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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다원주의와 몸미학…미학 넘어선 미학
문화다원주의와 몸미학…미학 넘어선 미학
  • 이승건
  • 승인 2020.11.27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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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이라는 말은 매력적이다!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예술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도 이 단어는 매력적인 동시에 낯설기도 한 용어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말은 일본인들이 독일어 ‘Äesthetik’을 수입하여 번역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용법에 따라 미학(美学, びがく)으로 명명한 것이 우리의 근대적 삶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서평자는 개인적으로 이 말의 다른 번역, 즉 심미학(審美學)으로 부르길 더 선호한다. 왜냐하면 ‘미학적’ ‘미적’ ‘심미적’으로 번역이 가능한 이 말의 형용사(aesthetic)는 ‘심미적’으로 표현할 때 그 의미가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미학을 자신의 업으로 삼고 있는 미학자 슈스터만(Richard Shusterman, 1949~ )에게도 미학(Aesthetics)이라는 말은 좀 불편한 구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예술과 감정, 쾌, 지식, 엔터테인먼트, 문화 그리고 양식(스타일) 뿐만 아니라 미적 경험에 대한 풍요로운 논의와 구체적인 분석을 내세우며 자신만의 독특한 현대미학의 담론을 제시하고 있는 그의 책 제목에 미학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Performing Live: Aesthetics Alternatives for the Ends of Art (Cornell University Press, 2000 / 허정선ㆍ김진엽 옮김, 『삶의 미학: 예술의 종언 이후 미학적 대안』, 이학사, 2012. 이하 『삶의 미학』)이라고 명명한 점에서 볼 때 그렇다고 하겠다. 

 

슈스터만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학위(1984년)를 받은 후, 1986년부터 2004년까지 탬플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철학뿐만 아니라 비교문학, 예술이론, 미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에 관심을 쏟으며 각각의 분야에서 의미 깊은 연구물들을 축척해 낸, 현재는 플로리다 애틀랜틱 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인물이다. 특히 2007년부터 ‘몸, 영혼 그리고 문화를 위한 센터’(Center for Body, Mind, and Culture)’를 설립하여 몸의 의식과 관련한 자신의 ‘몸미학’ 연구를 더욱 확장ㆍ발전시키는 등 요즘도 연구 활동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는 실천적인 미학자이다. 

 

그의 서명(書名)에서 눈에 띄는 점은 단연 ‘Performing Live’와  ‘Ends of Art’이다. 전자는 번역본에서 ‘삶의 미학’이라고 의역한 부분이고, 후자는 ‘예술의 종말’ 또는 ‘예술의 종언’이라 읽히는 부분이다. 사실 ‘예술의 종말’이라는 표현은 슈스터만이 독창적으로 사용한 문구는 아니다. 예를 들어 미학자 단토(A. Danto, 1924~2013)는 『예술의 종말 이후 : 컨템퍼러리 예술과 역사의 울타리』(After the End of Art-Contemporary Art and the Pole of History, Princeton Press, 1997 / 이성훈ㆍ김광우 역, 『예술의 종말 이후, 컨템퍼러리 미술과 역사의 울타리』, 미술문화, 2004)에서 예술의 탈-역사적(post-historical) 시대에 들어서면서 모더니즘 시대의 예술이 걸어 온 배타적인 예술사의 에피소드가 끝났음을 지적하기 위해 ‘예술의 종말’이라는 수사어(修辭語)를 제시한 바, 그것은 단순한 끝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예술의 탈-역사적(post-historical) 시대에 들어서면서 모더니즘 시대의 예술이 걸어 온 배타적인 예술사의 에피소드, 즉 선언문의 시대로서 특정한 종류의 운동과 특정한 종류의 양식만을 확정해서 이것만이 유일하고 중요한 예술이라고 간주하며 그 경계 밖 예술들을 모조리 제거한 예술의 이데올로기 시기의 예술 멸망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특히 단토는 당시 미국 학계의 주류였던 분석철학으로부터 헤겔적인 역사주의로 전회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논의를 미술사의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철학과 예술에 대한 변증법적인 사고를 통해 ‘예술의 종말’과 ‘그 너머의 지평’까지를 학적 논의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의도에서 ‘예술의 종말’이라는 표현을 제시한 바 있다. 

