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20:35 (목)
[심영의의 문학프리즘] 한 지방자치단체의 황당한 역사 인식
[심영의의 문학프리즘] 한 지방자치단체의 황당한 역사 인식
  • 심영의
  • 승인 2020.11.30 08: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여러 노력들은 의미 있지만
조선 침략 앞장선 왜장 동상 건립 추진한 순천시의 역사인식은 천박

유하령 역사장편소설 『세뇨리따 꼬레아』는 임진왜란 후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포로들, 특히 노예의 삶을 강요당했으나 조선에서의 공식기억에서는 소거당한 여성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으로 삼고 있는 ‘세뇨리따 꼬레아’는 스페인어로 ‘조선 여인’이라는 뜻이다. 전쟁이 끝나고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의 숫자는 어림하여 10만 명이 넘는다. 그들을 적에게 잡힌 포로라는 뜻의 피로인(被擄人)이라 부른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발생한 피로인들의 숫자에 관해 학자들은 10만 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송환할 수 있었던 인원은 32차례에 걸쳐 7811여명 정도에 불과하였고 대다수의 피로인들은 일본에 남겨지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포로로 왜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당하며 겨우 목숨을 건진 한 인물(남성 포로)의 진술, 곧 “전쟁을 일으켜 조선인들을 노예로 끌고 간 왜놈들이 악랄하게 나쁜 놈들이고, 바다를 건너와 마구잡이로 조선인들을 끌고 간 포르투갈 놈들이 악귀 같은 놈들이지만, 백성들을 지키지 못하고 이 먼 땅에 노예로 끌려가게 한 조선 왕이 못나고 가장 나쁜 놈”(299쪽)이라는 진술 속에 있다. 

또 다른 문제는, 포로로 끌려간 이들 중에서 사대부들에 관한 다음의 진술이다. “사대부들은 끌려가서도 본분을 잃지 않았다. 그들이 유교적 도덕을 받들 수 있었던 것(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결한 이들의 제사를 지냈고, 생일을 챙기고, 조선에 계시는 아버지의 생일상을 차리고 통곡하고, 조상들의 제사도 모두 챙기며 곡을 했다)은 그들과 함께 끌려간 종들 덕분이었다” 는 진술 속에 들어 있는 계급 간의 건널 수 없는 간극에 대한 인식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명연합군에 의해 평양성이 탈환된 뒤 일본군은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조선백성들을 절멸시킨다. 유성용의 『징비록』 기록에 따르면 7천여 조선병사와 3만여 백성들 모두가 처참하게 학살을 당하고 말았다. “이 싸움에서 살아남은 우리 병사와 백성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으니, 왜적의 침입이 시작된 이래 이처럼 많은 사람이 죽은 적이 없었다”라고 기록될 정도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7년여 동안 우리가 입은 피해는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하다. 다만 오래전의 일을 두고 지리적으로 이웃해 있는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으로 일관하는 것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 강점과 식민지배의 상흔은 여전히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아베는 곧바로 태평양전쟁 전범들이 합사되어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등 과거의 전쟁 범죄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여러 노력들은 의미 있겠다. 다만 전남 순천시에서 한중일 평화정원을 조성한다면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침략에 앞장선 고니시 유키나가의 동상건립을 추진했던 사실에는 황당함을 넘어 천박한 역사인식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1592년 사위인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와 함께 병력 1만 8천 여 명을 이끌고 부산을 침공해 선봉장으로 활약하여 평양성을 함락시킨 인물이다. 순천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참전한 한·중·일 장군 5인의 동상을 건립하여 전쟁을 추모하고 동북아시아 평화공존의 장으로 만들 계획이었던 모양이다. 311억 원이나 되는 돈을 들여 그러한 사업을 추진할 가치가 있는 지도 의문이거니와 조선을 침략하고 유린했던 일본 장수의 동상을 세워 추모하고 기념할 일이 무엇인가.    

비난여론에 사업추진 계획을 변경하겠다고 해서 저 천박하고 황당한 사건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갈 일은 아니다. 

심영의(문학박사. 소설가 겸 평론가)
심영의(문학박사. 소설가 겸 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