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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 등반①] 한국 학생들은 토론을 못 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한민의 문화 등반①] 한국 학생들은 토론을 못 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 한민
  • 승인 2020.11.23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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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 등반’ 칼럼을 시작합니다. 문화심리학자인 한민의 심리학으로 읽는 문화비평을 격주마다 싣습니다. 칼럼을 시작하며 필자의 말을 옮깁니다.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는 한가롭게 산책할 수 있는 오솔길이 아니다. 오솔길을 걷다보면 천길 낭떠러지도 나오고 깎아지른 암벽도 나오는 커다란 산이다. 산 속의 동물들이 산을 모르듯이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문화를 잘 알기는 쉽지 않다. 동네 뒷산이라고 무턱대고 오르다 길을 잃거나 낭패를 만나는 이들을 위해 갈림길 나뭇가지에 손수건 하나 묶어놓는 사람이 되고 싶다."

대학 다닐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게 듣던 소리였다. 한국 학생들은 토론을 못 한다고. “니들은 왜 말을 안 하니?” 먼 나라에 유학을 다녀오신 교수님은 강의실 앞줄 책상에 후리하게 걸터앉아 입을 다물고 앉아 있는 우리를 보며 안쓰럽게 웃었다. 억압적인 한국의 교육현실에서 입시만을 위한 지식을 주입받으며 자신의 생각도 표현 못하게 된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어느 나라처럼 자유로운 토론 수업을 할 수 없는 교육자로서의 답답함이 뒤섞인 묘한 표정이었다.

대학원을 다니고 교수로서 강단에 서면서도 그 소리는 여전히 여기저기서 들려 왔다. 사실 한국 학생들은 토론을 못 한다는 사실은 교육계에서는 상식처럼 통한다.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은 고사하고 수업 내용에 대한 질문을 해보라는 데도 말이 없어서 수업 중 발언하는 학생에게 칭찬 스티커나 상점을 주어야 했다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많다. 이쯤 되면 한국 학생들이 토론을 못한다는 사실은 귀납적으로 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듯 싶다.

하지만 좀 이상한 현상이 있다. 한류다. K-pop, 드라마, 영화…. 어느 샌가 세계인들이 한국인들의 표현을 즐기고 공감하기 시작했다. 한류와 한국 문화콘텐츠에 빠진 이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인들의 ‘표현’이다. 노래를 듣고 춤과 연기를 감상하는 이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다채롭고 독특하며 진정성 있는 표현이야말로 한류의 본질이다.

이 이야기는 잘 훈련된 아이돌들이나 배우들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세계 비보이 대회를 휩쓰는 것도 한국의 젊은이들이요, 노래, 춤, 연기, 요리 등 각국의 다종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깊은 인상과 좋은 성적을 남기는 이들 역시 한국의 청년들이다. 아니, 한국인들이, 한국의 청년들이 이렇게 표현에 능한 사람들이었나? 질문은 다시 강의실을 향한다. 

이렇게 표현을 잘 하는 사람들이 왜 강의실에서는 그렇게 입을 닫고 있는가? 물론 간단하게 생각해 버릴 수도 있다. 얘들은 걔들이 아니라고. 한국에는 표현을 잘 하는 청년들도 있고 표현을 잘 못하는 청년들도 있다. 대학에는 유독 표현을 못하는 사람들만 들어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른 데서는 말도 잘 하고 표현도 잘 하는 사람들이 강의실에서만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면? 이제는 질문의 방향을 바꿔볼 차례다.

전주대 호텔경영학과 학생들이 외국인 유학생들과 토론을 하고 있다.
한 대학의 학생들이 외국인 유학생들과 토론을 하고 있다. 

나는 전에 근무하던 대학에서 토론 수업을 운영한 적이 있다. 인원이 80명 정도로 많았음에도 수업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7~8명 정도로 조를 나눠 조별토론을 진행했는데 학생들은 그 흔한 조별활동에 대한 거부반응도 토론에 대한 두려움도 드러내지 않았다. 학생들의 눈빛은 진지했고 자신의 의견을 꺼내놓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내가 맡은 학생들이 특별한 학생들이었을까. 한 학기 한두 분반이었다면 모르겠지만 3~4년에 걸쳐 수십 학급 수백 명의 학생들에게 나름 성공적이었던 것을 보면 원인은 학생들이 아닌 수업 자체에 있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내 생각을 말해도 괜찮다는 것.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 이 간단한 사실을 깨닫고 나면 학생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중요한 것은 토론의 기술도 아니고 질도 아니다. 학생이 처음부터 잘 할 것 같으면 선생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내 수업으로 달라진 학생들의 눈빛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들과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조금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이야말로 강단에 서는 이들에게 최고의 행복이 아닐까.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부분은 한국 학생들은 토론을 못한다는 고정관념이다.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고 들어보셨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본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의 말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기대가 없으니 과정이고 결과고 아무것도 발생할 수 없는 구조다. 

한류가 이처럼 흥할 줄 그 누가 짐작조차 했을까. 한때 한국 노래는 안 듣는다던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 영화는 믿고 거른다던 시절도 있었다. 짧은 역사와 부족한 경험, 열악한 인프라에도 그저 자신을 표현하려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모여 한국 노래가 빌보드 1위를 찍고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는 시대를 열었다. K-pop, K-영화, K-방역에 이은 K-대학이 되지 못할 이유는 뭘까.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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