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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 시대의 중국 읽기… “중국의 실패는 세계의 실패로 이어진다”
신냉전 시대의 중국 읽기… “중국의 실패는 세계의 실패로 이어진다”
  • 박강수
  • 승인 2020.12.3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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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 『코끼리에게 말을 거는 법』을 쓴 공상철 숭실대 교수

중국은 거대한 타자다. 그 거대함은 대개 숫자로 표상된다. 인류의 5분의 1을 품은 인구, 미국 전체 인구보다 많은 중산층, GDP 기준 두 번째로 높은 약 16%의 세계 경제 점유율 등 육중한 존재감이 중국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를 고르게 떠받친다. 여기에 미세먼지, 한한령, 코로나19 등 단편적 인상이 섞여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이해를 이룬다. 이 이해는 오해인 경우가 잦다. 많은 타자에 대한 인식이 그러하듯 중국의 실상도 과대평가와 과소평가 사이에 자리한다.

공상철 숭실대 교수(중어중문학과)가 지난 1일 내놓은 신간 『코끼리에게 말을 거는 법』(돌베개)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세계의 우화성에 대한 태도가 제목에 반영됐다.” 중국을 코끼리에 빗댄 이유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다. 세계를 우화로 대한다는 그의 태도는 인식의 균형을 위한 ‘거리두기’로 이해된다. 그의 거리감은 자유자재다. ‘중국위협론’의 과장과 ‘중국붕괴론’의 폄하 사이로 렌즈를 끼워 넣고 배율을 바꿔가며 중국 사회의 내부 모순부터 백년지계 ‘중국몽’의 담론 전략까지 근경과 원경을 오간다.

“대륙의 정치적 격변은 늘 반도 땅의 삶을 위태롭게 만들어 왔다.” 중국의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바꿔 말하면 중국을 이해하는 만큼 한반도와 세계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는 말이다. 중국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원근감을 조정하고자 공 교수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먼저, 멀리서 보이는 광경을 물었다.

 

△ 이 책은 중국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명사 차원의 충돌을 조망한 책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에는 강대국의 힘겨루기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중국 지식계에서는 미중 관계를 이원적으로 본다. 근대국가로서 관계와 문명사적 지평에서 관계다. 근대국가로서 중국은 많이 부족하다는 점을 그들도 인정한다. 미국의 달러패권과 담론패권에 멱살이 잡혀 있다. 이를 홀시하고 미국이 초대하는 링 위에 올랐다간 구 소련 꼴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G2’ 같은 용어를 극구 기피한다. 최근에는 ‘굴기’라는 말도 ‘발전’으로 대체할 정도다.

그런데 양국 관계를 대서양문명과 중화문명의 관계로 전환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지평에 서면 중국의 부상은 ‘대분기(경제사에서 서구가 동양을 앞서기 시작한 분기점)’ 이래 이삼백 년의 비정상 상태가 정상 상태로 회복되는 일이 된다. 그래서인지 최근 중국 지식계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잦다. ‘중국문제는 근대국가라는 그릇이나 계몽주의가 만든 규칙으로는 온전히 담을 수 없다. 보다 긴 호흡의 ‘대륙-국가’ 혹은 ‘문명-국가’의 틀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 틀이 현재 ‘일대일로’의 이념적 자원이다. 2049년 ‘중국몽’의 청사진 역시 이런 시간의 호흡에 근거한다.”

 

△ 현재 ‘미국 달러 신용에 기반한 금융 경제 체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라는 것이 중국의 진단인 듯 하다. 마침 금융위기, 기후위기, 포퓰리즘 등 서구 사회의 경제와 정치가 실패를 노정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말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1995년 무렵부터 가동된 ‘세계의 공장(중국의 값싼 노동력으로 다국적 기업의 제조시설을 대거 끌어들인 것)’은 성과만큼이나 혹독한 대가를 요구했다. 이로부터 제기된 것이 ‘생태문명 건설’ 아젠다다. 이것이 시진핑 체제 들어 문명적 이념 지향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산업화와 도시화를 본질로 하는 서구적 근대화의 한계를 자연과 인간의 조화에 근거한 중국 전통의 ‘코스몰로지’로 넘어서보겠다는 거다. 중국발 포스트모던 기획이다. 동시에 서구에 의해 유폐된 토착문명의 주권회복 선언이기도 하다. 현재 민간과 정부 두 차원에서 다양한 실험과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코로나19로 난감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오히려 추진력을 더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중국의 곤경’과 ‘시진핑 체제의 의미’ 바로 보기

 

△ 하지만 중국의 현재 사회상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주변국과 영토 분쟁, 소수민족 탄압, 체제 억압에 더불어 내부적으로는 검열과 감시가 횡행하고 비판은 금지된 공동체라는 시선이 강하다. 이 허물들은 중국몽의 이상과 모순되는 것 아닌가?

