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12:40 (목)
가난한 그대의 빛나는 마음
가난한 그대의 빛나는 마음
  • 교수신문
  • 승인 2020.12.28 1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숙 지음 | 삼인 | 255쪽

분단 이후 북한에 남은 시인 백석,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글을 썼는가

그저 쓰고 싶은 글을 마음 가는 대로 쓰는 것. 이는 문학이 생겨나게 하는 토대이자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져야 할 조건일 터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조건은 그러나 20세기 한반도의 문학인에게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당연하기는커녕 그들에게 자신이 쓰고픈 글을 마음 놓고 쓰는 일은 극소수만 누리는 행운에 가까웠음을 오늘의 우리는 곧잘 잊곤 한다. 말할 나위 없이 그 주된 이유는 정치권력의 검열과 감시였다. 민주화 이전 한반도의 남쪽도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그 북쪽에서는 특히 권력의 비위를 거스르는 문학이 존립할 자리 자체가 없었고, 문학인 자신은 글쓰기를 멈춘 채 침묵하거나, 아니면 글 한 줄, 낱말 하나 고르는 데 생사를 걸어야 했다. 그와 같은 침묵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인물이 1930년대 조선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았던 백석이다. 분단 후 고향인 이북에 남은 그는 1960년대 초까지 시, 아동문학(동시와 동화시), 평론, 번역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으나, 1962년에 쓴 동시 「나루터」 이후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진 1996년까지 30년 넘는 세월 동안 아무런 작품도 발표하지 않았다. 글을 안 쓴 것인지 못 쓴 것인지는 밝혀진 바 없다. 그러나 그가 그 시기 북한이 아닌 다른 곳의 거주민이었다면 사정이 사뭇 달랐으리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상상이다.

문학평론가이며 가천대에 재직하고 있는 이상숙 교수의 『가난한 그대의 빛나는 마음 - 북한 문학 속의 백석』은 바로 백석이 분단 후 북한에서 펼친 문학 활동을 두루 살핀 연구서다. 저자는 분단 후 백석의 문학 활동을 세 시기로 구분한다.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문학 번역에 몰두하던 1940년대 후반~1955년, 스탈린이 죽고 나서 소련에 도래한 ‘해빙기’에 힘입어 북한 문학계에도 훈풍이 감도는 가운데 백석이 가장 활발하게 창작에 임했던 1956~1958년, 그리고 “사실상의 숙청”을 당해 1959년 1월 량강도 삼수군 관평리에 ‘현지작가’로 파견된 이후 1962년까지가 그것이다.

이 책의 「만주 시절 - 러시아 문학 번역과 시인의 슬픔」, 「백석의 번역시」, 「백석의 번역소설」은 백석이 1940년 만주에 이주한 뒤 방금 말한 첫 번째 시기를 통과하기까지 번역가로서의 활동을 조명한 장들이다. 문학 경력 처음부터 백석은 번역가이기도 했다. 1935년 첫 시 「정주성定州城」을 내놓기에 앞서 영어 산문들과 존 던John Donne, 데이비스William Henry Davies 등의 영시를 번역해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만주에 살 때는 러시아어 소설들을 번역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해방 후 북한 사회가 소련을 모범으로 삼은 데 발맞춰 수많은 소련 소설, 시, 평론을 번역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저자에 따르면 장편 소설을 포함한 번역소설이 수십 편이고, 번역시 또한 200여 편이 넘는 분량이라고 한다. 그중 많은 부분이 아직 미답의 영역에 속하지만 기왕에 입수된 작품들에 관한 한 번역의 수준도 높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중론이다. 실제로 저자는 백석이 조선어로 시를 쓸 수 없었던 1940년대 초반 만주에서 번역한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소설들을 예로 들어, 그 이전에 백석이 시에서 보여준 남다른 언어 감각과 어휘 구사(가령 백석이 만든 말로, 시에서는 사용한 적 없는 ‘검트레하다’ 같은 형용사)가 번역에서도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이렇게 양과 질 모두 주목할 만한 까닭에 저자는 백석의 번역 활동을 문학적 잉여 행위나 창작열의 대체물로 여길 것이 아니라 백석 문학을 지탱하는 엄연한 한 축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대중 선전과 고무의 수사, 김일성 찬양으로 대표되는 북한 시단의 풍토가 백석에게는 맞지 않아 절필하고 싶었지만 호구지책으로 번역을 택했고 번역을 통해 자신의 문학관을 설파하고 문학인의 지조를 지켰다”고 보려는 태도를 조심스럽게 경계한다. 추측일 뿐 증거도 논거도 없다는 점에서다. “백석의 번역이 어떠한 ‘문학적 선택’이었을 수도 있고 그랬으리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가정을 용인하는 것에서 일단락될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번역문학 작품의 분석을 통해 귀납적으로 이른 결론이어야 한다.” 백석의 번역문학에 대한 접근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지금 새겨볼 발언일 것이다. 저자가 참여한 연구팀이 발굴하여 그 전문이 이 책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백석의 번역소설 두 편, 「자랑」과 「숨박꼭질」도 흥미로운 읽을거리다.

