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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전시실을 나는 항공의 역사
[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전시실을 나는 항공의 역사
  • 박찬희
  • 승인 2020.12.28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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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본딴 전시장
정밀 복원된 임시정부 스탠더드 J-1
에어워크 따라 이륙하는 기분
ⓒ박찬희

만약 김포공항 곁에 박물관이 들어선다면 어떤 박물관이 좋을까? 지난 2020년 7월 실제로 그 곁에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박물관 이름이 국립항공박물관이다. 이곳은 세계와 한국의 항공 역사, 한국 항공의 현재와 미래를 전시했다. 더불어 항공과 관련된 다양한 체험 시설을 갖추었다. 김포공항이라는 장소성과 역사성에 어울리는 박물관이다.

무엇보다 박물관 건물이 강렬하다. 기본 형태는 거대한 원통형이며 빗금을 치듯 사선으로 창문을 설치했다. 눈 밝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언뜻 떠오르는 것이 있다. 비행기의 엔진으로 자주 사용되는 제트 엔진이다. 제트 엔진은 비행기의 심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엔진을 알고 있다. 박물관 건물은 제트 엔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원통형 건물을 두른 구조물과 창문은 엔진의 팬과 새의 날개를 본떴다. 인간의 오랜 꿈이 새처럼 훨훨 날아가는 것이었고 그 꿈이 항공 역사의 시작이었다. 인간의 꿈이었던 비상하는 새와 현재 그 꿈을 실현시켜주는 제트 엔진이 만나 박물관 건물을 역동적으로 만들었다.

 

ⓒ박찬희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제트 엔진이 떠오르는 공간을 마주한다. 박물관의 중심은 원형 광장이다. 이곳에서 천장까지 막힘없이 이어지고 천장으로 하늘이 보여 신성한 느낌을 주는 로마의 가톨릭성당인 판테온이 떠오른다. 항공의 역사는 신과 신화의 영역이던 하늘을 인간이 날아가고자 하는 열망과 도전에서 비롯되었다. 원형 천장에서 우산살처럼 사선으로 뻗어나가는 디자인으로 이곳에 선 관람객은 제트 엔진을 정면에서 보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로 인해 신성한 느낌에 뒤이어 하늘로 오늘 것 같은 상승감이 밀려온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은 외관이 조금씩 달라도 내부는 사각형을 기본으로 만든다. 사각형은 전시실을 구성하는데 상당히 효율적이며 관람객들도 사각형 전시실에 익숙하다. 때문에 원형은 박물관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활용하지 않는 다소 까다로운 형태다. 국내에서는 삼성미술관 리움 고미술관,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이, 국외에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원형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건축이다. 국립항공박물관이 제트 엔진을 기본으로 하는 원형 건축을 채택하던 순간부터 전시실은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해 섬세하게 풀어나가야할 과제였을 것이다.

 

ⓒ박찬희

박물관 내부에는 타원형의 전시 공간을 마련하였다.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건물 속에 건물이 들어있는 모습이다. 타원형의 전시 공간은 사각형 전시 공간을 구성하기에 적당하지 않다. 전시 구성의 핵심은 공간을 다양하게 변주하면서도 주제와 동선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1층 전시실 안으로 들어서면 곡면에 맞도록 다양한 형태로 구성한 전시 공간이 연속된다. 이 공간을 따라 주제와 주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 덕분에 관람객은 전시를 보며 지루해할 틈이 없다.

 

