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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고전해석의 ‘복잡’과 ‘미묘’
[學而思] 고전해석의 ‘복잡’과 ‘미묘’
  • 교수
  • 승인 2001.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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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16 00:00:00

‘논어’의 첫 머리는 누구나 잘 알 듯이 배움에 관한 공자의 언급으로 시작된다. “배우고 때때로 이를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오면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답지 아니한가?” 이 소박하고 평범하게 보이는 발언도 그러나 여러 가지 해석학적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그 진의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첫 구절의 “때때로”에서 “때”가 과연 어떤 의미인지 해석자에 따라서 다양한 논의가 있다. “언제나 항상” 익힌다는 의미로 여길 수도 있고, “그 때 그 때”라는 해석도 가능하며, 또는 “경우에 맞추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공자가 말한 “배움” 또한 그 성격, 내용, 목적이 오늘날의 제도 교육에서 말하는 “배움”과 분명히 다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세 구절이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도 다양한 이해와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유교 고전의 해석과 관련된 학문을 전통적으로 經學이라 불렀다. 그것은 전통시대 동아시아문명의 지적 활동에서 주요한 영역이었으며 따라서 유구한 축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비록 오늘날에는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관심을 갖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마지막 구절의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人不知)를 자신의 학식, 능력 또는 이상이 타인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한다. 이상적 인간상으로서 군자의 의미나, 노력을 다하되 천명을 기다린다는 유가적 인생관을 염두에 둔다면, 상당히 타당한 해석이라 하겠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가 있다. 그에 따르면 “인부지”(人不知)는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가 아니라 “남이 알아듣지 못하다”라는 뜻이다. 상대가 어리석고 둔하여 자신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군자는 이를 너그럽게 대하며 노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경우 군자는 주로 교육자의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인간과 인생에 대한 보다 일반적 언급으로 보느냐 아니면 특정한 맥락의 언급으로 보느냐의 차이가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알아주다”와 “알아듣다”의 상이한 해석은 단순히 해당 구절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그치지 않는 듯하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고전 해석의 역사 즉 경학사에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다. 경학사에서 주요한 쟁점의 하나로 今文學과 古文學의 논쟁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금문학은 분서갱유 이후 구두로 전승되었다가 한나라 시대에 당시(今)의 문자(文)로 기록한 텍스트를 연구하는 학문(學)이다. 반면 고문학은 민간에서 발견된 고대(古)의 문자(文)로 쓰인 텍스트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양자는 쓰여진 문자만이 아니라 중시하는 텍스트 나아가 해석의 입장과 방법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중요한 차이의 하나가 공자에 대한 평가였다. 금문학에 의하면, 공자는 무관의 제왕이자 미래의 인류를 위한 제도를 창시한 성인이었다. 반면 고문학은 공자가 전통문화를 정리하고 고전을 편집한 위대한 교육자라고 보았다.

이러한 공자에 대한 상이한 평가는 각 고전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에도 영향을 주었고 반영되어 있다. 위에서 예시한 해석상의 차이는 그러한 상이한 평가의 구체적 사례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전체적 평가는 개별 사항에 대한 구체적 해석에 의해 확인되거나 수정되기도 하고 때로 부정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알아주다”와 “알아듣다”라는 한 구절의 해석상 차이는 ‘논어’의 내용과 공자라는 인물에 대한 전체적 이해와 평가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고전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매우 미묘하고 복합적인 행위이다. 특히 ‘논어’나 ‘노자’처럼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복잡하고 방대한 해석의 역사를 축적해 온 고전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 누구의 말처럼 옥편 하나와 자가류의 문법만으로 몇백 년, 몇천 년에 걸친 의문점을 해결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학생이 “알아듣지 못해도” 마음이 편치 못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고전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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