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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 인권이 ‘여성’을 호명하는 이유…남성들 위한 필독서
보편 인권이 ‘여성’을 호명하는 이유…남성들 위한 필독서
  • 장혜승
  • 승인 2020.12.24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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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인권, 여성의 눈으로 보다』 | 임옥희 외 3인 지음 | 철수와영희 | 192쪽

맘충, 제자리를 벗어난 여성을 향한 대표적 혐오 표현
현모양처에서 슈퍼우먼까지
여성의 몸을 구속하는 이데올로기도 진화

 

인권의 핵심은 보편성이다. 인권은 모두의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특별히 여성을 호명한다. 저자는 인권이 보편적이라는 뜻은 모두가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모두가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챙겨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들이 오히려 비하나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일이 많다. 

이 책은 4강의 챕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혐오표현으로 자리잡았는지 예리한 관점으로 톺아본다. 1강 ‘성, 사랑 그리고 혐오’에서는 불가리아 출신 프랑스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비체’라는 개념이 제시된다. ‘비체’는 제자리를 벗어난 존재로 혐오의 대상이 된다. 비체화의 대표 사례로 ‘맘충’이 소개된다. 맘충은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여성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혐오표현이다. 집안에서의 모성은 칭송의 대상이지만 ‘집’이라는 ‘제자리’를 벗어나 ‘공공장소’로 나왔을 때 엄마들은 ‘맘충’이 된다. 저자의 말대로 사회적 역할에 따라 자리를 만들고 거기서 벗어나면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노키즈존’ 또한 집이라는 제자리가 아닌 공공장소로 나오려는 엄마와 아이들을 동시에 겨냥한 혐오표현이 되는 셈이다. 

2강 ‘우리 시대 엄마의 사회학’에서는 역사적으로 여성의 몸이 관리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프랑스 시민혁명 등 역사적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 프랑스 시민혁명 당시 올랭프 드 구주는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선포한 뒤 경찰에 잡혀 간다. 혁명 당시 발표된 인권 선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남자’를 ‘여자’로 바꾸었을 뿐인데도 ‘본분’을 거스른 죄로 구속된다. 당시 여성의 본분은 자녀를 낳고 양육하고 가정을 돌보는 일이었다. 

관리의 대상, 여성의 몸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여성을 구속하는 이데올로기였던 현모양처는 이제는 직장 일까지 잘해내는 ‘슈퍼우먼’으로 진화한다.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은 직장에서도 일을 제대로 못하고 가정에서도 아이를 못 돌본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남들처럼 못해줄까 두렵고 아이들 보기에 부끄러울까봐 불안해한다. 코딩이 유행이라고 하니 유치원 때부터 코딩 학원을 보내고, 말 잘해야 한다고 스피치 학원을 보낸다. 소위 ‘아줌마’라고 부르는 기혼 여성에 관심이 많아 ‘줌마네’라는 커뮤니티를 만든 2강의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른 사람이 규정하게 두지 말라”고 말한다. ‘엄마는 이래야 한다’. ‘엄마라면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말에 휘둘리지 말라는 조언이다. 

3강 ‘지금, 여기의 여성 운동’에서는 페미니스트 철학자인 저자가 2015년 이후 부상한 새로운 페미니즘의 특성을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2015년 이후 도래한 한국 페미니즘의 특징 중 하나는 온라인 공간에서 과격하고 급진적인 언어로 한국의 가부장제를 뒤집겠다고 나선 ‘헬페미니스트’의 등장이다. 가부장제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도 완전히 부정하기 어려웠던 기성세대 여성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신경쓰지 않는다. 

4강 ‘국가, 군대 그리고 남성’에서는 유일한 남성이면서 인권운동가인 저자가 군대와 남성 문제를 살펴보면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도 결국은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짚는다. 저자에 따르면 전쟁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었는데도 2020년의 병사들은 1950년대 병사처럼 생각하고 훈련받고 생활하며 산다. 병사들은 쓸데없는 일이라도 반복해야 하고 제대로 된 임금도 받지 못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뺏긴다. 일상적으로 무기력감을 느끼고 안으로 화가 쌓인 남성 병사들의 분노가 때로는 군대에 가지 않은 여성을 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일종의 페미니즘 책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본격적인 인권 책이기도 하다. 저자의 바람대로 여성보다는 남성들에게 더 필요한 책이다.

장혜승 기자 zz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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