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川邊風景, 삶의 형태변화에 대한 고민은 어디에
川邊風景, 삶의 형태변화에 대한 고민은 어디에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04.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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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 청계천 복원을 둘러싼 담론의 문제

청계천 복원사업을 둘러싼 말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발굴초기부터 대량으로 발굴되는 유물, 유적들의 처리문제로 시청과 시민사회 및 학계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으며, 생태적인 도시하천으로 복원하기 위해 현행 공사계획을 대폭 수정해야한다는 주장들이 계속 제기된다.

현재 청계천 복원공사를 보는 관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역사학계와 문화계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조선시대의 원형대로 복원해야 한다는 ‘원칙주의’다. 문화재청과 문화연대 및 시민단체, 역사학계 및 문화운동가들이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쟁점이 되는 것은 지난번 발굴된 ‘광교’와 ‘수표교’의 복원 문제다. 최근 ‘수표교는 제자리에서 복원하고 광교는 상류로 이전해서 복원’하는 것으로 청계천 문화재보존전문가 자문위원회가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 등 반대론자들은 “광교를 이전해서 복원한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전 자체가 파괴다”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조광 고려대 교수(한국사)도 “역사의 보고인 청계천의 역사를 기억 저편으로 묻으며, ‘역사도시 서울’을 언급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복원’에 대한 기초적 합의도 없어

둘째, 현재의 공사방식으로는 청계천이 자연하천이 될 수 없다는 ‘생태론자’들의 의견이다. 안병옥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등은 면밀한 생태적 사전조사를 통해 세부계획을 보강해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청계천 복원을 제일 처음 주장한 작가 박경리 씨는 최근 청계천 복원 공사 설계도에서 ‘조경’ 분야가 무려 27쪽이나 되는 것을 문제삼으며 “청계천을 어째서 조경 전문가가 하는가, 복원·토목 전문가가 해야지”라며 비판했다.

식물학, 수질학, 조류학 등 생태 관련 이공계 복원 전문가들도 조경전문가들에게만 청계천 생태복원이 맡겨져 있는 현행 전문위원 제도는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들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윤순진 서울시립대 교수(행정학)는 “공사 지연의 불편을 감수하고 생태와 역사·문화의 조화로운 복원을 지지하는 많은 시민들이 있는데 서울시는 뭘 망설이나”라고 꽉 막힌 행정에 답답해했다.

셋째, 앞의 비판적 입장과는 다르게 일단 청계고가를 뜯고 청계천에 물이 흐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 1차적 의의가 크다라는 견해들도 적잖다. 이원영 수원대 교수(도시계획)는 “전문가 입장에서 원형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비상식”이라며 “현재 살고 있는 하천공간 이용의 편의성도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임승빈 서울대 교수(조경학)는 “청계천은 박제를 만들 듯 과거 그대로 ‘복원’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생태적, 문화적으로 ‘개선’되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이라며 환경론자들의 비판에 정면 반박하고 있다.

일본 ‘이즈미가와’에서는 어떻게 했나

여기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복원’이라는 개념의 혼란이다. 문화재 복원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원형복구’를, 생태론자들은 ‘자연에 대한 모방’을, 편의성과 기능성을 주장하는 측은 ‘개선’으로보고 있다. 이것은 공사의 가장 큰 목적에 대한 개념적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비판과 옹호, 찬성과 반대식의 당위론적 논쟁들이 그치질 않는다는 점도 대형 국책사업을 성숙하게 치뤄내는 우리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현재 생태적 주장들은 공사에 반영될 여지가 많아 전문가들의 세부적 논의가 활발한 편이다. 이창석 서울여대 교수(생물학)는 “원래 하천에서 돌은 상류에 존재하는 것이며, 도시에 녹지가 더 필요한데 식물이 차지할 자리를 돌이 차지한다”라고 우려한다. 한명수 한양대 교수(생명과학)도 “물이 깨끗하다고 생명이 살 수는 없다.각종 생물들의 먹이사슬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 초기부터 고려가 돼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한봉호 서울시립대 교수는 하천을 휴양공간, 이용공간, 복원공간, 관람공간 등으로 구분해서 복원한 일본의 이즈미가와의 사례를 들면서 “청계천도 정말 중요한 구간, 가령 정릉천과 합수하는 지점이라든지, 주변 녹지와 만나는 지점 등은 생태적으로 잘 개발”하는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다. 이 부분은 전문가들의 견해가 반영될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이것 말고도 청계천복원사업과 관련해 논의해야 할 주제가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김두환 서울대 강사(환경계획)는 “향후 복원된 청계천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효과가 어느 계층에게 돌아갈 것인지 궁금하다”라며 현재 공사 때문에 물적, 심적으로 피해를 받고 있는 주변상인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서울시가 철거상인들의 영업영역을 마련해뒀다고 하지만 과연 영세상인들의 입주가 제대로 이뤄질지는 의심스럽다는 것.

총론적 논의 필요하다

많은 환경단체와 시민단체가 청계천 복원공사에 찬성한 것은 그 공간이 인구 저밀도의 쾌적공간이 되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울시의 계획은 청계천을 복원한 뒤 그 주변을 지금의 다섯배가 넘는 고밀도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두 세력의 큰 입장차이에 잠복한 갈등에 대해서도 미리 토론할 필요가 있다고 이근행 생태공동체운동센터 사무국장은 지적한다. “공간이 변화하는 것은 그 곳에 발을 디딘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청계천 주변의 삶의 형태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예상하고 그에 대비하려는 논의들이 찾아보기 어렵다.”

윤성복 서강대 강사(환경사회학)는 교통문제를 거론한다. 청계천을 고밀도로 개발하면 주변의 교통량이 증가해서 청계천에 자유롭고 편안하게 드나들지 못할 것이고, 또한 교통을 통제하면 그것대로 주변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서울시 전체의 교통이 원활하지 못하는 ‘딜레마’가 눈에 훤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현재 청계천 복원공사를 둘러싼 담론들은 지나치게 각론들에만 붙잡혀 있다. 그것은 그런 각론들을 중구난방하지 않게 잡아주는 총론, 즉 공사의 목적 및 개요에 대한 합의가 상당히 부족했다는 점을 드러낸다. 또한 지나치게 현재 진행되는 것에만 시선을 두고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는 ‘유비무환’형 논의들이 자발적으로 생겨나고 있지 않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확인됐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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