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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 드럭스: 인류의 역사를 바꾼 가장 지적인 약 이야기
텐 드럭스: 인류의 역사를 바꾼 가장 지적인 약 이야기
  • 교수신문
  • 승인 2020.11.1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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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헤이거 지음 | 양병찬 옮김 | 동아시아 | 380쪽

감기에 걸려 약을 타 오면 1회분 약 봉투에도 서너 개의 알약이 들어 있다. 이런 식으로 먹는 약을 전부 따지면 평생 동안 얼마나 될까? 『텐 드럭스』에 나온 자료를 보면, 미국인은 1년에 4~12가지 처방약을 복용하고, 평균적인 미국 노인은 하루에 약 10여 개의 약을 먹는다. 여기에 비타민, 아스피린, 건강기능식품 등을 합치면 미국인들은 평균 수명 78.54년 동안 하루에 두 개 정도의 알약을 먹는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그러면 평생 동안 5만 개 이상의 약을 먹는 셈이다. 한국인은 어떨까? 정확한 수치를 알기는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비교해볼 수는 있다. 2017년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나온 자료를 볼 때, 한국에서 의약품을 처방하는 비중이 OECD 평균보다 높고 전체 의료비에서 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은 편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한국인도 미국인 못지않은 약을 먹으며 삶을 이어갈 것이다.

약은 많은 것을 바꿨다. 인류의 평균 수명을 수십 년 늘렸고, 고령화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여성의 사회적·전문적 선택권을 확장했고, 우리의 인생관, 법적 태도, 국제관계를 바꿨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약을 먹고 삶을 이어가는, ‘약 권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텐 드럭스』에서는 열 가지 주제가 되는 약을 선정해, 각각의 약이 어떻게 개발되고 퍼져나갔으며 세상을 바꾸었는지 흥미진진하게 엮어낸다. 여기에는 레이디 메리 같은 숨겨진 영웅들의 사연도 있고, 클로르프로마진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몸과 정신의 관계를 다시 쓴 약의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회자되지 않은 약의 어두운 그림자도 여럿 소개한다. 마약과 진통제와 관련한 주제에 여러 장을 할애하는 것은 이 책이 지닌 입장을 잘 대변해준다. 약 덕분에 인류의 평균 수명이 수십 년 늘어났지만, 약의 만든 어두운 면도 짚고 넘어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약의 부작용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인, 거대 제약 산업의 현실과 부조리함도 고발한다. 빨려 들듯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만 묵직한 메시지도 놓치지 않는 약 연대기. 『텐 드럭스』만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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