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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일본에서 일어난 일, 일어나지 않은 일
2020년 일본에서 일어난 일, 일어나지 않은 일
  •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 승인 2021.01.0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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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 서울대 일본연구소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한국어로 세방화(世方化)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이 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로 ‘세계적 경제 시스템의 통합과 지역별 정치문화의 분화가 동시에 벌어지는 경향성’을 가리킨다. 영국의 사회학자 롤랜드 로버트슨이 만든 말이다. 금융과 무역으로 촘촘히 연결될수록 문화적, 국가적 반목은 심화되는 오늘날의 역설적 현실이 이 표현에 담겨 있다. <교수신문>이 세계 각 지역 이슈와 동향을 우리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유수의 해외지역학 연구소 전문가의 통찰을 매주 싣는다. 세계를 읽는 작은 균형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시작은 동아시아다.

 

지난해 10월 26일 참의원 임시의회에 참석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사진=AP/연합
지난해 10월 26일 참의원 임시의회에 참석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사진=AP/연합

 

2021년은 21세기의 진정한 시작일지 모른다. 2020년 우리가 알고 지내던 세상이 저물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20세기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시작되어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끝났다던 홉스봄이 살아 있었다면, 2021년에야 진정한 21세기가 시작되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후세 역사가들은 2020년과 2021년의 경계를 기준으로 사라진 것들과 태어난 것들을 찾아내, 역사의 단층인 현재를 복원해 낼 것이다. 2020년이 저물고 2021년이 시작되는 시점에, 사라진 것들을 적어두는 것은 당대 기록가들의 몫일 것이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가 없었더라면 마땅히 나타났을,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묻혀버린 것들을 확인해 두는 것은, 법칙에 따른 전망을 업으로 삼은 사회과학자들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사라진 것 가운데 필두로 꼽을 만한 것이 아베 내각이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아베 시대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휘청거리다가 갑자기 막을 내렸다. 2020년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그 덕에 일본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이 있다. 헌법개정이다.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은 미완으로 끝났으며, 군사적 보통국가 일본의 등장에 유예가 주어졌다.


개헌 논의 틀어막은 코로나19


1년 전 지금쯤 일본사회는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의 해를 맞이하여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아베 총리는 1월 6일의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2020년을 “일본의 신시대를 개막하는 1년(日本の新時代を切り拓く一年)”으로 삼아 “전후 일본 외교를 총결산하고 그 위에 새로운 시대 일본 외교의 지평을 열어 나간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었다. 헌법개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도 드러냈다. ‘개헌 논의를 진전시키라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며, 이에 부응하여 자신의 임기 내에 헌법개정을 이루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전후 일본 외교의 총결산’에는 북일국교정상화, 러일평화조약 체결과 더불어 ‘신시대의 성숙한 중일관계’ 구축이 실천항목으로 들어 있었다. 이중 현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중일관계 개선이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국빈 방일로 분위기를 잡은 뒤,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성과로 삼아 헌법개정 가부를 묻는 총선을 실시하고, 2021년으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임기 만료 전에 개헌을 완수하겠다는 것이 아베의 목표였다.


이러한 아베의 계산은 코로나19로 크게 차질을 빚었다. 시진핑 주석의 국빈방일이 무산되었으며, 도쿄 올림픽 패럴림픽이 연기되었다. 이후에도 코로나19 대응을 둘러싼 아베 내각의 대응에 국민의 비난이 비등했다. 아베 총리는 지지율 반등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다가 건강문제를 구실로 퇴진을 선언했다.


이어 등장한 스가 내각은 아베 노선 계승을 내세웠다. 그러나 아베 노선 계승은 스가 총리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국내 정치에서는 ‘모리토모, 가케, 사쿠라’라고 하는 아베 정치가 남긴 부의 유산을 극복해야 한다. 외교에서도 아베 노선의 계승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아베 총리 퇴임 직후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은 미일관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외교적 과제에 대한 아베 내각의 실적에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외교적 난관 같이 계승한 스가 내각 공략해야


2021년 가을 일본은 중의원 임기가 만료되고 자민당 총재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날로 악화되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스가 내각에게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경제를 챙기겠다고 시작한 여행 장려책은 확진자 급증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연기된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의 개최도 다시 불투명해졌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도 안팎으로 부담이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외교 초심자인 스가 총리가 성적을 챙기는 것도 쉽지 않다. 시진핑 주석의 방일 재추진은 친 대만파, 대중 강경론자들에 밀려 난관에 부딪쳤다. 러일관계도 정체되어 있고, 북일관계는 꿈적도 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와의 관계 설정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동맹 강화와 국제협조를 통한 대 중국 포위망 구축에 일본이 선택을 강요받을 경우, 중일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스가 내각에게 현실적인 계산이 가능한 분야는 한일관계다. 그래서 한국이 관계 개선의 계기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스가 내각 등장 이후 대화와 접촉면이 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정세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원칙에 입각하면서도 현실적인 해법으로 한일관계 개선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고 있다.


2020년 일본에서 일어난 것과 일어나지 않은 것을 확인하면 2021년을 전망하는 가시거리가 길어진다. 포스트 코로나의 21세기가 헌법개정을 완료한 군사적 보통국가 일본의 등장으로 시작되지 않은 것을 기회로 삼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본격 가동시키는 것으로 진정한 21세기를 열어가는 지혜와 실천을 한국 외교에 주문한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일본 정치와 외교이며 현재 민교협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주요 논문과 저작으로 「정치 기획으로서 <반일종족주의>: 유령잡기에 도전함」(2020), 『기지국가의 탄생』(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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