕는 일, 그래서 삶의 마지막 날들이 아쉽지 않도록 거드는 일’을 하는 전계숙 요양보호사는 사명감을 갖게 된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각기 다른 역사를 간직한 어르신들이 고단한 잠에 빠져 계신다. 어쩌면 꿈속에서는 고향 집도 가보고, 밭에 나가 감자도 캐고, 아내와 달큰한 대화도 나누고, 자식들 학비 걱정을 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 그 시절을 그리워할 줄 모르는 상태로 되돌아와도 괜찮은 삶, 존중 받아 마땅하고 돌봄 받아 마땅한 삶, 우리의 잣대로 규정해서는 안 되는 정말 소중한 삶들이 지금 내 곁에 있다.”

부모님에게 치매나 노환이 찾아오면 자손들은 우선은 집에서 보살피려고 한다. 그러다가 힘들어지면 요양병원으로, 더 심해지면 요양원으로 모시게 된다. 요양병원은 치료를 위한 곳이고 요양원은 돌아가실 때까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기 때문에 보통은 그렇게 한다. 그러나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그리 크지 않고 오히려 편견이 더 많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최근 요양시설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자주 발생하는 것도 그런 연유가 아닐까? 

코로나19의 창궐로 허둥지둥 한 해를 보냈다.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누가 숙주인지 가늠할 수도 없는 이 바이러스는 우리 앞길에 미답의 사막을 펼쳐 놓았다. 갈 길이 막막하다. 1년을 걸려서 백신을 만들었더니 벌써 변이가 나왔다고 한다. 기술로 치자면 이 바이러스가 인간을 이긴 것이다. 이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게 기적인 곳이 요양원만이 아니게 되었다.

피 흘려 혁명도 해봤고, 땀 흘려 경제 부흥도 해봤다. 그런 우리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석학 이어령은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것을 눈물, 즉 박애(fraternity)라고 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타인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 인간의 따스한 체온이 담긴 눈물 말이다. 새해에는 분노와 증오, 저주를 끝내자. 그 열정을 소외된 이들과 공감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위로를 베푸는 일에 쏟아보자.

 

 

김정규 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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