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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불러올리기보다 내려와서 환담을 나누었다
늘 불러올리기보다 내려와서 환담을 나누었다
  • 윤형섭
  • 승인 2020.12.14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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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총장 4년(1994.9~1998.8)의 회고 ⑤
현승종 전 총리를 추모하며…이사장과 총장의 대학이야기

현승종 전 이사장의 겸허는 흔히 아랫사람을 몸 둘 바 없을 만큼 당황케도 하지만 때로는 큰 과오를 예방할 수도 있었다. 예컨대, 이사장께서 어느 날 총장실로 찾아오셨다. 직접 진솔하게 나눌 안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다른 대학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게 이사장과 총장의 관계다. 더군다나 현승종 전 이사장은 나와 비교컨대, 연령은 14세 연상(1919년생)이며 학계는 대선배이고 총장직도 나는 초임인 데 비해서 그분은 이미 성균관대 총장 6년, 한림대 총장 6년의 슈퍼 경력자이다. 나는 예비역 육군 중위임에 비하여 그는 예비역 공군 중령(정훈장교)이다. 관직도 나는 장관 경력인 데 비하여 그분은 국무총리 경력자이므로 어느 모로 봐도 그분은 나를 손쉽게 다룰만한 위치에 있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층(이사장실)으로 나를 불러올리기보다는 2층(총장실)으로 내려오셔서 환담을 나누기 일쑤였다. 그날은 심각한 안건이 있어서였다. 말씀을 들어본즉 총장으로서는 수용할 수가 없었다. 나의 전문적인 판단으로는 불법일뿐더러 불합리하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법인의 고위 실무진의 간곡한 건의가 있었음을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현승종, 지극한 겸허의 리더십

그러나 이사장은 고맙게도 겸허하게 나의 반대의견을 쾌히 받아들였다. 나는 덧붙였다. “앞으로는 그런 건의를 했던 바로 그 사람을 경계하십시오. 큰 변고를 당하게 됩니다”라고 충언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가 겸허하고도 신중한 이사장의 이런 과정이 있었음을 모르고, 그래서 그 계획이 취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례 자기네가 제안했던 대로 시행되었거니 하는 짐작만으로 관계 당국에 불법이라고 밀고를 하는 못된 해프닝이 있었다. 이는 나의 판단과 솔직한 건의가 주효했다고 보기보다는 현승종 이사장의 겸허함과 나에 대한 신뢰가 막아낸 쾌거였다 하겠다. 만약 현 이사장이 오만한 리더십이었다면 측근의 불충과 흉모 한 건만으로도 이사장은 불행한 함정에 빠졌을 것이다. 배후의 누군가는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매우 평범한 일상사 속에서도 현 이사장의 지극한 겸허와 신중함이 때로는 이처럼 불운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강력한 힘으로 작동한다. 

언제나 이사장이 먼저 와 계셨다

이사장과 총장은 학교 이외의 곳에서 만나야 할 경우가 자주 있다. 약속장소에 가보면 언제나 이사장이 먼저 와 계시다가 벌떡 일어나 나를 맞는다. 그 순간의 나의 무안함을 상상해보라. 후일 알고 보니 그분은 언제나 약속시간 10분전 도착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15분전 도착을 목표로 삼았으나 별로 성공치 못했다. 그때 그 일이 너무 힘겨워서 나는 요즘 나의 아랫사람과의 약속에는 정각 도착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요즘에는 나의 상급자도 없거니와 연장자를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 거의 대부분 나의 제자, 후배, 연하자와의 만남이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다. 


뿐만 아니라 언어 사용에서도 현 이사장의 겸허함은 극에 달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분과 나와는 여러 면에서 그러한 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내게(실은 내게 만이 아니다.) 최경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나는 마음 편하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교과서에는 없지만, 겸손 겸허 이 또한 리더십을 구성하는 주된 구성요소이기도 하고 본질이기도 하다. 나도 이를 제자나 후배들에게 적용코자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내게는 그 일이 좀처럼 쉽지 않다. 부자연스럽기도 하거니와 그들에 대한 나의 진솔한 애정이 정서적으로 전달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리더십 이론에는 자질이론과 환경이론이 있다. 현승종 이사장은 자질로 환경을 극복하거나 창조하는 리더십이다.

국무총리 출신 90세 노인의 서민적 행보

모든 공직을 내려놓은 후에도 현 이사장은 인촌상위원회 위원장, 유니세프 한국위원장 등 주로 명예직이나 봉사직에 종사하였다. 그 무렵부터 한국교총에서 1년 반 동안 모셨던 교총 간부들이 계절에 한 번씩 오찬을 초대했다. 나도 언제나 동석하였다. 주최자들이 승용차를 보내드리겠다고 간곡히 말씀드리지만 언제나 사양하시었다. 끝내는 “나의 걸어 다니는 자유를 박탈하지 말라”고 하셔서 차로 모시려고 했던 노력을 멈추었다. 언제나 약속장소 가까이까지 지하철로 오셔서 걷는 것이었다. 국무총리 출신 90노인의 서민적 행보에서 돋보이는 겸허한 모습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더욱 존경케 하였던 것 같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을까, 거동이 불편해지셨다 한다. 알아보니 한강 고수부지에서 운동 삼아 산책하시다가 그만 움푹 팬 곳에 빠져 고관절이 훼손되어 자리에 누우셨다는 것이다. 벼르기만 하던 병문안을 차일피일하는 동안에 그 어른은 운명을 달리하셨다. 그리고는 나의 부득이한 사정과 유족대표의 소망에 따라 마지막 작별 인사마저 못 드렸다. 그 일이 내게는 오늘날까지 큰 빚이 되어 있다. 이글이 그 마음의 빚을 갚는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윤형섭 연세대 명예교수·단국대 석좌교수

연세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했다. 연세대 교수를 거쳐 교육부 장관(1990.12.27.~1992.1.22)을 지냈다. 한국정치학회 회장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서울신문>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으며 건국대·호남대 총장을 지냈다. 현재 연세대 명예교수와 단국대 석좌교수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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