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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학연론
양명학연론
  • 교수신문
  • 승인 2021.01.1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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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보 지음 | 한정길 옮김 | 아카넷 | 680쪽

국권 회복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위당 정인보의 외침

‘본심을 회복하여 따뜻한 세상을 만들자’

위당 정인보가 1933년 9월 8일부터 12월 17일까지 66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한 동명의 논설을 현대어로 번역하고 해설을 붙여 펴냈다. 이 논설에서 정인보는 조선 학자들의 거짓됨을 비판하고, 양명학의 본지(本旨)와 주요 이론을 밝히며, 중국의 양명학사와 조선 양명학의 줄거리를 해명한다. 강화학파 학맥을 계승한 경학가요 경세가로서 정인보는 양명학에서 국권 회복의 방안을 찾았다. 이 논설에는 조선의 민중을 도탄에서 구제하려는 ‘구세 정신’과 학문의 종지가 잘 드러난다.

정인보는 조선 민중의 ‘본심(本心)’을 불러 깨움으로써 국난을 극복하고자 했다. 누구나 본래적으로 타고나는 본심 양지(良知)를 환기하여 과거 조선의 허식(虛)과 거짓(假)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당이 조선의 난치병의 뿌리(病根)라고 본 자사념(自私念, 자기 이익만 도모하려는 생각)은 ‘본심 회복’에서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본심은 타자(他者)에 감통하여 그와 하나 되는 힘을 지닌 까닭에 민중이 서로 돕고 구제할 방도가 된다.

정인보가 논술한 양명학 이론 및 사상은 구세의 저술 동기에 부합한다. 그중에서 가장 큰 공적은 조선의 양명학자들을 발굴하여 ‘조선양명학파’로 묶어 소개한 점이다. 정제두를 조선양명학파의 대종(大宗)으로 자리매김하고 그의 제자와 후학들의 학문을 폭넓게 소개했으며 특히 최명길이 양명학자임을 최초로 밝혔다. 이것은 정인보가 당대 최고의 양명학자 난곡 이건방에게 사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위당 이후로 조선양명학은 한국철학사를 이루는 주요 사상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양명학에 대한 정인보의 논술도 경세학으로서 양명학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정인보는 왕수인의 사구교(四句敎)에 대한 전덕흥의 이해가 일반 대중의 가르침으로 적합하고, 부정한 마음을 바로잡는 공부가 일반 대중에게 절실히 요구된다고 보았다. 또 왕간과 태주학파의 구세 활동을 높이 평가하거나 양명을 계승한 학자로 황종희 이외에 손기봉, 이옹을 함께 언급한 까닭도 이 책의 저술 동기와 맞닿아 있다.

정인보는 조선 민중의 단결된 힘을 요청하며 ‘마음속 깊이 쌓인 울분’을 토해낸다. 이념과 주의에 얽매여 대립하고 분열하며 사욕을 좇느라 서로 감통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울분이었다. 민중의 복리 도모와 국권 회복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려면 다른 사람의 곤고와 아픔을 내 것으로 느끼며 서로의 간격(間隔)을 해소해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남과 북의 분단, 보수와 진보의 분열, 양극화의 심화로 상호간의 소통과 공감이 절실한 시대에 본심으로 감통하여 따뜻한 세상을 만들라는 정인보의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본심은 감통에서 살고 간격에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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