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05-27 20:14 (금)
강의 '專擔' 교수에게는 全擔만 있다
강의 '專擔' 교수에게는 全擔만 있다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4.04.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밀착취재: 18시간 강의하는 강의전담교수

강의전담교수를 채용하는 대학들이 점차 늘고 있다. 학교 측 입장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강의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강의만 하면 강의의 질이 높아진다’는 기본적인 발상법이 과연 타당한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주당 18시간 강의하는 강의전담교수의 생활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믿음’을 점검해봤다.


지난 달 27일 오후 1시 ㄷ대 인문관 519호 앞. 연구실 바로 앞에서 만난 박 아무개 교수(교양교직학부)의 모습은 상당히 의외였다. 인터뷰 요청 시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던 30대 후반의 힘찬 목소리의 주인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리되지 않은 수염, 해진 바진 끝단, 주름잡힌 티셔츠. 영락없는 50대 초반의 모습이었다. 삶의 고단함이 그대로 배어 나왔다.

ㄷ대 박 아무개 교수는 강의전담교수다. 교육부에 보고된 그의 직급은 ‘전임강사’지만, 교내직급은 ‘강의전임교수’다. 2년마다 계약해야 하며, 총 2회 재계약할 수 있고 최대 6년까지 강의전임교수로 있을 수 있다.

1년 연봉은 2천2백만원. 본봉과 연구비가 합산된 금액이다. 한 달 수령액으로 계산하면 약 1백88만원 가량되고, 실수령액은 1백40만원이다. 박 교수는 두 딸과 전업주부인 부인의 생계를 담당해야 하는 45세의 가장이다.

고교교사 주당 강의시간보다 많아

한 학기 동안 담당해야 할 책임 강의 시수는 12시간. 학기마다 동일 과목의 4개 분반을 맡아, 모두 12시간을 강의해야 한다. 1학기에는 ‘독서와 토론’(3학점), 2학기에는 ‘발표와 토론’(3학점) 과목을 강의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본’ 책임강의 시수다. 교양선택이나 전공필수 한 두 과목 역시 그의 몫이다. 그러니 박 교수가 한 학기 동안 강의해야 하는 책임 시수는 보통 15시간 이상 넘어간다.

그는 처음으로 임용된 2002년 1학기에만 12시간을 강의했을 뿐, 2003년 2학기까지 주당 18시간을 담당했다. 이번 학기 박 교수는 ‘독서와 토론’ 네 강좌와 교양선택과목인 ‘인물의 생애와 사상’까지 더해져 주당 총 15시간의 수업을 맡았다.

고등학교 교사의 주당 평균 강의시간이 16시간임을 고려한다면, 이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많은 수치다.

박 교수의 시간표를 보면 도저히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나온다. 월요일에는 ‘독서와 토론’(오전 10시 30분 ~ 12시), ‘인물의 생애와 사상’(오후 4시 30분 ~ 5시 45분)이 오전, 오후에 각각 진행되고, 화요일에는 ‘독서와 토론’이 오전(오전 10시 30분~11시 45분), 오후(오후3시 ~4시 15분)에 있다.

수요일 역시 ‘독서와 토론’ 야간 수업(오후 6시 ~ 8시 45분)이 있고, 목요일에는 장장 4시간 30분 동안의 ‘독서와 토론’(오전 10시 30분 ~ 오후 2시 45분) 연강 수업이 잡혀 있다.  

또 오후에는 ‘인물의 생애와 사상’(오후 4시 30분 ~ 5시 45분)을 강의해야 한다. 금요일에는 연구일로 잡혀 있어 강의가 없다.

결국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는 셈. 박 교수는 “평일에는 기껏해야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전공서적을 보는 게 전부죠”라며 멋쩍게 말한다.  

자투리 시간은 시험 및 보고서를 채점하거나 교양과목 관련 신간서적을 읽는 데 쓰인다. 또 강의 후 약간의 휴식과 식사를 하다보면 금새 시간이 지나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편안히 자신의 전공 서적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저녁 7시 반 이후에나 가능하다.  

그것도 밤새 할 수 없는 노릇이어서 기껏 두 시간 남짓 책을 뒤적거리다가 밤 10시가 가까운 시간에 연구실을 나선다.