이상숙 교수가 보는 북한 내 백석 문학의 제2기는 1956년에 발생한 두 가지 사건이 크게 영향을 끼친 시기다. 그 하나는 스탈린 사후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이 불러온 자유화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그와 반대되는 방향에서 북한의 김일성이 반대파를 진압하고 개인숭배를 강화하는 계기로 삼은 이른바 ‘8월 종파 사건’이다. 소련 사회 전반의 억압적 규율과 문화예술계의 경직성에 변화를 가져온 자유화 흐름은 북한에도 반향을 일으켜, 기존 북한 문학의 도식주의에 반기를 들고 서정성과 개성을 강조하는 문학인들이 나타난다. 백석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이 시기 백석은 소설 번역을 줄이고 시 번역(주로 인민의 언어에 바탕을 두고 서정성이 돋보이는 시인들의 작품)을 늘리면서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1957)를 발간하는 한편 아동문학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하며, 1957년부터는 동시가 아닌 시 창작도 10여 년 만에 재개한다.

이 시기 백석이 지녔던 생각은 아동문학 관련 논쟁에서 잘 드러난다. 아동문학에서도 사상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리원우 등에 맞서 백석은 아동문학도 문학으로서 시정詩情과 철학에 입각하여 창작되어야 하고 음악성과 해학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평론들을 썼다. “시는 깊어야 하며, 특이하여야 하며, 뜨거워야 하며 진실하여야” 한다고 믿는 백석에게 바람직한 아동문학은 “현실의 벅찬 한 면만을 구호로 웨치며 흥분하여 낯을 붉히는 사람들의 시 이전인 상식”을 배격하고 “아동들의 인간성 속 바탕 깊이 아름다운 것과 옳은 것에 대한 강렬한 사랑을 아울러 길러 주”는 문학이었다. 방법론적으로는 구비 전승의 옛이야기에 실린 풍자와 낭만성(낙천성), 해학성이 문학으로서의 동화문학이 지향할 바라고 보았다. 저자는 백석의 이러한 신념이 잘 배어 있는 작품이 『집게네 네 형제』라고 평가한다. “전래의 민담과 동화를 아이들의 입말로 변형시키고 동물을 의인화하는 환상의 수법으로 생활 속의 교훈과 인정 세태를 설명한 이 동화시집은 백석의 시론과 아동문학론이 결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에서 백석 문학의 제3기는 저만한 의견도 수용할 의사가 없었던, 8월 종파 사건 이후 광범한 숙청을 치르며 일인 지배 체제를 구축해온 권력에 의해 백석이 심심산골의 목축 노동자 겸 현지작가로 파견되는 데서 비롯한다. 이 대목에서 저자가 새삼 일깨워주는 것은 문학뿐 아니라 사회와 이념을 대하는 관점에서 백석과 북한 권력 사이에 존재한 메울 수 없는 간극이다. 저자가 보기에 백석은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인간의 품격과 도덕성, 예의, 인정 같은 가치를 집약적으로 상징하는 이념으로 이상화하는 “낭만적 인식” 또는 “낭만적 환상”을 품고 있었다. 예컨대 “오늘 우리가 사회주의 사실주의 문학 속에서 행복됨은 진정한 문학이라는 것을 언제나 인도주의적 문학으로서, 언제나 인간의 건강하고 즐겁고 선량한 사상을 주장 옹호하여 오는 문학으로서 인정하는 때문”이라는 백석의 문장은 이러한 사회주의 이해와 이어져 있지만, 이는 인도주의와 선량함도 계급투쟁과 당파성에 기반해야 하며 문학인 스스로 ‘열렬한 공민적 빠포스(열정을 뜻하는 러시아어)’를 지닌 공산주의 투사의 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북한 권력 및 문단의 지배적 이념과 너무나 멀리 있는 것이었다.

