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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혁명의 주체들
4월 혁명의 주체들
  • 교수신문
  • 승인 2021.01.0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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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제연 외 5명 지음 | 역사비평사 | 332쪽

 

4월혁명은 어떻게 학생혁명이 되었나?

4월혁명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대중적인 항쟁으로 집권자를 몰아낸 사건이었다. 비록 혁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획기적인 구조적 변화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이상을 현실화하는 데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기에 충분했다. 1960년 2월 28일에서 4월 26일까지 2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전국적으로 실로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여 민주항쟁을 벌였고, 이로 말미암아 집권자가 퇴진했다. 다른 제3세계 나라들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4월혁명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기본적인 특징을 형성한 사건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먼저 지속적인 항쟁을 벌이다가 어느 순간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여 대규모 민주항쟁으로 폭발했다. 특정 조직이 주도하기보다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연대하여, 도시를 중심으로 비폭력 또는 제한된 폭력만을 행사하며 항쟁하였다.

이 책 『4월혁명의 주체들』은 4월혁명에 참여한 다양한 주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4월혁명에는 학생에서 도시빈민에 이르는 다양한 계급 계층이 참여했고, 남성은 물론 광범위한 여성들도 참여하였다. 연령대별로도 주로 어리고 젊은 학생들의 활약이 돋보였지만, 노년층의 참여도 인상적이었다. 마산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주도하는 시위가 있었고, 부산에서도 고령의 노인이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대 맨 앞에 나서기도 했다. 그런데도 4월혁명은 흔히 ‘학생혁명’으로 불린다. 학생층, 그중에서도 대학생들과 지식인의 전유물처럼 되어버린 4월혁명.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계층의 참여는 왜, 무엇 때문에, 누구에 의해 지워지고 사라졌을까? 이 책이 4월혁명의 주체를 이야기하는 이유다.

4월혁명과 학생들

이 책에서는 4월혁명에 참여한 다양한 계층 중에 특히 학생, 도시빈민, 여성의 참여에 주목한다. 이들 세 계층은 4월혁명을 다차원적으로 살펴보려 할 때 매우 중요한 집단이다. 4월혁명은 흔히 ‘학생혁명’으로 불리는데, 민주항쟁 과정에서 학생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의 시위로부터 시작하여, 중고등학생들이 가장 먼저 부정선거에 반대하는 행동에 나섰고, 이들의 시위가 지속적으로 전개되면서 대학생과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추동했다. 대학생들은 뒤늦게 항쟁에 참여하였지만, 4월 19일 대규모 민주항쟁을 폭발시켰고, 이날 경찰의 발포로 1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하였다.

4월 19일은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민주항쟁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전환점이었다. 대학생들의 참여는 민주항쟁의 질적인 변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이 책에서는 학생들이 4월혁명에 참여 주체로 나서는 과정을 학생들 사이에 형성된 ‘조직’과 지역 및 인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규명하고 있다. 1950년대 학생들의 존재 양태와 동향, 그리고 학도호국단 등 관제조직 등을 매개로 학생들이 국가권력과 맺고 있는 관계 등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면서 왜 학생들이 다른 계층과는 달리 선도적으로, 또한 조직적으로 항쟁에 나설 수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도시빈민은 어떻게 4월혁명의 기억에서 삭제되었나?

도시빈민은 1·2차 마산항쟁, 1960년 4월 19일과 25일, 26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 발생한 대중 봉기에 대거 참여하여 중요한 역할을 했다. 4월혁명 이후 민주항쟁 과정에서도 1979년 부마민주항쟁, 1980년 5·18광주민주항쟁, 1987년 6월민주항쟁 등 대규모 민주항쟁의 분출 국면마다 도시빈민들의 참여와 활동이 두드러졌다. 학생과 더불어 도시빈민은 한국의 민주항쟁을 이야기할 때 주목되어야 할 계층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민주화운동사에 거의 기록되지 않거나 주변화되었다.

이 책은 4월혁명을 전후하여 도시빈민을 잠재적 범죄집단으로 규정하는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도시빈민이 4월혁명에 대거 참여했는데도, 저항 주체로 인정받기는커녕 오히려 범죄자로 취급되었음을 지적한다. 4월혁명 직후부터 관련 서사기나 수기에 나왔던 이른바 ‘낮 시위’와 ‘밤 시위’의 구분은 낮/밤 시위의 주체를 충분한 근거 없이 학생과 도시빈민으로 명확히 이분법적으로 설정하고, 그 행태도 비폭력시위와 폭력시위로 이분화함으로써 도시빈민을 학생들과 같은 민주항쟁의 주체로 보지 않고 범죄집단으로 타자화하려는 것이었다.

