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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전쟁
언어 전쟁
  • 교수신문
  • 승인 2020.11.1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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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 외 8명 지음 | 삶창 | 208쪽

언어의 평등이 단순하게 말하고 쓰는 차원에서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며, 이 평등이라는 범주는 언어를 실질적으로 작동시키는 권력관계를 은폐하기도 한다. 외형상 평등과 실질적 불평등 사이의 괴리와 간극은 국가권력과 민중 사이를 더 크게 벌려놓고, 디지털 기술 문명으로 인해 심하게 일그러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을 지경이다. 간단히 말하면 지금은 국가의 언어가 민중의 언어를 유린하고, 상품의 언어가 삶의 언어를 황폐화하며, 기술의 언어가 시의 언어를 타락시키는 차원을 넘어 언어 자체가 상품이 되어 우리의 정신과 내면을 좀먹고 있는 것만 같다. 여기에 공정과 정의의 척도마저 각자도생의 길에 접어듦으로써 개인의 영혼까지 위험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감도 든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언어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제는 뉴스도 못 믿겠다는 말들을 서슴없이 하게 되는 시대가 됐다. 비위가 발각되어도 예전 같으면 사과를 하고 일정 정도 책임을 지는 모습이라도 보였는데, 지금은 다른 ‘말’들을 쏟아낸다. 그러다 보면 사후 맥락이 복잡해지고 그 복잡함 때문에 어느새 진실은 실종되고 만다. 한편으로는 법정으로 진실의 문제를 끌고 가 분탕질을 친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진실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뒤이어 윤리 의식까지 희미해져 버린다. 유명인의 페이스북 계정이 기자들의 출입처가 되기도 하며, 그들이 쏟아내는 말은 언론에 대서특필되기까지 한다. 언제부터인가 익숙해진 이런 모습은 언론에 대한 불신감을 키웠고 나아가 ‘언어’에 대한 피로감을 갖게 했다.

이런 사회적, 문화적 현상에 때맞춰 그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는 책이 바로 『언어 전쟁』이다. 아홉 명의 필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바라본 언어의 타락 원인은 다른 듯 보이지만 겹치면서 다채롭게 우리의 생각을 우리가 쓰는 언어의 세계로 인도한다. 기술문명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고, 자본주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다. 국가 제도(행정)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처한 현실 그 자체가 언어의 타락과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지금의 언어 현상에 역사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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