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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체제를 물어뜯는 혁명적 주체”
“좀비, 체제를 물어뜯는 혁명적 주체”
  • 박강수
  • 승인 2020.12.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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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김형식 『좀비학』 갈무리 | 504쪽

 

‘좀비사(Zombie史)’를 편찬할 때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둘을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하 ‘시체들의 밤’)」(1968). 되살아나 걸어 다니는 시체, 식인 등의 개념을 정립하며 사실상 장르 하나를 독자적으로 일으켜 세웠다. 두 번째는 대니 보일의 「28일 후」(2002). 감염의 알레고리와 본격적인 종말 서사가 접목됐고, 무엇보다 이때부터 좀비가 ‘뛰기 시작’했다. 그 뜀박질을 따라 로메로의 ‘시체 3부작’ 이후 주춤했던 좀비물의 새로운 물결이 일었다. 좀비 전성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좀비는 사회적 배경에 따라 진화하는 ‘대중의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0월 『좀비학』(갈무리)을 출간한 김형식 평론가의 설명이다. 이어서 그는 부연한다. ”「시체들의 밤」이나 「28일 후」에는 영화 어디에도 ‘좀비’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로메로는 인터뷰에서 ‘구울(Ghoul, 아랍 신화에 등장하는 식인 괴물)’ 정도를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대니 보일의 영화에서는 좀비가 아닌 ‘분노 바이러스’ 감염자다.” 그럼에도 당대의 대중은 이 작품들을 ‘새 시대의 좀비’로 호명했다는 것이다. 고정된 원본이 없는 좀비는 인민의 인정을 받아 정체성을 수립한다.

김 평론가는 좀비 자체보다도 이 ‘대중의 괴물’에 투영된 정치적∙사회적 은유에 집중한다. ‘좀비학(Zombiology)’이라는 표제 옆에는 “인간 이후의 존재론과 신자유주의 너머의 정치학”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세계대전Z』와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를 쓴 맥스 브룩스는 “이 미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실제적인 불안감이 반영된 좀비 서사는 세상의 진짜 문제를 보는 렌즈를 제공한다”라고 말한다. 좀비물이 창궐하는 시대에 세계의 혼란과 인간의 불안을 읽어내는 창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래된 좀비 매니아이자 문화연구자인 김 평론가에게 좀비를 통해 그가 본 것을 물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다.

조지 로메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
조지 로메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

 

△ 「시체들의 밤」이 만들어진 60년대말은 핵위기와 베트남전으로, 「28일 후」가 개봉한 2000년대 초반은 테러리즘으로 혼란했던 시절이다. 세상에 망조가 드리울 때마다 대중문화에서 좀비가 각광받는 이유가 있을까?

“실제 세계적인 재난이 잦아질수록 좀비 영화 제작편수가 비례해 증가한다는 연구가 있다. 좀비 자체가 대중의 불안과 공포를 흡수해 번성하는 괴물인 셈이다.

늘 외부에서 침략해 오는 기존 괴수서사와 달리 좀비서사에서는 인간이 종말의 원인이다. 감염이라는 특성은 안팎의 구별을 헤집는다. 좀비는 세계의 모순과 균열을 물고 늘어져 상처를 벌려 놓으며, 사태는 해결되지 않고 종말은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 속에서 인간은 생존을 위한 아귀다툼을 벌인다.

이것이 팬데믹, 자연재해, 기후변화, 테러, 금융 위기 등 망가져가는 실제 세계에 대한 관객의 경험을 자극한다. 다소 뒤늦은 한국의 좀비 열풍도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내가 사는 세계가 결코 안전하지 않으며, 언제든 멸망할 수 있겠구나’라는 깨달음에서 오는 아연함이 좀비의 번성을 부른다.”

 

"좀비 아포칼립스는 신자유주의 아포칼립스"

 

△ 좀비서사가 여타의 괴수서사와 본질적으로 구분된다는 지점이 재미있다.

“요컨대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의 운동을 뱀파이어에 비유했다. 자본의 ‘죽은 노동’은 ‘산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에 기생해 잉여를 착취하면서 생존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뱀파이어는 자본가적이고 귀족적인 ‘체제 유지적 괴물’이다. 반면 좀비는 ‘체제 파괴적 괴물’이다. 세계가 멸망할 때까지 달려든다. 급진적이고 혁명적이다.”

 

대니 보일 '28일 후'(2002)
대니 보일 '28일 후'(2002)

 

△ 「28일 후」 이후 좀비물의 특징은 ‘이미 망한 세계’라는 설정이다. 종말은 더 실감나는 소재가 됐다. 책에서도 “좀비의 인기는 실제 세계의 종말과 위기에 당면한 사람들이 ‘생존 전략’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라고 썼다. 좀비 아포칼립스는 ‘신자유주의 아포칼립스의 각자도생 서사’라 볼 수 있나.

