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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씨네로그] 세 원숭이 이야기
[정재형의 씨네로그] 세 원숭이 이야기
  • 정재형
  • 승인 2020.11.24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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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원숭이는 단순하지 않은 인생살이 비유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거짓말하는 세 가족의 이야기
네이버 영화

전해 오는 것 중에 세 원숭이가 이상한 형상을 한 부조 혹은 그림이 있다. 한 명은 양손으로 귀를 막고, 한 명은 눈을 가리고, 한 명은 입을 막고 있다. 이 형상은 고단한 인생살이를 비유한다. 이 비유가 왜 존재하게 된 걸까? 인생을 살다 보면 이해할 때가 있다. 어려서는 잘 모른다. 모든 게 직설적이고 직선적이다. 살다 보면 거짓말하는 게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다. 억울해도 그렇게 해야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그때를 대비하여 비유가 미리 만들어진 것이다. 

불교에서는 원숭이를 마음에 비유한다. 한자로 심원(心猿)이라고도 쓴다. 원숭이는 재주가 뛰어나기는 해도 경망스러운 짐승이다. 인간의 마음이 온갖 것을 만들어내지만 변덕이 심해서 판단을 그르친다. 마음을 원숭이에 비유한 것은 그런 뜻이다. 세 원숭이는 단순하지 않은 인생살이를 비유한다. 터키감독 누리 빌제 세일란의 칸느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쓰리 몽키스」(2008)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남편, 아내, 아들. 이 세 명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그 거짓말은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알고도 말하지 못하는 그런 일이다. 인생이 단순하지 않은 고차원의 경지이고, 살기 어렵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 영화는 가르쳐 준다. 

영화의 발단은 정치인 서벳의 부도덕에서 출발한다. 그는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인 후 도주해버린다. 그 일을 운전기사인 이윳에게 돈을 주고 시킨 후 자신은 뒤에 은닉해 있다. 자중하고 있어야 할 서벳은 이윳의 아내 하세르를 유혹한다. 유혹에 넘어간 하세르 역시 부도덕한 인간이 된다. 그녀는 이윳을 하루 아침에 배신하고 만 것이다. 

서벳은 돈 때문에 찾아온 하세르를 유혹하기 위해 차에 태우고 간다. 서벳은 하세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하세르는 의아해하지만 순진하게 그 말을 믿는다. 이때 장면은 서벳이 차창 밖으로 팔을 내밀며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 나타난 장면은 멀리 등대가 보이는 바닷가 부두다. 이어 아내는 남자의 의도를 모른 채 그의 사랑 고백을 받아들이고 만다. 마침 그 곳의 풍경을 보여주는 이유는 서벳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암시를 관객에게 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하세르는 그 장소가 어떤 곳인지 모른다. 하지만 서벳과 관객은 그곳이 어딘지 안다. 바닷가 부두는 과거 서벳과 하세르의 남편 이윳이 만나 검은 거래를 했던 곳이다. 서벳에게 그 장소의 의미는 남편 이윳이 잠시 감옥에 가 있으니 몰래 아내와 즐겨도 된다는 속내가 숨어 있다.  

이윳은 아들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다른 이에게 부탁한다. 영화는 처음으로 돌아간다. 가족을 위해 자신이 생존해야 한다. 그 생존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 인생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그리 정의롭지도 도덕적이지도 않다. 생존이 본질을 앞서는 것이다. 생존 앞에서는 그 어떤 이념이나 논리도 무력해진다. 일단 살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생명보다도 소중한 가치는 어디에도 없다. 

남편을 배신했던 아내 하세르도 죽지 않을 수 있다. 아들을 고발해야만 하는 아버지지만 오히려 그를 감춰주기 위해 남에게 부탁을 한다. 그는 두 번째 부도덕한 일을 한다. 처음엔 돈을 위해서, 두 번째는 아들을 위해서 부도덕을 자행한 것이다. 그가 부도덕한 아내를 단죄할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죄지은 인간은 누구도 남의 죄를 물을 수 없다. 깨끗한 자만이 남을 비판할 수 있다. 이건 성경에 나온 말이다. “누구든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치라.” 이 말에 아무도 나서서 마리아를 돌로 치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는 증거다.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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