현지작가 파견 이후 백석은 그 지배적 이념의 요구에 일단 따르는 모습을 보인다. 백석이 북에서 쓴 총 16편의 시 중 대부분이 이렇게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몇몇 시에서 백석의 시다운 개성과 특장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상당수는 “백석 특유의 서정과 섬세한 언어 감각”을 찾을 수 없고 상투적인 정치적 수사와 관념어를 남발하는 가운데 예정된 결론을 향해 치닫는 북한 시의 전형에 가깝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이들 시가 전형적인 북한 시들과 다른 점을 시의 화자-시인이 유지하고 있는 대상과의 거리를 들어 지적한다. 화자-시인이 정작 자신이 이야기하는 대상에 완전히 몰입하거나 동일화하지 않고 관찰자 또는 방관자로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또한 북한 사회와 문학에서 용납될 수 없는 점이었고, 실제로 백석은 북한 문예당국의 지침에 따른 듯한 창작의 시기를 오래지 않아 접은 뒤 기나긴 침묵 속으로 진입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렇게 마감된 ‘북의 시인’ 백석의 문학은 북한의 문학사에서 잊혀진 존재나 다름없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출간된 북한의 문학사에는 1930년대의 백석 시뿐 아니라 1960년대 백석 문학의 경우에도 존재와 평가가 전무하다고 한다. 이런 풍토에서 희귀한 예외로 저자가 소개하는 책이 1995년에 나온 류만의 『조선문학사』다. 이 책의 제9권에서 류만은 1930년대 백석의 시가 “독특한 운률적인 맛을 돋구고 있으며 시에서 공간적인 비약을 많이 하면서 보다 풍부한 생활적인 이야기, 생동한 세부들을 특색 있게 삽입하였다”며 “민족적 풍속을 독특한 시풍으로 그려낸 백석의 시는 민족적인 모든 것이 짓밟히던 시기 시문학의 진보성, 민족성을 지켜내는 데서 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호평을 한다. 이상숙 교수는 이를 두고 북한 문학사 서술의 다양성과 포용성의 한 증표로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북한 문학계에서 백석을 비롯해 남북한이 공유한 시적 자산에 관하여 소통할 소양과 균형 감각을 갖춘 문학사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쉬워한다.

여기서 우리는 처음에 꺼낸 물음으로 되돌아간다. 후기 백석의 문학적 침묵은 의도된 선택이었던가, 창작 능력의 고갈을 뜻하는 것인가. 침묵도 발화의 방식이라면, 백석은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세상의 진행에 글쓰기를 통해 동참하기를 거절함으로써 자신의 문학과 삶을 지켜내려 한 것일까. 이 문제에 관해 저자는 그 어떤 단정적인 발언도 하지 않는다. 저자도 언급하듯이 자료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백석이 북에서 출간했다는 어린이책 『네 발 가진 멧짐승들』(1958년 출간 추정), 『물고기네 나라』(1958년 추정), 『우리 목장』(1961년 추정)에 대해서 남쪽의 연구자들조차 아직 실물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공백과 부재를 메울 수많은 탐사와 탐문과 시간이 요청된다는 의미에서도 백석 문학은 여전히 완결되지 않은 문학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