안정적 경제기반 없이 도심을 떠돌아다니고 질서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도시빈민들은 부정적 규정의 대상이 되었고, 시위가 장기화되고 과격 양상이 심화되면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점차 불안감으로 바뀌어갔다. 그 불안감은 때때로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과격한 시위 양상의 책임을 이들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했으며, 그러면서 도시빈민에 대한 사회적 재현이 점차 범죄의 이미지와 포개졌다. 이렇게 도시빈민은 4월혁명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음에도 혁명의 주체는커녕 범죄집단으로 주변화, 타자화되어 역사 서술에서 배제되었다.

성차별적 의식으로 인해 배제된 여성들

도시빈민과 마찬가지로 여성들 또한 4월혁명에서 별다른 기여와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여학생들은 민주항쟁의 첫 포문을 열었던 1960년 2월 28일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의 시위 때부터 참여했으며,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사퇴할 때까지 전국 각지에서 여중고생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여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 여성들도 항쟁에 다수 참여하였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시위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시위대를 후원하고 보호하는 활동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고, 이러한 활동을 통해 시위대와 일반 시민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된 직후 발생한 2차 마산항쟁 때는 중년 여성들이 항쟁을 촉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마산에서 4월 25일 ‘할머니’로 불렸던 노년 여성 및 중년 여성들이 주도하는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는 여성들이 주도하고, 시위에 참여한 절대 다수 역시 여성인 시위였다. 그러나 이 시위 역시 같은 날 서울에서 있었던 대학교수단 시위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마산 할머니 시위는 여성들이 대거 4월혁명에 참여했고, 인상적인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록에서 배제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본적으로 성차별적인 시각이 작용한 결과이지만, 4월혁명이 서울 중심, 대학생 중심, 엘리트 중심으로 기록되고 서술되는 것이 여성과 비주류집단이 역사 서술에서 배제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었다. 그것이 성적인 것이든, 계급, 계층적인 것이든, 또한 지역적인 것이든 다양한 위계와 불평등한 체제들이 상호 연결되어 여성들의 활동을 역사 서술에서 배제했던 것이다.

4월혁명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과 학생·지식인층의 부각

또한 이 책은 근대화의 방법과 주체에 대한 논의 지형이 4월혁명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검토한다. 4월혁명을 거치면서 근대화의 주체로 학생, 지식층이 부각되었고, ‘근대화’ 개념이 “탈정치화” 또는 “초정치화”되면서 경제개발을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1950년대 후반 한국 지식인층은 한국사회의 제반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던 현상을 ‘제3세계’ 국가들의 ‘후진성’과 동일한 수준, 범주로서 인식하였고, ‘후진성’의 극복은 ‘서구 근대사회로의 발전’ 과정을 어떻게 이행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한국 지식인층은 ‘후진성’ 극복을 위해 정부의 효과적인 계획과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공감했지만, 그것은 지식인층이 주도하는 민주적인 정부에 의한 것이어야 했다.

이 책은 4월혁명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을 망라하고 교차시켜가면서 입체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4월혁명을 둘러싼 담론지형의 핵심은 “자유주의적 가치를 포함한 민주주의였고, 민족주의가 민주주의의 실체성을 담보하는 것으로 기능했는가 하면 반공, 친미 담론이 그 엄폐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 특히 민주주의는 지배담론으로 출발해 저항담론으로까지 확장됨으로써 4·19 정세 속에서 일종의 헤게모니적 지위를 획득했”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지형 속에서 혁명의 주체로 주로 학생, 지식인층이 부각되었음을 지적한다.

엘리트 지식인들은 민중을 혁명의 주체로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무지몽매하고 수준이 떨어지는 우중으로 격하하는 입장을 선택적으로 구사했다. 다수자 혁명의 주체로 민중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동시에 민중에 대한 헤게모니적 권력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즉 시민혁명이라는 규정상 혁명의 주체는 근대성을 체현하고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주체여야 했지만 민중은 그럴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결국 근대성을 선도적으로 체화한 학생과 지식인들이 민중에 대한 계몽의 사도로 나서야 된다는 논리였다.

역사 변화는 다양한 주체들이 동등하게 설 때 가능

이 책의 저자들은 4월혁명에 참여한 다양한 주체들과 이들이 보여줄 수 있었던 다양한 가능성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4월혁명의 다양한 주체들 중에서 오직 학생, 지식인층만 4월혁명의 주체로 부각되어온 양상이 어떠한 결과와 문제점을 발생시켰는지를 규명하고 있다. 즉, 항쟁에 참여한 주체들을 배제한 결과 항쟁을 추동했던 동력이 상실되거나 협소해지면서 기대했던 역사·사회적 변화를 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외의 결과가 출현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의 촛불항쟁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여전히 민주항쟁을 경험하고 있다. 항쟁을 통해 소기의 역사적 변화를 달성하려면, 특정 집단이 항쟁의 성과를 전유하고 다른 주체들을 탈정치화, 타자화하지 않게 하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누가, 왜, 무엇 때문에 4월혁명을 학생혁명으로 규정하려 했는가를 살펴보면 그 해답이 보인다. 이 책은 그 답을 찾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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