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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2020 겨울호
역사비평 2020 겨울호
  • 교수신문
  • 승인 2020.12.1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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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ㅣ역사비평사ㅣ496쪽

온갖 소란 속에서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바이든 정부의 시대가 곧 열릴 것이다. 곧 외교 안보 정책의 새로운 가닥이 잡힐 것이며,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 시절의 대북 정책과 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것은 분명하다. 남북 문제는 이제 남한과 북한의 문제로만 다룰 수 없게 되었다.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평화 체제를 정착시키려면,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개입과 실천이 필요하다. 분단의 사례로 자주 비교되었던 독일이 공식적으로 통일된 지도 올해 30주년을 맞이했다.

『역사비평』 133호의 특집은 독일 재통일을 다뤘다. 독일 통일은 한반도보다 더 복잡하고 강력하게 여러 나라들의 이해가 달려 있는 문제였다. 독일 재통일 3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 독일의 분할에 직접적 역할을 했던 미국, 프랑스, 영국, 소련에게 독일 재통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어떻게 대응했는지 특집으로 살펴보았다. 미국은 주도했고, 프랑스와 영국은 반대했으며, 소련은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단순화된 설명을 벗어나 각국의 입장과 역할을 고찰하려는 시도이다.

박진빈은 독일 재통일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탈냉전의 새로운 역사적 맥락을 어떻게 반영시켰는지 추적했다. 민유기는 기존에 알려진 바와 달리, 독일 통일 국면에서 미테랑 대통령 등 프랑스 정부도 협력과 균형의 연장선 위에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았다. 김승우는 통화와 재정 문제에 관련하여 영국의 입장 변화를 살펴보았다. 김동혁은 소련의 경우를 고찰했다. 그는 유럽의 냉전 역사가 선입견과 달리 ‘짧은 대립과 긴 화해 협력’의 시기였다는 전제하에서 1953년 이후 소련과 서독의 경제적 관계를 긴장과 대립 속 긴 데탕트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소련-서독의 무역과 경제협력이 유럽 데탕트의 토대였으며 독일 통일의 중요한 디딤돌이었다는 것이다.

올해는 전태일 50주기를 맞는 해이기도 하다. 『역사비평』은 ‘전태일의 시대와 노동’을 기획으로 꾸몄다. 임광순은 전태일의 개인사를 한국 도시 하층민의 역사 속에서 설명하고자 했다. 전태일의 가족은 전형적인 도시 하층민이자 ‘이주민’ 가족이었으며, 그의 노동운동과 사상 또한 이 경험에서 생성되었다는 것이다. 50~60년대 한국 도시빈민 가족의 이산과 이주 경험을 토대로, 전태일의 상경과 도시생활, 가출과 방황, 가족의 재결합을 서술하고, 그의 결단을 생존경쟁 원리로부터의 이탈로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전태일에 대한 사회적 기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이다. 최근 『전태일 평전』이 구축한 기존의 전태일상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거니와, 오제연은 기독 청년 전태일의 생활과 신앙을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복원하고 신앙의 전환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했다. 그는 전태일이 기복의 신앙에서 결단의 신앙으로 질적 전환을 이뤄냈으며, 불평등한 노동현실에 대한 투쟁을 기독교적 사명으로 받아들였다고 보았다.

전태일이 극단적인 생존경쟁의 시대라고 봤던 1960~70년대 서울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늘어나는 사람들을 감당할 대중교통 수단이 절실해지면서, 전차가 사라지고 버스가 급격히 늘어났다. 조민지는 이 무렵 도시에 새로 진입한 여성노동자들의 가장 전형적인 직업 중 하나인 버스안내원의 상황을 ‘서비스’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버스 차장이 여성의 직업이 되면서 ‘서비스’가 어떻게 여성노동자들을 굴종시켰으며, 또 사회적인 위계의 아래쪽에 위치시켰는지를 알려준다.

기획 ‘감정의 전환: 기억정치에서 감정동원으로’는 최근 떠오르고 있는 감정(emotion)의 역사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서술할 것인지 보여준다. 이번 기획에서 주로 ‘노스탤지어’를 다룬다. 임승휘는 먼저 노스탤지어라는 개념의 역사를 소개한다. 질병을 가리키는 의학적인 용어에서 출발하여 낭만주의적 감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특히 현대사회에서 대중매체가 노스탤지어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다. 역사학이 노스탤지어를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제언도 경청할 만하다. 장문석은 감정, 특히 노스탤지어가 역사 연구의 대상이면서 주체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현대노스탤지어’와 ‘좌파 멜랑콜리’를 새로운 분석도구이자 개념으로 소개하고, 이를 통해 이탈리아 공산당의 활동가였던 루치오 마그리의 자전적 저작 『울름의 재단사』를 분석했다. 신동규는 프랑스 68운동 세대의 기억과 투쟁을 ‘노스탤지어’를 통해 분석했다. 현재가 과거의 기억을 단순히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스탤지어와 같은 감정을 통해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재구성한다는 그의 지적은 매우 흥미롭다. 이렇게 과거가 현재에 재흡수되면서 역사성 체제가 구성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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