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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씨네로그] 절망에도 절망하지 마라
[정재형의 씨네로그] 절망에도 절망하지 마라
  • 교수신문
  • 승인 2020.11.0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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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소비사회에서 중요한 인간적 가치 일깨우는 영화 ‘제8요일’
절망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이미지=배급사
이미지=배급사

 

벨기에 감독 쟈코 방 도마엘(Jaco van Domael)의 영화 「제8일 Le Huitième Jour」(1996)은 아리와 조지 두 남자의 우정을 통해 물질 소비사회에서 중요한 인간적 가치가 무엇인가를 그려낸다. 환상을 표현하는 영상과 아름다운 음악은 이 영화를 예술영화의 품격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인간이 물질에서 정신적으로 거듭 나게 되는 계기를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에서부터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비장애인 중심주의와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장애인과 자연과의 합일을 느끼게 만드는 걸작이다. 

긴 프롤로그에서는 조지의 품성을 보여준다. 그는 자연을 사랑하고 동심을 갖고 있다. 그는 다운증후군을 앓는 불행한 성인이지만 마음은 천사보다도 곱다. 아리는 세일즈맨을 가르치는 강사다. 그는 네 가지 원칙을 말한다. 웃음을 지을 것. 정열을 갖을 것. 갖지는 않았을지라도 갖은 것 같은 표정을 지으라는 것. 이어 아리의 어둠이 나타난다. 아리는 불행한 상황에 처해있다. 아리의 상황은 모순이다. 그는 불행하면서도 남들에게는 아닌척 할 뿐만 아니라 정 반대의 것을 강요한다. 논어에서 공자가 한 말이다. 자기가 하기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 영화는 그 지점에서 움직인다. 인간이 스스로 모순을 느낄 때가 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때 멈춰야 한다. 멈춰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가 가는 길이 과연 맞는가. 영화는 그것을 질문하고 있다. 영화는 인간의 이원적 상반성을 다룬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그는 마음의 병에 걸린 것이다. 우울증이든 뭐든 인생의 공허함을 느끼는 단계다. 이런 상태를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심신이 지쳐 있을수록 더욱 내면을 찾으려 하고 안정을 얻고 싶어한다. 내면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아리는 커피를 마시려다 잘 나오지 않자 컵을 팽개쳐 버린다. 아침 직장에서의 일이다. 그는 강사이고 그 주변엔 많은 교육생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머쓱해하면서 넥타이를 고쳐매곤 그곳을 빠져나온다.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마음의 절대평정을 해야할 강사가 분노를 표출했으니 망신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사회적 자아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는 화장실에 가서 자신의 얼굴을 천천히 들여다 본다. 위선과 가식의 웃는 모습이 더 이상 아니다. 이젠 분노를 넘어서 절망과 광기에 가득찬 그로테스크한 얼굴이다. 

이런 일상의 에피소드는 많은 걸 시사해 준다. 어느 날 갑자기 온다. 깨달음의 계기는 그렇게 온다. 내면의 병에 걸리면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낸다. 아리가 경험한 이 사건은 겉으로는 사소한 일이지만 내면으로는 큰 사건이다. 인생 전체를  다 부정할 수 있는 커다란 상처를 입은 상태다. 그는 상실감, 허무함으로 인해 우울증이라는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 그 증세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자살을 기도할 지도 모른다. 자신이 사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 충동적으로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심리학에선 이런 상태를 긍정적인 징후로 보기도 한다. 외적인 사회에서 실패할수록 더욱 내면적으로 후퇴해오면 그때야 말로 내면을 관찰하고 성찰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많은 명상을 하면서 인생을 정리한다면 다음 단계는 훨씬 희망적인 전경이 펼쳐진다. 그의 영혼은 한 단계 도약한 상태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이때  마음이 행복한 장애인 조지를 만나게 되고 아리는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영화는 말한다. 절망에도 절망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나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태어나라. 

정재형(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정재형(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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