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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과 경영
고전과 경영
  • 교수신문
  • 승인 2021.01.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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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희 지음 | 아트북스 | 288쪽

 

조선 왕들은 경연을 통해 끊임없이 공부를 했다. 조선의 왕들은 신하들과 토론을 통해 나라를 경영했고, 성군으로 알려진 임금일수록 경연에 참가한 횟수가 많았다. 그렇다면 왕실의 왕자와 공주들의 공부법은 어떠했을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예원합진(藝苑合珍)』은 조선 후기 왕실의 자제를 교육하기 위해 영조대에 만든 고전 학습용 그림책으로, 왕실에서 최고의 명필과 화원화가들이 참여하여 제작하였다. 글과 그림이 나란히 펼쳐져 있어, 오른쪽의 채색화를 먼저 보고 왼쪽의 글을 읽은 후에 고전의 의미를 파악하고 학습하기에 더없이 좋은 구성이라 하겠다.

왕실판 ‘차이나는 클라스’, 『예원합진』의 구성-24편의 시문(詩文)과 24점의 그림
우선 『예원합진』은 형(亨)·리(利)·정(貞)의 3권에 각각 8편이, 오른쪽에는 그림이, 왼쪽에는 글이 짝을 이루고 있다. 원래 『예원합진』은 원(元)·형(亨)·리(利)·정(貞)의 4권으로 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형·리·정의 3권만 남아 있다. 원·형·리·정은 『주역』에서 각각 봄·여름·가을·겨울을 말하며, 모두 위정자가 본받아야 할 덕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형권’은 진정한 인재를 찾아나서는, 리더가 신하의 자질을 살피는 내용으로, ‘리권’은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여유와 기상을 품을 것을, 사람 대 사람의 아름다운 관계에 대한 교훈적 내용으로, ‘정권’은 인간으로서 본성을 지키며 타인과 고결한 관계 맺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글의 출전은 『논어』, 『맹자』, 『서경』 등 사서삼경의 경전이나 『사기(史記)』 등 역사서, 두보(杜甫)나 굴원(屈原), 도연명(陶淵明)의 시문이나 대학자의 글에서 명구를 추려 가져왔는데, 글 뒤에는 출처나 작가가 적혀 있다. 글의 구성은 고전에서 일부를 취해 온 명구 혹은 그 내용을 줄여 옮겼으며, 내용은 선조들이 마음에 새겨둠직한 메시지로 묵직하면서도 매력적이다.

“「섬계회도(剡溪回棹)」는 그림 제목이자 곧 이야기의 주제이다. 여기서 취한 ‘회도(回棹)’란 노를 돌려 젓는 것이다. 힘차게 왔다가 돌아서는 순간이다. 조선 왕실에서 장차 국가의 경영을 맡게 될 어린 자제에게 이 그림을 펼쳐준 이유는 왕자유가 보여 준, 마음을 다스리는 철저함과 마음을 돌아보는 용기를 심어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감정이 지나쳐 전권을 휘두르기 전에 돌아보라. 친구집 문을 두드리기 전에 기억하라. 겨울밤 눈보다 빛난 우정, 돌아섰던 결단. 이 작은 그림이 다독이는 묵직한 가르침이다.”(205쪽)

글은 왕희지체나 동기창체, 소식의 서체를 잘 구사한, 조선 후기 예조판서와 평안도관찰사 등을 지낸 문신이자 서화가인 윤순(尹淳)이 모두 썼다. 책의 첫 페이지에는 정조의 인장이, 글 뒤에는 글을 쓴 윤순의 인장이 찍혀 있다. 그림 상단 왼쪽에는 넉 자로 이루어진 그림제목이 쓰여 있고, 글 하단 왼쪽에는 글의 출처가 쓰여 있다.

그림은 모두 영조대에 활동한 화원화가인 양기성(梁箕星)·진재해(奏再奚)·한후량(韓後良)·장득만(張得萬)이 그렸다. 그중 양기성이 총 24점 중 18점을 그려 가장 많이 그렸는데, 양기성은 왕실의 의궤 제작이나 어진과 공신 초상화 제작에도 참여한 바 있다. 각각의 화원화가의 필체가 수려한 채색으로 글의 내용을 섬세하게 표현해 내고 있으며, 고전에서 이미 글의 도상(圖像)으로 굳어진 이미지를 활용하거나 화원화가가 새로이 창작한 이미지 등으로 채색되어 있다.

『예원합진』은 현재 우리나라에는 없고 일본 나라현의 야마토분가칸에 소장되어 있다. 『고전과 경영진』은 저자가 2012년 두어 차례 야마토분가칸에 찾아가 『예원합진』을 실견하고 연구한 끝에 2020년 도판 사용료를 지불하고 출간하게 되었다. 책의 권두에서 ‘시작하기 전에’를 두어 『예원합진』 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고, 권말에는 「『예원합진』 육필본 영인」을 ‘부록’으로 실었다. 그동안 저해상의 도판으로 『예원합진』을 접해온 연구자들에게 ‘육필본 영인’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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