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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에도 상하좌우가 있다?
약에도 상하좌우가 있다?
  • 정민기
  • 승인 2021.01.11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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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연구, 이성질체 감별 촉매 개발 성공

1957년 8월 독일의 한 약국에 신약이 들어왔다. “임산부의 입덧을 없애드립니다.” 약국에 들른 한 남성이 신약 광고를 보고 잠시 망설인다. 약봉지 구석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각종 동물 실험에서 부작용이 발견되지 않은 기적의 약!” 남자는 약을 사서 집에 있는 아내에게 건넨다. 임신 2개월 차에 접어든 아내는 입덧이 심해서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약을 먹고 나니 기적처럼 입덧이 사라졌다. 그러나 8개월 후 산부인과, 부부의 마음은 찢어진다. 발가락이 7개 달린 기형아가 태어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1953년에 개발된 ‘탈리도마이드’라는 약이 기형아를 만든 것이다. 동물실험에서 부작용을 보이지 않은 약인데 왜 이렇게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한 것일까?

화학식은 똑같은데 좌우가 반대

문제는 ‘거울상 이성질체’였다. 거울에 비친 것처럼 상하좌우가 대칭인 물질을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부른다. 인체를 포함한 자연에 존재하는 단백질은 상하좌우 구조에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결핵 치료제 성분인 ‘에탐부톨’도 이성질체 문제를 안고 있다. 상하좌우가 다른 에탐부톨 이성질체는 실명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의약품 중 절반 이상은 이처럼 상하좌우에 따라 영향을 받는 화합물이 주성분이기 때문에 의약품의 개발 또는 생산 과정에서 거울상 이성질체의 순도는 항상 중요한 기준에 포함된다. 따라서 고순도의 단일 거울상 이성질체를 생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선택적 촉매 반응을 활용한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국내연구진, 이성질체 감별 촉매 개발

이성질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용주 포스텍 교수(화학공학과·사진) 연구팀은 이성질체 중 하나만 선택적으로 생산하는 촉매를 개발한 것이다. 윤 교수 연구팀은 백금 나노입자의 선택적인 표면 구조 노출을 통해 이성질체 중 하나를 선택적으로 생산하는 백금 나노촉매를 개발했다.

윤용주 교수(가운데)
윤용주 교수(가운데)

백금 나노입자를 이용

연구팀은 그중에서도 반응물 및 생성물과의 분리와 재사용이 쉬워 산업적 활용 측면에서 큰 장점이 있는 불균일계 촉매를 활용한 거울상 이성질체 선택적 촉매 반응을 연구해왔다. 수 나노미터 크기의 백금 나노입자 합성 과정에서 사용된 고분자들을 간단히 열처리함으로써 특정 표면 구조만 노출된 백금 촉매를 제조하는 데에 성공했다. 

또한, 노출된 특정 표면 구조와 거울상 이성질체 선택도 간의 관계 분석을 통해, 거울상 이성질체 선택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백금 나노촉매의 표면 구조를 규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가 높은 거울상 이성질체 선택도를 나타내는 금속 나노촉매의 설계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내다봤다. 더 나아가 이 기술은 단일 거울상 이성질체의 순도를 극대화해 인체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카이랄 의약품 제조 원천 기술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미국화학회가 발간하는 촉매 전문 학술지 ‘미국화학회 촉매지(ACS Catalysis)’ 에 발표된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우수신진연구사업과 LG화학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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