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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진실을 통과하는 두 곳의 전시관
[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진실을 통과하는 두 곳의 전시관
  • 박찬희
  • 승인 2020.12.07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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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5·18광주민주화운동 특별전 「그날이 오면」이 끝났다. 5·18 40주년을 맞아 개최하였는데 5·18을 주제로 서울에서 열린 대규모 전시로는 최초였다. 더구나 한국 현대사를 다룬 국립박물관에서 열려 그 의미를 더했다. 수도의 국립 기관에서 체계적인 전시로 5·18의 진실을 보여주기까지 무려 40년이 걸린 셈이다.

5·18을 종합적으로 보려면 역사의 현장 광주로 가야한다. 5·18의 중심지인 옛 전남도청(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앞 금남로에는 두 전시관이 자리 잡았다. 2015년에 개관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하 기록관)과 2020년에 개관한 5·18기념공간(이하 기념공간)이다. 두 곳은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깝다. 이중 기록관은 5·18민주화운동의 전반적인 과정과 의의, 관련 기록물을 전시하였고 기념공간은 헬기 사격을 중심으로 전시하였다. 때문에 두 곳은 5·18의 역사를 서로 보완해 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기록관 외관 ⓒ박찬희

진실을 알리는 기록관이 되다

기록관 건물은 원래 옛 전남도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던 가톨릭회관이었다. 5·18 당시 이곳에 있던 윤공희 대주교는 5·18의 실상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하였다. 그는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신부들과 함께 노력하였으며 5·18의 가려진 진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5·18의 한복판에 있던 가톨릭회관이 이제는 5·18 관련 기록을 모으고 진실을 알리는 기록관이 되었다. 지금은 가톨릭회관이 아니지만 6층에는 윤공희 대주교의 집무실이 보존되었다. 집무실 앞에 걸린 글은 윤공희 대주교가 추구한 삶의 자세를 잘 보여준다. 

“사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살지 못해 지금도 반성하며 살고 있습니다."

5·18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그 성과가 한 곳으로 모여 탄탄한 기록관이 탄생하였다. 특히 5·18 관련 각종 기록들은 이곳으로 모여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연구되고 공개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기록관은 견고한 진실의 보루와 같다. 

기록관의 전시실은 모두 4곳이다. 1전시실은 항쟁, 2전시실은 기록, 3전시실은 유산을 주제로 하였으며 4전시실은 윤공희 대주교 집무실 등 가톨릭센터 당시 모습이다. 1전시실은 5·18당시 중요한 사건들을 모형 등을 이용해 입체적으로 전시하였다. 2전시실의 주제는 5·18 당시 상황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기록물 등 두 가지다. 특히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각 날짜별로 발생한 일들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3전시실은 5·18 관련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 다른 나라의 인권과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되었다. 세 전시실을 살펴보면 5·18의 전반적인 상황과 기록물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기록관의 전시실 ⓒ박찬희

전시물 가운데 특히 기록물이 중요하다. 이곳의 기록물은 5·18과 관련된 다방면의 것이다. 기록물의 생산 주체는 시민, 기자, 공공기관, 미국을 비롯한 외국까지 무척 다양하다. 기록물의 종류는 개인의 일기로부터 피해자들의 병원 치료기록, 해제된 미국의 기밀문서까지 광범위하다. 기록들은 퍼즐처럼 흩어진 그날의 진실을 밝히는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기록들을 발굴하고 모으고 연구하는 지난한 과정이 없었다면, 기록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면 이 기록들은 오래 전 흩어지고 사라졌을 것이다. 
방대한 기록물은 수장고에 보관되었으며 그중 일부가 전시되었다. 그 당시를 겪었던 개인의 일기는 공적 기록에서는 찾기 어려운 당시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았다. 기록물 가운데 투사회보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 언론에 맞서 위험을 무릅쓰고 그날그날의 진상을 전했다. 집회 당시 시민들이 작성한 여러 원고들은 진실을 왜곡하는 권력에 맞서 시민의 입장을 대변하였다. 특히 5월 25일 시민군 대표가 작성한 ‘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글은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만약 이러한 기록이 없었다면 진실은 쉽게 왜곡되었을 것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기록관의 전시실 ⓒ박찬희