 

A.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 원저(1997)와 번역서(2004)
H. 벨팅의 『미술사의 종언』 독일어 원저(1984)

또한, 이보다 앞서, 미술사학자 한스 벨팅(Hans Belting, 1935~ )의 경우, 『미술사의 종언』(Das Ende der Kunstgeschichte, Munich, 1984 / The End of the History of Art?, translated by C.S. Woo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7)에서 기존의 보편적이며 통합적인 개념을 추구해 온 미술사학의 위기적 상황을 인식하고,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미술사의 정태적인 개념으로부터의 개방과 새로운 미술사 방법의 수립을 주장하면서 ‘예술의 종언’을 내세웠었다. 

 

그렇다면 슈스터만은 ‘예술의 종언’을 어떤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을까? 그는 점차 글로벌화 되어가는 사회에서는 문화다원주의론적 맥락에 입각한 삶의 예술(arts of living)을 추구한다고 강력히 주장(제1부 ‘미적 경험과 대중예술’을 소제목으로, 2장 엔터테인먼트: 미학을 위한 하나의 제안 및 3장 컨트리 뮤지컬 등)하는데, 이때의 삶의 예술을 탐구함은 바로 몸미학(somaesthetics)의 이론을 펼치는 것(제2부 ‘몸, 자기 그리고 사회’를 구성하면서, 5장 몸미학 그리고 몸/매체 논쟁 및 6장 몸으로의 전환: 현대문화에서 신체 배려 등)이라는 자신의 연구지평에 스스로 강한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이 같은 ‘예술의 종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R. 슈스터만의 『삶의 미학』 원저(2000) 앞표지와 뒤표지

슈스터만은 동시대에 이르러 급속히 증가하는 신체이론과 문화연구 분야에서 거론되는 핵심적인 논쟁점들을 면밀히 다루어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연구와 관련지을지를 이 책에서 심도 있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몸과 매체의 관계가 최근에 더욱 부상되면서 새로운 논쟁을 다양하게 생산하며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기 때문에, 또한 실행예술(performing arts)이 점점 더 현대의 삶 속에서 시사하는 바가 증대되고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내용을 『삶의 미학』 제2부 몸미학의 지평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부분이 서평자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다음의 내용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슈스터만이 주장하는 몸미학의 세 가지 근본적인 차원에 대해 접근해 볼까 한다. 그는 자신의 몸미학을 분석적 몸미학(analytic somaesthetics), 프래그머티즘 몸미학(pragmatic somaesthetics), 실천적 몸미학(practical somaesthetics)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특히 이와 같은 몸미학의 세 가지 하위영역들은 그가 구상하는 몸미학의 지평을 떠받드는 요소들이자 종국에는 이 세 가지 차원이 지향해야 하는 통일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한다. 

 

몸의 이론적 차원, 분석적 몸미학

 

슈스터만이 제시하는 첫 번째 몸미학의 차원은 ‘분석적 몸미학(analytic somaesthetics)’이다. 이것은 신체적 지각과 실천의 본성을 기술하고, 현실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구성에 이러한 신체적 지각과 실천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기술하는 것을 지칭한다. 또한 이와 같은 이론적 차원은 몸에 대한 표준적인 존재론적 차원의 문제와 인식론적 차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가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일종의 사회ㆍ정치적 탐구를 포함하는 연구영역을 말한다. 예를 들어, 사회ㆍ정치적 탐구는 몸이 어떻게 권력에 의해 형성되는지,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몸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건강과 미에 대한 신체적 규범과 심지어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범주가 어떻게 사회적 강제력에 의해 유지되는 동시에 그것에 기여하는 구성물이 되는가에 관한 탐구라고 슈스터만은 단언한다. 특히 이러한 신체적 문제에 관한 푸코의 접근방법에 대해서 몸에 관한 다양한 교의, 규범 그리고 원리의 역사적 출현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계보학적’(genealogical)이라고 평가한다. 슈스터만은, 그 자신 분석미학자답게, 이와 같은 몸에 대한 푸코식 접근은 두 가지 이상의 공시적 문화의 신체적 관점과 실제를 대조하는 분석적 미학의 비교 형식에 의해 보완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분석철학이나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 1908~1961)의 현상학에서 몸과 마음의 관련성을 표준 철학으로 이론화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보편주의적 경향을 지닌 분석적 몸미학의 공간도 있음을 인정한다(204~205쪽). 