ⓒ박찬희

1층 세계 항공의 역사가 끝나고 대한민국 항공의 역사가 시작되는 곳은 반전의 공간이다. 관람객이 어두운 타원형 실내 전시 공간에서 나오면 갑자기 넓은 공간과 마주한다. 1층에서 천장까지 막힘이 없고 수많은 창문으로 빛이 들어온다. 박물관의 외벽과 내부 타원형 전시 공간의 외벽은 항아리처럼 밖으로 솟아올랐다. 그 사이의 시원하고 넓은 공간에 전시가 펼쳐진다. 공중에는 한국 항공의 역사를 수놓은 실제 비행기들이 떠있다. 이곳에서 둥그런 전시실의 장점이 잘 드러나 관람객이 전시실을 걸어가다 보면 곡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전시실 풍경이 하나둘 펼쳐진다. 그런데 이 전시실 후반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전시물이 열린 공간에 배치되어 관람객 입장에서는 주제의 흐름을 읽어내기가 다소 어려울 수 있다.
국립항공박물관 전시의 관건 가운데 하나가 비행기 전시다. 만약 실제 비행기를 구하기 못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전시할까? 우선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은 비행기를 복원해 전시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해 전시에 꼭 필요하지만 실물을 구할 수 없는 비행기는 정밀하게 복원하였다. 항공 역사의 시작을 알렸던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원래 크기의 1/4),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기 조종사를 배출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비행학교의 연습 비행기인 스탠더드 J-1, 안창남이 우리나라 상공을 처음 비행할 때 탔던 금강호가 복원되어 전시되었다. 특히 스탠더드 J-1은 매우 정밀하게 복원되어 내부가 잘 보이도록 반쪽을 개방했다. 
세계 항공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비행기들은 상당히 많다. 이 비행기들은 작은 모형을 이용하였다. 쉽게 구할 수 없는 모형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제작하였다. 세계의 항공 역사 전시실에는 세계 항공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모형 비행기들이 전시되었다. 비행기 초기 단계인 제1차 세계대전부터 냉전시대까지 중요한 비행기들이 한 진열장에 가득하다. 마치 다양한 물고기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해양 수족관을 보는 듯하다. 비록 실물은 아니지만 이곳을 보고 있으면 비행기가 시대에 따라 어떤 흐름으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한눈에 파악된다. 
복원품이나 모형이 아닌 실물로 주목되는 전시물은 엔진이다. 비행기 발달의 역사는 엔진 발달의 역사와 흐름을 같이한다. 엔진은 항공사적인 측면으로도 중요하지만 전시 대상으로서도 크기와 금속이라는 물성으로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세계의 항공 역사 전시실에는 본격적인 민간 항공의 역사를 열어간 미국 DC-3 쌍발기에 탑재된 엔진이 전시되었다. 이어지는 코너에서는 세계 최초의 제트 엔진인 휘틀 엔진이 보인다. 대한민국의 항공 역사 전시실에서는 금강호 기종인 뉴포르 17형 비행기 엔진을 만난다(이 엔진은 휘문고등학교 소장품이다). 점보 747에 탑재된 제트 엔진은 그 크기에 놀란다.

ⓒ박찬희

비행기 전시에서 가장 궁금한 건 실제 비행기를 어떻게 전시했을까라는 점이다.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이나 사천에 있는 항공우주박물관에서는 실제 비행기가 야외에 전시되었다. 제주에 있는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서는 좀 달라 비행기를 실내외에 전시했으며 일부 비행기는 실내의 천장에 매달았다. 국립항공박물관에서는 실제 비행기를 모두 실내에 촘촘하게 전시했다. 그것도 대부분 천장에 매달아 하늘을 날고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전시실 바닥에 전시하는 손쉬운 방법 대신 강력한 와이어로 천장에 고정시키는 어려운 방법을 택했다. 고생한 만큼 전시 효과가 커 비행기들은 선회 비행을 하는 거대한 새들처럼 보이기도 하고 공중에 매달린 설치 미술 작품 같기도 하다. 이 전시실에 들어선 관람객들은 공중을 나는 비행기를 마주하고는 깜짝 놀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2층 전시실로 올라가는 길은 박물관의 곡면을 따라 만든 긴 경사로 즉 에어워크다.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공중에 매달린 비행기와 점점 가까워진다. 관람객들은 활주로를 떠나 하늘로 올라가는 비행기처럼 땅에서 공중으로 올라가는 기분을 느낀다. 경사로에서 마주하는 비행기들은 1층에서 올려보는 비행기와 인상이 달라 더욱 실감난다. 이곳에 전시된 비행기들은 해방 이후 성금으로 구입한 비행기인 건국기처럼 한국의 항공 역사에서 중요한 것들이다. 따라서 이 경사로는 한국사에서 항공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변화했는지 생각해보는 길이기도 하다. 국립항공박물관은 원형 공간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전시하기 쉽지 않은 비행기를 어떤 방법으로 전시했는지 여러 측면으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례다.

박찬희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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