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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
  • 김재호
  • 승인 2020.12.09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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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의 역설
리처드 랭엄 지음 | 이유 옮김 | 을유문화사 | 480쪽

하버드대학교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 리처드 랭엄이 풀어 가는
인간 본성에 관한 가장 도발적이고 매혹적인 이야기

고고학에서 사회사상까지, 다양한 논의와 최신 연구를 넘나들며
인간의 관용과 폭력성의 수수께끼에 다가가다

히틀러는 채식주의자이자 반려견 블론디를 사랑했고 블론디가 죽었을 때 슬픔에 잠겼던 동물 학대 혐오자였다. 스탈린은 18개월 동안 교도소에 있으면서 항상 놀랍도록 조용했고 절대 소리 지르거나 욕을 하지 않았다. 그는 모범수였고 정치적인 편의를 위해 수백만 명을 학살할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미성년자를 노예라 칭하며 강제로 성(性) 착취물을 제작해 유포한 일명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은 평소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는 청년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아주 악한 사람도 유순한 면이 있지만 우리는 그들의 악행을 합리화하게 될까 봐 그들이 친절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에 관한 매우 중요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바로 인간은 가장 악한 종이기도 하고 가장 선한 종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하버드대학교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이자 저명한 진화인류학자인 리처드 랭엄은 이 책에서 이러한 ‘역설적’인 인간의 본성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진화론적 탐구를 바탕으로 고고학, 고생물학, 심리학, 생화학, 신경생리학, 발생학, 뇌과학, 해부학, 근대 사회사상, 형법학 등을 넘나들며 우리의 어제와 내일을 흥미진진하게 가로지른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자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선하거나 악하다는 이분법적 입장의 한쪽에 서는 대신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한 ‘동시에’ 악하다는 인간 본성의 역설을 고스란히 끌어안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독창적이고 도발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는다. ‘자기 길들이기’, ‘반응적 공격성’, ‘주도적 공격성’ 등 흥미로운 개념과 풍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의 폭력과 이타주의, 전쟁과 협력, 사형과 도덕 등의 중요한 주제들에 다가가는 이 책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보는 방식이 달라지는 의미 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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