 

몸의 개선과 실천의 차원, 프래그머티즘 몸미학

 

슈스터만이 주장하는 몸미학의 두 번째 분야인 프래그머티즘 몸미학(pragmatic somaesthetics)은 신체의 개선 방법들과 이 방법들을 비교하고 비판하는 것과 관련된다. 제안된 방법이 존재론적이든, 생리학적이든, 사회학적이든지 간에 그 실행 가능성이 몸에 대한 몇 가지 사실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프래그머티즘 몸미학의 분야는 항상 분석을 전제로 한다고 본다(205쪽). 그러나 프래그머티즘 몸미학의 분야는 분석이 기술하는 몇 가지 사실을 단지 평가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몸을 다시 만들면서 그 사실들을 개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하기 때문에 단순한 분석을 뛰어넘는 행위유발의 방법론적 지평을 지닌다고 간주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슈스터만은 인류 역사상 아주 오랫동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훈련이 몸의 경험을 개선하고 몸의 사용을 개선하기 위해 권장 되어왔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각종 다이어트, 의복 형식, 신체 단련(gymnastic training), 춤과 무술, 화장술, 보디 피어싱(body piercing)과 흉터 내기(scarification), 요가, 마사지, 에어로빅, 보디빌딩,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 그리고 알렉산더 기법, 펠덴크라이스 요법, 생체에너지학 처럼 심신의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웰빙 분과들을 그 실례로 들고 있다(205쪽). 또한 이러한 다양한 실천방법론은 대략 몸미학의 ‘재현적’(representational)이고 ‘경험적인’(experiential) 형식으로 분류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재현적인 몸미학은 몸의 외양(external appearance)을 강조하는 반면, 경험적 몸미학은 몸의 내적 경험의 미적 성질(the aesthetic quality of body’s inner experience)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 특히 경험형은 우리로 하여금 ‘더 잘 느끼게’(feel better)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함을 강조한다. 즉 우리 경험의 질을 더욱 만족스럽고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점에 있어서 그리고 몸의 경험에 대해 더욱 예리하고 지각력 있게 감지하도록 만들어 주는 점에 있어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화장술의 실천들(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에서 성형수술에 이르기까지)은 몸미학의 재현적 측면을 보여주며, 반면에 선(Zen) 명상이나 펠덴크라이스 요법과 같은 실천들은 몸을 통한 자각에 이르는 훈련으로서 몸미학의 경험적 측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재현형과 경험형이 서로 엄격히 구분되어 배타적인 성질을 지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양자 사이에는 불가피한 보완성이 있음도 강조한다. 왜냐하면 재현과 경험, 즉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은 불가피한 상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들고 있다.  

 

여하튼 슈스터만이 제시하는 ‘프래그머티즘 몸미학’은 재현적 몸미학과 경험적 몸미학 이 둘의 상호보완을 통해서 성과를 이룬다. 특히 이 프래그머티즘 몸미학은 몸과 사회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몸과 관련된 사실들을 개선하는 다양한 방법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분석적 몸미학을 넘어서는 듯 보인다. 

