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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공정성담론’은 공정하지 않다”
“한국사회 ‘공정성담론’은 공정하지 않다”
  • 김재호
  • 승인 2020.12.29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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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문화' 2020 겨울호(vol.109) 특집 ‘공정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의’

재난자본주의가 도래한 팬데믹 시대
각자도생과 자기경영은 신자유주의적 산물
공정의 그늘에 가려진 문제의 본질들

한국사회만큼 ‘공정성과 정의’에 관심이 많은 곳도 없을 것이다. 일각에선 그만큼 한국사회가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우리는 공정성에 대한 논의들이 정말 공정한지 제대로 고민하지 못했다. 그래서 <황해문화> 2020 겨울호 특집은 ‘공정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의’를 논했다. 

사실, ‘공정하다’ 혹은 ‘불공정하다’는 말만으로는 사회의 부조리를 해결하기 힘들다. 2020년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논란과 공공의대 설립에 대한 파업 강행은 과연 우리사회에서 공정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끔 한다. <황해문화> 편집위원이자 성공회대 교수(중어중문학과)는 권두언을 통해 이번 특집이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 내재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관계성의 실상을 정시하고 생명윤리의 회복에 기초한 새로운 다원평등의 관계성의 경로를 열어가는 모색작업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특히 백 교수는 ‘재난자본주의’를 비판했다. 백신 회사 최고경영자가 백신의 효과가 발표되는 날 주식을 대거 팔아 이익을 얻었다. 자본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이 가운데, 하층 노동자들은 필수노동자로 변모했다. 누군가는 비대면 시대에 끊임없이 배달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백 교수는 각자도생과 자기경영이라는 능력주의를 비판했다.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 만연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과)는 「‘공정’의 이데올로기, 문제화를 넘어 대안을 모색할 때」를 적었다. 김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공정성담론이 왜곡됐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공정성 담론은 그 발생 초기부터 명확하게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뒷받침하기 위한 도구로써 기능해왔다”며 “한국사회에서 공정성의 기표는 자신이 느끼는 부당함, 억울함, 혹은 박탈감을 정당화하기 위한 손쉬운 수단으로 쓰였다”라고 밝혔다. 공정성 담론이 위해적 효과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공정을 담론적 무기로 사용하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의사 파업이라고 일갈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무기화 전략은 △ 허위 정보 또는 음모론 생산 △ 이해관계에 기반한 담론 구도 △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산발적, 대중적 유통 △ 매스 미디어의 확대 재생산 등이다. 

현대의 노동자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노동자들은 기간제 및 시간제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불안정취약계층’이자 인공지능에 의해 밀리게 되는 ‘불필요계층’으로 전락했다. 이 가운데 능력주의모델은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 자신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공정성담론을 활용한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자리 위험을 능력주의모델과 연결시키며, 개별주의적 존재론 차원에서 저항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다. 

김 교수의 지적을 들어보자. “인천국제공항 보안요원 정규직 전환이나 공공의대 설립 등 최근 불거진 이슈는 단순히 공정성의 문제로만 치환될 수 없다. 고용 안정성, 사회경제적 불평등, 의료 인력의 비대칭적 분포 및 중앙집중, 지방 및 필수 의료 항목 의료접근성 확대 등 보다 근본적으로 사회적 불안정 요소를 해소하는 것이 본질적인 목표다.” 김 교수는 대안으로 ‘비교에 근거하지 않는 정의의 모델’을 통한 관계적 존재론과 연대 및 상생을 제시한다. 

공정을 담론적 무기로 악용

한편, 장혜경 사회변혁노동자당 정책위원장은 「고용과 노동에서의 공정성,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시험이라는 공정경쟁이 과연 정의로운지 물음을 제기한다. 장 정책위원장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경험 혹은 경력이 배제된 시험이라는 제도는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이분법을 전제로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역차별이라고 공격하는 자들이 언급하는 ‘공정’이나 ‘기회의 평등’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고용과 노동의 문제에서 정말 중요한 노동의 부정의가 담론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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