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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의 의무
성직자의 의무
  • 교수신문
  • 승인 2021.01.0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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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브로시우스 지음 | 최원오 옮김 | 아카넷 | 660쪽

성직자가 갖추어야 할 덕행과 사회적 책무를 일깨워주는

그리스도교 최초의 윤리 교과서 라틴어 원전 번역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우스는 고대 그리스도교에서 황실의 부당한 권력에 맞서 종교의 자유와 권위를 지키고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과 사회 정의를 위해 헌신한 교부이다. 그의 인품과 학식은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에도 결정적 영향을 주었고, 둘 다 서방의 4대 교부로 존경받고 있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안 정면에 있는 베르니니의 청동 조각에서 베드로 사도좌를 떠받치고 있는 서방 교회의 두 인물이 성 암브로시우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사실은 그의 교회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암브로시우스는 키케로의 『의무론(De officiis)』을 뼈대로 『성직자의 의무(De officiis mi- nistrorum)』를 집필했다. 키케로가 아들을 위해 『의무론』을 썼듯이, 암브로시우스도 아들과 같은 성직자 양성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이 책이 성직자로서 갖추어야 할 품성과 덕행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성직자들만을 위해 저술되지는 않았다. 암브로시우스는 이 작품을 통해 성경의 본보기에 바탕을 둔 보편적 그리스도교 윤리 규범을 세우려 했기 때문이다. 암브로시우스는 복음에서 찾아낸 삶의 규범과 생활 원리를 담아낼 그릇으로 키케로의 『의무론』을 활용하면서도, 고전 철학과 윤리 사상을 끊임없이 그리스도교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었다. 그리하여 ‘최초의 그리스도교 윤리 교과서’인 『성직자의 의무』가 탄생하게 된다.

키케로가 사추덕(四樞德)을 바탕으로 올바름(義)과 이로움(利), 곧 도의(道義)와 실리(實利) 문제를 풀어냈다면, 암브로시우스는 복음의 빛으로 사추덕을 해석하고, 올바름과 이로움에 관한 그리스도교적 이해를 시도한다. 키케로가 지혜로운 사람을 이상적 인간으로 내세웠다면, 암브로시우스는 참으로 지혜롭고 의로운 사람의 본보기를 성경에서 찾아 제시한다. 키케로가 자연법과 로마 시민법을 윤리의 토대로 삼았다면, 암브로시우스는 하느님의 법에 뿌리 내린 새로운 사랑의 윤리를 세운다.

스토아학파는 연민과 동정 때문에 평정심을 잃는 일 없이 정념에서 벗어난 청정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성직자의 의무』에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 불의에 대한 거룩한 분노와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가득하다. 재화의 보편적 목적과 분배 정의, 공동선과 사회적 연대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며, 현대 가톨릭 사회 교리의 원천이기도 하다.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는 그리스도교 행복론도 펼쳐진다.

특히 『성직자의 의무』 마지막 장은 우정에 관한 아름다운 성찰로 마무리되는데, 이는 키케로의 『우정론』을 넘어 아우구스티누스와 요한 카시아누스로 이어지는 그리스도교 최초의 우정론이다.

‘서양의 목민심서’라 할 수 있는 『성직자의 의무』는 교부 시대를 지나 중세의 긴 세월을 가로지르면서 성직자와 공직자를 아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이자 유럽 정신의 밑거름이 되었다. 대한민국 종교 지도자뿐 아니라 시민 사회 전체에 죽비 소리가 될 암브로시우스의 걸작 『성직자의 의무』를 라틴어 한글 대역으로 옮겼으며, 권위 있는 연구 자료들을 분석하여 각주를 달고 상세한 해제를 집필해 놓았다. 교부 문헌의 인문학적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체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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