 

몸의 구체적인 활동과 배려의 차원, 실천적 몸미학

 

슈스터만이 제시하는 세 번째 몸미학은 ‘실천적 몸미학’(practical somaesthetics)인 바, 그는 이것을 구체적인 실천(actual practice)이라는 관점에서 두 번째 몸미학인 프래그머티즘 몸미학의 다양한 방법론들과 구별을 짓는다. 그는 이 실천적 몸미학을 몸으로 하는 자기 개선을 추구하는 구체적인 실천들, 다시 말해 직접 사지를 움직임으로써 행하는 것에 한정한다(207쪽). 또한 그는 이 실천적 몸미학을 몸에 대한 이론이나 텍스트를 생산해 내는 첫 번째 몸미학의 차원인 분석적 몸미학과도 거리를 둔다. 이와 같이 실천적 차원은 소위 ‘말하기의 차원이 아니라 행함의 차원’이기 때문에 아카데믹한 몸 철학자들이 가장 무시하는 영역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담론의 로고스에 의한 전통적인 몸 철학은 몸을 텍스트화 하는 것에 머무르고 만다. 그러나 슈스터만에 의한 몸미학은 이 실천적 몸미학의 대목에서 종래의 몸미학과 크게 차별화 된다. 왜냐하면 슈스터만은 몸의 배려(somatic care)라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구체적인 실천들, 몸에 의한 구체적인 활동들을 자신의 몸미학의 핵심적인 차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실천적 몸미학’이 명명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슈스터만의 실천적 몸미학은 몸으로 하는 자기 개선에 목적을 두고, 반성적이고 훈련된 몸의 실천을 통해 실질적으로 몸의 배려에 참가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 실천적 몸미학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지만, 철학이 자기 인식 및 자기 배려를 숙려하는 한에서, 지금까지 철학적 실천 및 그 탐구로부터 배제되어온 자기 배려를 체화하는 것과 관련한 포괄적인 철학의 한 분과 학문(교과)으로 고려되어질 수 있다고 한다(207쪽).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슈스터만이 제시하고 있는 몸의 세 가지 차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먼저 ‘분석적 몸미학’은 몸에 대한 이론적 담론을 포섭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에 비해 ‘프래그머티즘 몸미학’과 ‘실천적 몸미학’은 좀 더 몸의 실천에 무게를 둔 개념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가 제시하고 있는 몸미학의 세 가지 차원은 모두 듀이(John Dewey, 1859~1952)나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같은 모범적인 신체 철학자들에게서도 그 내용을 찾아 볼 수 있다고 한다(204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스터만이 그들과 다른 점은, 몸을 중심에 둔 하나의 교과로서 ‘몸미학’을 제안한 점과 그 교과를 이중적 의미(학습 또는 교육 분야에서의 의미와 몸의 훈련 또는 연습의 형태로서의 의미)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또한 그에 의해서 제시되는 세 개의 개별적인 몸미학은 각각 자신의 고유영역을 가지면서도 하나의 통일을 지향하는 몸미학의 융합적 지평을 지닌다고 하겠다. 

국내에 번역된 몸미학(somaesthetics)과 관련한 슈스터만의 연구서들.
좌측으로부터 『프라그마티스트의 미학』(2002), 『몸의 의식』(2010), 『스타일의 미학』(2013)

‘예술의 종언 이후 미학적 대안’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슈스터만의 『삶의 미학』은, 한편으로, ‘미학의 관례적 영역을 뛰어 넘어 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들과 삶의 행위를 다루는 분야’(8쪽)의 연구로서, 슈스터만 자신이 명명한 몸미학에 대한 일종의 프롤로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특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신체적 느낌의 비논증적 직접성으로서 몸의 실천들(soma practices)에 의한 몸의 개선과 이를 위한 개개인의 몸에 대한 배려는 미적 쾌감을 야기 시키는 미학적 자기 스타일이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기에, 미학을 넘어선 미학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현대미학의 이론적 길라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확장된 새로운 미학의 영역이 궁금하다면, 이 책 『삶의 미학』에서 일상의 미학이 가져다주는 몸의 경험에 관한 풍요로운 사색을 통해 미학의 갈증을 해소해 보길 권한다.  

 

 

 

이승건 서울예술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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