세계기록유산 등재된 5·18의 기록

현재 5·18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00년부터 시작된 5·18 관련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노력은 마침내 2011년 결실을 맺었다. 5·18민주화운동이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였고 나아가 세계 여러 나라의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 진실을 찾고 연구하고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보상을 받는 일련의 과정이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된다는 점이 주된 등재 이유였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기록의 중요성을 알고 권력의 감시 속에서도 기록을 보존하고 수집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념공간은 옛 전남도청 바로 앞에 있는 전일빌딩245에 자리 잡았다. 전일빌딩245의 원래  이름은 전일빌딩이었다. 2016년 이곳에서 탄흔이 발견되었고 이듬해 조사에서도 추가로 나왔다. 모두 245개였다. 전일빌딩245는 탄흔의 숫자에서 유래하였다(2019년 탄흔 25개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는 탄흔이 헬기 사격으로 생긴 것으로 추정하였다.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증거였다. 이에 광주시에는 이 빌딩을 5·18사적지로 지정하였다. 또한 시가 매입한 이 빌딩을 리모델링하면서 장소성과 역사성을 고려해 이곳에 5·18 관련 공간을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그 결과 2020년 3층, 9층, 10층에 5·18기념공간이 문을 열었다. 이중 기념공간의 핵심은 탄흔이 발견된 9층과 10층이다.

 

탄흔이 발견된 전시공간 입구 ⓒ박찬희

"탄환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기념공간에서는 무엇을 전시했을까? 이곳에서 발견된 탄흔은 이곳의 현장성과 역사성을 상징한다. 전시는 이 점에 초점이 맞춰졌다. 먼저 탄흔이 발견된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기둥과 바닥의 탄흔이 있는 곳은 특별히 표시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관람객은 눈앞의 탄흔을 보면서 이곳이 40년 전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음을 실감한다. 한쪽에는 이 탄흔이 헬기 사격으로 생겼음을 증명하는 자료들을 제시하였다. 이어진 전시실에서는 5·18 당시 계엄군의 발포 타임라인을 보여주고 헬기 사격을 둘러싼 거짓과 진실을 밝혔다. 이중 압도적인 것은 거대한 영상과 도시 모형을 활용한 헬기 사격 장면으로 영상을 보고 있으면 그날로 돌아간 듯하다. 
기념공간은 이웃한 기록관에서 다루지 못한 주제를 다루었다. 5·18 왜곡의 역사, ‘북한군이 개입했다’와 같은 가짜 뉴스가 그것이다. 또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적극적으로 구축하였다. 이곳에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여러 관계자의 증언을 들을 수 있다. 전시실 가운데 눈여겨 볼 공간이 에필로그다. 이곳은 전시의 마지막 부분으로 ‘뼈와 꽃’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상영된다. 이 영상을 보면서 관람객은 숙연해진 감정을 정리하고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기념공간 입구 ⓒ박찬희

기록관이 일반적인 전시 방법을 사용한 반면 이곳은 참신한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전시 방법을 구현하였다. 우선 전일빌딩의 폐자재를 활용한 전시와 감각적인 공간 배치가 인상적이다. 이중 가장 흥미로운 건 기념공간 입구다. 관람객은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뜻밖의 설치미술 작품을 만난다. 맞은 편 벽면에서 총탄이 줄을 지어 관람객에게 날아온다. ‘민주의 탄환’이라는 작품으로 그 당시 탄환이 누구를 향한 것인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관람객에게 묻는다. 이 물음은 기념공간 전체를 관통하는 물음이기도 하다.
기념공간 위층은 ‘전일마루’라는 건물 옥상이다. ‘전일마루’는 기념공간의 연장선이다. 이곳에서는 5·18의 중심지였던 옛 전남도청과 분수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기록관과 기념공간을 본 후 이곳에 오르면 그날의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다. 이곳에서 그들은 왜 총을 들었는가, 죽음으로 지키려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나를 다시 묻게 된다.

 

박찬희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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