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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승리: 자본주의의 세계사 1860~1914
불안한 승리: 자본주의의 세계사 1860~1914
  • 교수신문
  • 승인 2020.12.2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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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서순 지음 | 유강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1088쪽

“이 자본주의는 똑똑하거나 아름답지 않고, 정의롭거나 고결하지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무엇으로 대신해야 할지를 생각할 때면 극도로 당황하게 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자본주의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이 책의 서사는 1860년 무렵부터 1차대전에 이르기 전까지의 시기에 주로 초점이 맞춰진다. 자본주의가 하나의 체제로서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세계화를 이룬 것은 바로 이 시기의 일이다. 저자 도널드 서순은 자본주의의 첫 번째 세계화가 이루어진 이 시기 이후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잠시 세계화의 흐름이 주춤했다가 20세기 후반에 두 번째 세계화와 더불어 현대 자본주의가 등장했다고 본다. 자본주의의 긴 역사 가운데서도 오늘날의 세계와 판박이인 19세기 말에 주목한 것은 이 때문이다. 도널드 서순은 세계 역사에서 되풀이해서 등장하는 신화로서 황금기인 ‘벨에포크(좋은 시절)’의 시절을 다루며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 여러 제도와 일상생활까지를 샅샅이 훑는, 산업혁명의 중심지 서유럽만이 아니라 세계화의 흐름을 따라 동유럽과 아프리카, 남북아메리카와 동아시아까지를 포괄하는 풍부한 묘사와 통찰로 자본주의의 총체적인 역사를 서술하였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자본주의는 산업혁명과 대량생산, 거대한 소비시장과 교역망을 구축하는 과정으로서의 자본주의보다 훨씬 광의의 의미로 정의된다. 여기에는 교통망과 통신망 같은 기반시설 구축, 노동자 창출, 도시화와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비롯되는 사회문제 해결, 자본가들의 무정부적 경쟁을 조정하는 산업정책 마련 및 조세와 치안과 행정체계 확립, 국가 내부의 참정권 확대와 대의정부 수립, 민족공동체 건설, 대외적으로는 식민지 개척과 수탈이라고 하는 과정들이 결합되어 있었다. 저자는 이 모든 과정이 하나로 모아져서 자본주의체제가 세워졌다고 본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서 그려지는 자본주의의 역사는 동시에 민주주의, 제국주의, 민족주의의 역사이며 근대 자체의 역사이기도 하다.

승승장구하는 자본주의와 메리 앤의 후손들


『자본』의 인상적인 한 장에서 카를 마르크스는 분노어린 필치로 과로에 시달리다 죽은 20세의 여성용 모자 제조공 메리 앤 워클리의 상황을 고발한다. 이제 현대 ‘선진’세계에서는 메리 앤의 후손들인 오늘날의 서구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번영을 누린다. 수명도 길고, 노동시간은 짧으며, 휴가를 누리고, 교육을 받는다. 문화(텔레비전, 음악, 인터넷)를 향유하며, 연금을 받고, 의료보험을 이용한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두려워했던 것처럼 사회의 토대를 위협하기는커녕, 메리 앤의 후손들은 사회의 전형적인 지지자가 되었다. 그런데 누가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 민주화 과정 덕분에 그들은 동등한 권리를 지닌 시민으로 변신했다. 또한 경제성장 덕분에 소비자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오늘날 서구에는 여전히 빈민들이 존재하지만, 승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세계에서 패자로 낙인찍힌 그들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무기력한 처지 탓을 하거나, 불운의 탓으로 돌리거나, 외국인 이민자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탓을 하지는 않는다. 언뜻 보기에 자본주의는 다수에게 많은 것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자본주의의 승리는 소비의 민주화로 더욱 공고화되었다. 구소련이나 체코슬로바키아 같은 몇몇 공산주의 경제는 산업사회의 토대를 닦는 데 성공을 거두었지만, 현대 소비자 자본주의가 이룩한 업적에는 그 어떤 공산주의도 필적하지 못했다. 1989년 11월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일부 미디어는 아이러니하게도 동구와 서구를 가르는 장벽이 무너진 틈을 처음 비집고 넘어간 이들이 상점으로 달려갔다고 보도했다. 1989년 11월 11일자 『뉴욕타임스』는 ‘동구의 아우성, 베를린의 환호성, 축하와 동시에 약간의 쇼핑을 위한 날’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이 책 『불안한 승리』의 제목처럼 자본주의는 ‘승리’한 것 같다.

당대 자본주의 세계 전체의 풍경을 총체적으로 조망한 독보적인 책!


그리하여 도널드 서순이 광범위한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방대한 정보량과 독보적인 서술 방식으로 시야를 넓혀 나가는 과정에서 온갖 질문이 등장하고 흥미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자본주의의 다층적 면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해 도널드 서순은 역사적 사실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다.


예를 들면, 제국주의(식민주의)가 과연 수지가 맞는 장사였는지 프랑스와 영국의 의회에서 벌어진 식민지 대논쟁을 통해 그 답을 찾는다. 그리고 제국주의와 마주친 나라들이 어떻게 다른 길을 걸었는지도 밝힌다. 또한 코로나19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간담이 서늘할, 1855년 중국 윈난성에서 처음 발생한 선페스트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전염병의 세계화의 행로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기대수명과 평균 소득을 한껏 드높인 자본주의의 눈부신 성공과 화려한 도시의 쾌락적 소비에 푹 빠진 대중의 모습과 나란히 광산과 공장에서 하루에 16시간을 일하다 과로사하는 노동자들과, 식민주의의 잔혹한 폭력에 속절없이 쓰러져간 서아프리카와 인도의 노예와 농장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때로는 당대에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이 벌인 논쟁과 현대 역사가들의 평가가 끼어들고, 때로는 소설과 시를 비롯한 당대의 문학 작품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체감한 사회 변화를 포착한다.

‘창조적 파괴’, 불안정이 불안한 승리를 낳는다


19세기 말의 수십 년 이래 많은 것이 바뀌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이 책에서 묘사한, 승승장구하는 ‘서구’ 자본주의와는 다소 다르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제조업의 동쪽으로의 이동, 초국적 기업의 규모와 범위, 금융서비스의 거대한 팽창, 국가의 경제적 역할 증대, 국제 자본주의의 주요한 수호자로서 미국의 중심적 역할, 공산주의의 붕괴, 중국의 주요 경제 강대국으로의 변신 등과 관련이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자본주의의 승리 자체가 오늘날 그 미래를 위협하며, 끝없는 불안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다.


도널드 서순이 말하는 것처럼, 이 만성적인 불안정이야말로 “체제의 결함이나 우연한 부산물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의 토대다”. 그리고 바로 이 불안정, 끊임없는 동요가 책 제목처럼 불안한 승리를 낳는다. 하지만 저자가 공감의 눈길을 보내는 쪽은 승리보다는 불안에 가깝다. 19세기 말에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조합, 그리고 사회와 체제의 안녕을 고심하면서 기꺼이 개혁에 나선 자유당과 계몽된 보수주의자들이 그 역할을 했다면, 21세기 초에는 누구에게 희망을 걸어야 할까? 21세기인 오늘날의 자본주의 풍경의 원형이 만들어진 이 시기를 거울삼아 현재를 성찰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독자들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불안한 승리?는 이 모든 질문과 그 시대에 관한 신선한 관점을 제공한다. 이 책은 역사학계의 거장으로서 경제사와 정치사, 지성사와 사회사를 넘나드는 도널드 서순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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