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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의 팔과 다리, 반자율적 신경계로 진화하다
문어의 팔과 다리, 반자율적 신경계로 진화하다
  • 김재호
  • 승인 2020.11.18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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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의 Science Follow 1

‘SF’는 공상과학을 뜻하는 ‘Science Fiction’을 뜻한다. 이전까지 허구와 상상력은 소설이나 영화뿐 아니라 과학에서도 중요한 영감을 주었다. 여기서 쓰려는 ‘SF’는 과학 따라잡기 혹은 과학과 친구맺기라는 의미의 ‘Science Follow’를 뜻한다.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는 모두에게 과학적 사고와 과학적 사실들이 좀 더 확장되길 바란다. 

 

화학촉각 수용체 단백질로
진화한 문어의 팔과 다리
잘려나가도 독자적으로 판단

 

문어가 게를 삼키는 모습이 최근 하버드대 학내 소식지(The Harvard Gazette)에 실렸다. 게는 딱딱한 등껍질로 생존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문어의 빠르고 말랑말랑한 연체조직들이 느린 게를 잡아먹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걸 적이 느끼는 게 가장 무섭다. 그만큼 감각은 생존과 직결된다.


문어를 보면, 여기 저기 달라붙어 이동하는 걸 알 수 있다. 그때 먹이와 먹이 아닌 것 혹은 적을 구별하는 능력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번에 하버드대 연구진들이 과학저널 <셀>에 문어 팔과 다리의 빨판이 맛을 알아차린다는 걸 분자 수준에서 밝혀냈다. 

 

문어가 팔과 다리를 이용해 먹이인 게를 잡아먹으려 한다. 문어는 어떻게 게가 먹이인지 알아차리는 것일까.
그건 바로 화학촉각 수용체가 있어서 가능하다. 사진 = 하버드대 학내 소식지 유튜브 캡처

문어 팔과 다리에 있는 신경계는 반자율적으로 움직이고 판단한다. 문어가 가진 신경세포들의 3분의 2가 팔과 다리에 분포한다. 문어의 최대 생존전략은 6개 팔과 2개 다리를 가진 자율적 본능이었던 셈이다. 즉, 문어의 뇌에서 모든 걸 콘트롤한 게 아니다. 문어의 팔과 다리들은 잘려나가도 뇌와 독립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다리 조각이 주위를 살피는 데 지장이 없다.


문어의 빨판에는 화학물질을 감지하는 세포가 있다. 연구진들은 빨판 안쪽 가장 바깥 층 세포들에서 새로운 화학촉각 수용체 군을 확인했다. 문어 팔과 다리의 빨판에는 촉감뿐만 아니라 맛을 감지하는 수용체 단백질이 있다. 이를 통해 문어 빨판은 게의 껍집에 붙은, 물에 녹지 않는 분자들을 감지하거나 반응하도록 적응해왔다. 그 분자들은 먹이의 표면에서 쉽게 발견된다. 그래서 문어는 팔과 다리로 감싼 것이 먹이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다. 한편, 물에 녹는 분자들은 멀리서 냄새로 지각된다. 


 
자율성 부여해 먹이 탐지

 

또한 연구진들은 화학촉각 수용체가 반응하고 신호가 세포와 신경계에 전달되는 가운데 다양성을 발견했다. 문어의 팔과 다리는 바다 아래 있는 모든 것과 마주한다. 그때마다 다른 반응과 행동을 보이기 위해선 다양성이 필수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결과로 오징어 등 두족류의 무척추동물이 비슷한 수용체와 반응 메커니즘을 가질 것으로 예상했다. 아직 바다 생물의 화학촉각 수용체에 의한 반응 연구가 거의 없다. 앞으로 어떤 신호들이 두족류뿐만 아니라 해양 생물에게 중요한지 밝혀질 전망이다. 핵심은 단백질 진화와 신호 코딩이다.  


문어처럼 행동하는 건 달팽이가 있다. 주변의 화학물질을 감지해 세상에 반응하는 것이다. 문어에게 촉수가 있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오징어가 한 쌍의 먹이 촉수가 있는 반면, 문어는 촉수가 없다. 


연구진들은 문어의 팔과 다리에 있는 화학촉각 수용체를 분리해 개구리 알과 인간 세포계에 주입했다. 그러고 나서 물에 잘 용해되는 염류나 당, 아미노산에 대한 반응들을 살펴보니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해양 생물들이 반응하지 않는, 물에 잘 용해되지 않는 분자들에만 화학촉각 수용체가 반응했다. 요컨대, 개구리와 인간 세포에는 그런 수용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특정 분자들에만 반응하는 수용체

 

연구진들은 다시 문어에게 돌아가 수조 바닥에 같은 분자들을 놓고 반응을 살펴봤다. 문어의 화학촉각 수용체가 유일하게 반응하는 건 테르페노이드 분자들이었다. 이 분자들은 물에 용해되지 않고,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종류였다. 


연구진들은 “반자율적 신경계가 문어의 결정을 신속하게 한다”고 밝혔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기업이든 사회든 자율성은 생존과 진화의 근간을 이룬다. 문어가 팔과 다리의 자율성만으로 먹고사는 건 아니다. 거대 태평양 문어(Giant Pacific Octopus)는 3개의 심장과 파란 피를 갖고 있다. 피의 순환과 산소 운반의 이유 때문이다. 경탄할 만한 진화이다. 


동물들의 진화 메커니즘을 이용한 과학기술은 ‘생체공학’으로 불린다. 아직도 인류가 모르는 동물이 부지기수다. 인류가 직면한 위기는 주변의 동물들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제 관심을 돌려야 할 건 바로 우리 주위에 있는 생명들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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