“물론이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라는 책에는 “명심해야 할 키워드는 승리나 정복이 아닌 ‘생존’”이라는 말이 나온다. 따라서 위 제목은 ‘신자유주의 서바이벌 가이드’로 다시 쓸 수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규제를 풀어 자유로운 경쟁을 신성화하고, 이 시스템 하에서만 성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선전한다. 사회는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이 되고 개인은 파편화돼 한정된 노동시장에 던져진다. 이런 사회에서 적개심과 분노, 공격성 증대는 자연스럽다.

살아남기 위해 부단한 자기계발의 윤리가 요구되고 그 외 정치적 투쟁과 개선의 노력은 부정된다. ‘정치인은 어차피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냉소와 함께 ‘중요한 건 오직 내 이익 뿐’이라는 인식이 퍼진다. ‘생존하라’라는 지상명령 아래서 우리는 사태의 본질을 놓친다.”

 

"재난이 닥치면 우리는 모두 ‘좀비’가 된다"

 

△ 책 후반부에 나오는 ‘좀비-되기’를 통한 대안 모색은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이미 좀비다(지젝)”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된다. 좀비는 어떻게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나.

“모든 혁명은 정체성의 회복에서 시작한다. 오늘날 미디어와 정치는 세계의 진정한 위기를 숨기고 원인을 알지 못하도록 만든다. 글로벌 자본의 끝없는 탐욕이 근본 원인이라는 사실을, 이 체제에서 본인이 좀비물에서 끝내 살아남는 1%의 인간이 아니라 99%의 좀비였음을 깨달아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벌어진 2011년 월가 점령 시위는 상징적이다. 시위대는 좀비로 분장하고 ‘부자들을 먹어 치우자’, ‘은행원 뇌가 맛있대’ 등 팻말을 들었다. 빈부격차와 청년실업을 꼬집으며 ‘우리가 99%다’라고 외쳤다. 다른 세계, 다른 삶을 원한다는 생성의 욕망을 온몸으로 선포한 것이다.”

 

△ 당장 좀비라는 말은 집회에 나온 시민들에 대한 멸칭처럼 쓰이기도 한다.

“우리는 행동하는 시민들을 폄하하는 ‘촛불좀비’라는 조롱을 알고 있다. 이런 시선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수 담론의 오래된 태도다. 시위자들이 이성적 판단력이 부족하고 감정적으로 선동 당해 몰려 나왔다는 거다. 2017년 폭로된 국정원 블랙리스트 문건에서도 국민들이 좌파 성향에 물들어 ‘좀비화’된다는 표현이 들어갔을 정도다.

다만 개인적으로 좀비라는 단어가 비하의 뉘앙스에 물들었다고 해서 피하기 보다는 이를 전복하고 전유하는 투쟁에 더 관심이 간다. 좀비는 시작부터 소외 받은 자, 배제 당한 자, 박탈 당한 자, 모든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헨리 홉슨 '매기'(2015)
헨리 홉슨 '매기'(2015)

 

△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좀비 컨텐츠가 있다면?

“헨리 홉슨 감독의 「매기」(2015)가 떠오른다. 가출했다가 좀비바이러스에 감염돼 수용소에 갇힌 딸(매기)과 딸을 찾아낸 아버지(웨이드)의 이야기다. 여기서 좀비화는 8주에 거쳐 서서히 진행되는데 점차 망가져 가는 신체와 정신에 괴로워하는 딸과 그런 딸을 보호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영화에서 좀비는 공격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감염된 사람들은 작별을 준비하지만 가족과 친구들은 쉽게 서로를 포기하지 못한다. 보통 좀비 서사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하게 그려지고 비감염자가 감염자를 사살하는 일은 정당한 자기방어로 여겨진다. 하지만 여기서는 좀비를 죽이는 일이 주저되고 내적 갈등을 일으키는 일이며 비극적 상황 속에서 모두가 피해자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좀비 역시 가련한 피해자라는 거다. 이런 식의 ‘포스트 좀비’ 영화들은 좀비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다음은 슈퍼히어로의 비윤리성 파헤칠 것"

 

△ ‘좀비학’ 이후의 연구 테마는 무엇인가?

“윤리학이다. 모두가 각자의 정의, 윤리, 공정을 외치지만 사실 이 중 아무것도 찾아 볼 수 없는 ‘윤리 부재의 시대’다. 인구 수만큼 ‘n개의 윤리’가 있다는 말은 도리어 윤리가 없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 요컨대 능력주의, 성과주의, 기회의 평등은 윤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들은 신자유주의의 경쟁 지상주의, 승자독식 이데올로기의 하위항목에 지나지 않는다. 윤리는 새로운 세계를 제안하고 이를 위해 힘쓰는 일이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슈퍼 히어로 서사를 비틀어 보려고 한다. 슈퍼 히어로 중에 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무도 없다고 본다. 이 ‘일상을 지켜주는 영웅’들은 극단적인 악을 상대하며 세계를 현 상태로 유지하는 일이 윤리의 전부라고 주장하는데 이를 전복하고 싶다.”

 

김형식 문화평론가사진=김형식
김형식 문화평론가
사진=김형식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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