‘강의전임교수’ 명패에도 불구하고 ‘진짜’ 전임교수의 일이 고스란히 그에게 넘겨지는 것 역시 더욱 지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학부제가 실시되고 있는 ㄷ대는 학생지도 책임을 강의전임교수가 맡고 있다.  

1학년 학생들이 전공과목을 수강할 기회가 없어 전공지도 교수를 만날 기회조차 없게 되자, 학교 측은 그나마 학생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은 강의전임교수에게 학생지도를 맡겼다.  

학생들의 내밀한 고민을 들어주는 일부터 시작해 학기 초 신입생들과 모꼬지를 가는 것 까지 모두 그의 몫이다.

학생상담·대교협 평가보고서까지 떠맡아

물론 한 개 반을 지도할 경우 한 달에 8만원씩 지도 수당이 지급된다. 이번 학기 박 교수가 지도하게 된 분반은 모두 두 개 반이니 매달 16만원의 지도 수당이 나오긴 하겠지만, 하루에 두 시간 여 정도 밖에 공부할 시간이 없는 그에게는 학생지도를 아예 맡기지 않는 게 나을 듯싶다.

학사 운영 참여도 박 교수가 할 일이다. ㄷ대 강의전임교수들은 보통 연구소 연구위원 및 실행위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평가 보고서 작성, 학생생활연구소 상담위원 및 연구위원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번 학기 박 교수는 교내 학술대상 출제와 심사를 맡게 됐다. 4월부터 여름방학 전까지 한 달에 한 번 씩 모여 출제 관련 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여름방학 중에는 개인별 또는 팀별(보통 5~6개 팀)로 찾아오는 학생들의 논문을 지도해줘야 한다. 2학기에는 학생들의 논문을 심사해야 한다.

숨가쁜 박 교수의 일상을 듣다보니 전공서적을 한 달에 몇 권이나 읽는지, 논문을 쓰기나 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박 교수,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달이 아니라 한 학기 단위로 말해야 하는데….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전공원서의 경우 한 학기에 반 권 읽습니다. 그렇다보니 제가 서양현대철학이 전공인데, ㄷ대에 들어온 이후로 전공논문은 한 편도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현재 강의전임교수제가 도입 목표대로 강의의 질을 높이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듯 하다. 박 교수는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는 강의가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학원이 있는 대학의 교수와 학부만 있는 대학의 교수의 실력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벌어지죠. 또 그게 강의에 반영되구요. 강의전임교수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처럼 연구를 거의 할 수 없는 강의전임교수제 하에서는 강의의 질이 절대 높아질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6년 후면 헌신짝처럼 버림당하는 강의전임교수의 운명 또한 강의의 질이 높아질 수 없는 이유다. 이는 박 교수 개인의 경험과 주위 강의전임교수를 관찰한 결과다.

 

강의전임교수 3년차인 박 교수는 처음 1년 동안은 기존의 강의 수준을 쫓아가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2년째에는 나름의 교수방법을 계발하고 접목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3년째에 접어드는 이번 학기가 되서야 박 교수는 안정적으로 수업을 이끌어 갈 수 있게 됐다.


강의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필수 조건


문제는 마지막 계약기간인 강의전임교수 5년차와 6년차. 박 교수에 따르면 이 시기는 전임교원 자리를 얻기 위해서 ‘준비하는 기간’이다.

 

주위의 교수들처럼 그간 전무하다시피한 연구업적을 쌓고, 신문지상의 초빙공고를 본다거나 선배들로부터 고급정보를 입수하는 데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2년의 시간동안 강의는 언제나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야 한다.

 

박 교수는 “총 6년 계약기간 중 2년만이 학교 측에서 의도한 강의의 질이 담보될 수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교수는 강의전임교수제도가 폐기될 대상은 아니라고 말한다. 시간강사 때처럼 매 학기 강의 자리를 얻기 위해 아부나 접대를 할 필요가 없고, 고정된 과목 안에서 강의의 수준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에 대한 고민만 하면 되는 강의전임교수의 조건은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박 교수는 “최소한의 연구시간 담보와 재직 학교 ‘전임교원’으로의 트랙 전환 가능성 보장은 학교 측이 바라는 강의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지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