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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번아웃’…극심한 스트레스 호소하는 美 대학교수들
코로나19 ‘번아웃’…극심한 스트레스 호소하는 美 대학교수들
  • 정민기
  • 승인 2020.11.27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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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베이커스필드대 루투쿠 교수(영문학과)는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춘다. ‘평소보다 좀 더 일찍 일어나면 밀린 일을 다 처리할 수 있겠지’라는 마음에서다. 어린아이 둘을 키우는 그녀는 평소 같았으면 오전 7시에 일어나 보육원에 아이들을 맡기고 학교로 출근했을 테지만, 코로나19 이후 상황은 확 바뀌었다. 보육원은 문을 닫고 수업도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익숙치 않은 수업방식에 적응하느라 처리해야 할 일들도 잔뜩 밀렸다. 새벽에 일어난 그녀는 컴퓨터 앞에 앉는다. 140여 명의 학생이 제출한 과제에 피드백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빈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번아웃’이다.

‘번아웃 증후군’이란 정신적으로 완전히 탈진된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일의 능률과 성과가 현저하게 줄어드는 증상을 의미한다.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거나 직무가 개인적인 기대 수준을 만족하지 못할 때 주로 나타난다. 

코로나19가 장기화 됨에 따라 번아웃 증상을 호소하는 교수가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고등교육 전문지 <더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이하 <크로니클>)은 지난 10월 1천100명의 교수와 강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고등교육 종사자들의 정신 건강(mental health)에 대한 조사였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심각했다. 3분의 2가 넘는 응답자들이 최근 몇 달간 ‘매우 극심한’ 스트레스와 피로를 느꼈다고 답한 것이다. 

특히 부양해야 할 아이들이 있는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이들과 함께 오랜 시간 집중력을 요구하는 연구나 수업 준비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연구나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워

도제식으로 운영되는 예술 분과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몬타나 주의 프로비던스대 베커 교수는 이번 학기에 도예(ceramics) 수업을 맡았다. 그는 150만원이 넘는 돈을 들여 온라인 수업 장비들을 구입했다. 도자기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어두운 방에서 노트북에 내장된 카메라로 온라인 강의를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장비를 사용하더라도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손끝의 감각을 총동원해야 하는 도제식 수업을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전자기기나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교수들 역시 골머리를 앓았다. 세이저 휴스턴대 교수는 “지난 봄학기 수업은 악몽이었다”라며 “여름 방학 동안 온라인 강의 진행에 대한 6시간짜리 특강을 들었는데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250여 명이 수강하는 온라인 수업에서 소리와 영상이 서로 맞지 않다가 접속이 끊기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온라인 시험에서 단체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설치된 포털 사이트 방화벽이 문제를 일으켜 몇몇 학생이 시험을 못 보는 일도 벌어졌다.

조지아 공대의 포프-루악 교육전문가는 “학술계는 경쟁이 심하고 이는 완벽주의자를 만들어낸다”며 “익숙하지 않은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기 자신을 과도하게 희생시키는 교수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은 ‘생존 모드(survival mode)’라며, “완벽을 추구하다가 번아웃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진전되기를 기다리면서 조심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교수들 사이에서 힘든 일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서로 조언과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라고 그는 말했다.

대학은 수백 명의 교수와 강사들이 독자적으로 연구와 수업을 진행하는 구조이다. 기업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지는 않다. 애로사항이나 노하우를 공유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더해, 완벽주의와 남한테 손 벌리기를 꺼려하는 학술계의 문화가 교수와 강사의 정신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 포프-루악의 설명이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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