“현존 중국 체제 아래서 중국 발 ‘대안’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지가 늘 문제다. 다만 여기서 구분할 점이 있다. ‘신냉전 형세에서의 국가전략’과 ‘실존적 곤경’은 분리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자의 방향이 패권적으로 치닫는다면 당연히 비판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후자 차원에서 모색까지 부정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세계 인구 5분의1이 살아가는 중국이 독자적인 길을 찾는다면 그 자체가 세계사적 의미가 될 것이다. 중국이 제발 이걸 제대로 찾았으면 좋겠다. 서구 세계가 구두선으로 삼는 ‘보편적 규범’의 수준을 지금 생생히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중국 연구자들조차 이 두 층위를 분리하는 데 서투르다. 그러니 비판의 영점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지난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악수를 나누는 양국 정상사진=연합뉴스
"중국의 이해는 동아시아 신냉전 구도의 상수다. 한반도 문제는 여기에 종속된다. 그리하여 중국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가 된다." 지난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악수를 나누는 양국 정상. 사진=연합뉴스

 

△ 한편에는 ‘시진핑 시대’에 대한 비판이 있다. 2018년 ‘국가 주석 임기 제한’을 폐지한 이후 종신집권에 대한 우려가 크다. 시 주석의 행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어려운 질문이다. 프레임을 ‘시진핑 체제’에서 ‘포스트 덩샤오핑 체제’로 바꿔보면 어떨까? ‘장쩌민-후진타오 체제’는 덩샤오핑에 의해 예비된 체제였다. 그 다음은 대안이 없었다. 시진핑 체제가 출범한 2013년은 구조적으로 고도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뉴 노멀 상태’에 들어선 시기이고 중국이 금융자본화 단계에 진입하면서 기성 금융카르텔의 견제가 본격화되는 시점이었다. 여기에 공룡이 된 대자본에 대한 효율적 통제까지, 이것이 시진핑 체제에 부과된 미션이고 ‘시황제’ 신화를 낳은 조건이다. 공산당 지도부도 이 외에 마땅한 해결책은 없었다. 기존 체제를 업그레이드할 대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중국이 이 리스크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구태의연한 체제를 갱신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가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이 대목이다.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냉전 구도 속 ‘회색연대망’을 넓혀라”

 

△ 극한으로 치닫던 미중 갈등은 팬데믹과 미 대선을 틈타 휴지기에 들었다. 재개될 갈등 국면을 어떻게 보나.

“게임장의 교체를 둘러싸고 양국 간 헤게모니 쟁탈전이 본격화 될 거다. ‘4차 산업’이라는 게임장의 선점과 게임 규칙의 수립 문제다. 중국이 비교우위를 점한 분야는 더욱 치열할 것이다. 디지털위안화에 대한 논의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EU 쪽에서의 움직임을 방패로 삼으면서 말이다. 달러 패권에 대한 문제의식의 발로다.

그런가 하면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걱정으로 뒤숭숭한 분위기다. 트럼프에 진저리를 치느라 바이든을 응원했는데 막상 되고 보니 상황이 한층 어려워질 수 있음을 예감한 눈치다. 오바마 체제가 추진했던 TPP(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가 재가동될 것이라는 전망도 지배적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미중 충돌은 가치의 충돌이 아니라 이익 충돌일 뿐’이라는 선문답 같은 발언도 자주 들린다”

 

△ 신냉전의 전선은 한반도를 관통한다. 북핵 문제부터 다양한 경제연합, 외교전략이 얽혀 있다. 전망한다면?

“암울하지만 이것만은 짚고 있어야 한다. 신냉전 질서 아래서 상수는 미국과 중국의 이해 충돌이라는 점, 그리고 한반도 문제는 어디까지나 이에 대한 종속변수라는 점. 이를 인정하지 못하면 어떤 문제도 풀어나가기 어렵다. 제대로 된 중국 공부가 그래서 필요하다.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은 세계사의 혈을 제대로 짚고 있다. 다만 위 상수 조건들이 미성숙해 선언 이상의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RCEP(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의 의미가 작지는 않을 거다. CPTPP(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도 마냥 외면하기 만은 어렵다. 양다리를 걸친 멤버가 있으니까.

핵심은 ‘미국이냐 중국이냐’하는 선택 구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거다. 다자주의 생태계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공 들이고 있는 아세안 10개국과 협의체나 P4G(파리협정 이행과 녹색경제 촉진을 위한 국가 모임) 같은 대안적 협의체, MIKTA(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호주) 5개 중견국 협의체 같은 것도 유의미한 실천의 장이 될 수 있다. ‘회색연대망’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더 건강한 생태계가 된다.”

 

공상철 숭실대 교수(중어중문학과) 사진=공상철 교수
사진=공상철 교수

공상철 교수

중국현대문학을 전공해 숭실대 중어중문학과 재직 중이다. 저서로 『중국을 만든 책들』(돌베개)이 있고 『루쉰전집』(그린비) 번역에 참여해 소설과 잡문, 일기 일부를 옮겼다.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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