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09:34 (목)
아편전쟁
아편전쟁
  • 교수신문
  • 승인 2020.11.30 09: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경호 지음 | 일조각 | 496쪽

서구의 학자들은 아편전쟁의 결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전쟁으로 중국이 세계 무역질서에 편입됨으로써 16세기 이래 진행된 세계화가 완성되었다는 것이 통설로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이 전쟁이 동서 문명 사이의 오해와 경제적 탐욕 때문에 벌어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덜 주목한다. 이 책은 아편전쟁이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 아닌 무역, 정치, 외교술, 국제 질서 등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어 일어났음에 주목하여, 이 요소들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여 전쟁에 이르게 되었으며 전쟁의 결과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아편전쟁에 관한 논의는 이분법의 스펙트럼을 가진다. 문명화된 영국과 덜 문명화된 중국, 해양국가와 대륙국가, 개방과 폐쇄, 군사력의 우세와 열세 등이 대표적 이분법이다. 이런 구분은 원래 유럽인이 시작했지만, 중국도 중국은 피해자이고 유럽은 제국주의 침략자였으며, 중국 상인은 규범에 따라 무역을 진행한 반면 유럽 상인은 이익을 노려 밀수를 일삼았다는 시각에서 이분법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 책은 이런 이분법에 맞추어 아편전쟁을 재단하지 않는다. 다양한 사료들과 여러 연구들을 토대로 하여 전쟁이 어느 시점에,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자세하면서도 사실적으로 서술했다.

아편전쟁으로 중국을 열어젖힌 영국이 막대한 이익을 거둔 것은 분명하다. 다른 유럽 국가와 미국도 이에 편승해서 이익을 거두었다. 중국은 왕조국가에서 벗어나 근대국가로 변했고, 서구 지식인들은 서구 문명의 중국 역사에 대한 기여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이 전쟁으로 중국 사회에서 서구는 침략자로 각인되어 강렬한 외국인 혐오증을 배태했다. 21세기 중국에서 아편전쟁은 객관적인 역사 탐구 주제가 아니다. 아편전쟁은 과거의 아픈 기억을 증폭시켜 중국인을 거대한 희생자 집단으로 만들어 결속을 강화하고 공산당의 집권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슬로건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보다 180년 후의 세상을 사는 세대가 그 아픔을 더 강하게 느끼는 것이 아편전쟁의 특수한 단면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