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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에게 '사이보그화'는 대안일 수 있나
그녀들에게 '사이보그화'는 대안일 수 있나
  • 강현아 전남대
  • 승인 2004.06.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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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후기 근대의 페미니즘 담론』(이수자 지음, 여이연 펴냄)

▲ © yes24
이수자의 책은 후기 근대사회에서의 여러 이슈와 관련된 페미니즘 이론의 논쟁을 토대로 이러한 논쟁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와 관련한 저자의 오랜 고민과 지난한 작업의 결과를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단순히 서구사회의 페미니즘 이론을 정리하거나 답습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실을 올바로 분석할 수 있는 '우회로' 또는 '길잡이'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이 책은 먼저, 우리 사회의 근대성과 사회의식을 '유교적 가부장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양성관계와 성별분업이 이것에 의해 형성, 고착화됐음을 분석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유교의 전통과 가치가 아직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여성노동 영역에서 '유교적 가부장주의'의 영향을 '절대적 변수화' 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의 이러한 위계구조와 성별분업구조가 유교적 가부장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은 서구사회의 그것과 어떤 차별성을 갖는지에 대한 이론적·경험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채, '유교적 가부장주의'만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한 논리전개일 뿐이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라는 경제구조적 측면을 도외시한 채, 문화비판적 접근만을 시도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한계일 수 있다.

다음으로, 근대의 산물인 여성/남성, 자연/문화, 몸/정신(이성)이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해체시키고 여성 주체를 몸과 노동, 섹슈얼리티의 통합적 담론 속에서 해석하려 했다. 이는 이분법적 경계 속에서 억압받고 차별받은 여성의 재생산, 감성노동, 성적 서비스노동(매춘, 행사 도우미 등)에 대한 가치를 재평가 할 수 있고, '친밀성의 구조'를 갖는 후기 근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여성의 관계맺기, 배려, 감성 등이 재평가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맑스주의의 생산중심적 노동개념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이분법적 경계 속에서 가치절하되는 여성의 다양한 노동영역을 재평가할 수 있는 이론적 관점과 그 틀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차별의 역사와 문화가 각인된 여성의 육체를 극복하기 위한 유토피아적 상상력 속에서 '기계의 육화'를 꿈꾼다. 그렇다면 대안은 '역사와 문화가 각인된 여성의 육체'를 극복하는 것인가, 아니면 '육체 그 자체'를 극복하는 것인가.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육체 그 자체의 극복으로서 사이보그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페미니즘 이론이 그토록 경계해 왔던 생물학적 본질주의의 함정에 빠지는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탈근대의 상징으로 디지털 정보사회에서 젠더 정체성의 조합과 분절을 통해 재조합되는 몸을 매개로 한 '유목적 주체'(nomadic subject)로서의 여성을 상정한다. 그렇다면, 탈근대적 디지털 정보사회라는 유토피아적 전망이 간단히 도출되는 것인가. 저자는 이러한 비판을 경계하기 위해서 디스토피아적 전망으로부터 벗어나 유토피아적 전망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전략이나 실천방법은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현실에 충실히 접목되지 않은 저자의 글쓰기를 따라 읽다 보면, '왜?' 또는 '어떻게'라는 의문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현실을 깊이 있게 천착한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페미니즘 이론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오랜 과제는 책읽기가 끝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하루 종일 힘든 사회노동에 집에 돌아와 가사노동까지 '노동'에 찌들어 남편의 잠자리 요구에는 그저 이혼당하지 않기 위해 '몸만 대준다'는 여성노동자에게 '사이보그화'라는 전망 제시가 과연 설득력있게 다가설까. 저자는 대안으로 후기 근대사회의 유토피아적 탈육체, 탈노동, 탈섹슈얼리티를 제시하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을 온전히 껴안고 살아가는 여성 주체들의 다양한 경험과 상상력으로 열려진 유토피아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강현아 / 전남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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