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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숙의 숨겨진 그림 이야기] 우리의 일상을 편리하게 바꾸어놓은 과학자
[박희숙의 숨겨진 그림 이야기] 우리의 일상을 편리하게 바꾸어놓은 과학자
  • 박희숙
  • 승인 2020.11.09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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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생활을 개선해주는 학문
베르메르, 카메라 옵스쿠라 사용해 사진같은 그림 그려

가로등 발명한 프랑스 화학자 라부아지에
라부아지에의 가정적 이미지 강조한 다비드
'천문학자'-1668년, 캔버스에 유채, 51x45,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천문학자'-1668년, 캔버스에 유채, 51x45,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우리가 쓰고 있는 휴대폰, 여성들에게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준 세탁기, 식중독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냉장고 등등 주변을 둘러보면 가전제품이 없는 가정이 없다.

일상적으로 편리하게 쓰고 있는 가전제품들은 수많은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연구해 온 결과물이다.

과학 그러면 너무 어려운 학문이라고만 생각하지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편리하게 바꾸어 놓는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과학자를 그린 작품이 얀 베르메르의 「천문학자」다. 이 작품은 베르메르의 작품 중에 제작년도가 명확하게 적혀 있는 3점 가운데 하나로서 과학사에서 대변혁이 이루어진 시기에 제작되었다. 

망원경 발달로 새로운 과학의 시대 펼쳐져
루이 14세가 파리에 천문대를 건립(1667~1672)하도록 하면서 새로운 과학의 시대가 왔다. 1668년 과학자 아이작 뉴턴(1642~1727)이 제임스 그레고리가 1663년 고안한 굴절 망원경의 성능을 향상시켰다. 망원경의 발달은 항해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당시 신생국가들은 대양을 건너 대륙까지 영토를 확장하던 시기였다. 특히 저지대 국가로서 오랫동안 끊임없이 바다와 싸워야 했던 네덜란드에서 천문학은 아주 중요한 학문이었다. 

방안에서 머리를 길게 길어 귀 뒤로 넘긴 학자가 책상에 기대 앉아 손으로 천체의를 돌리면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학자는 일상복을 입지 않고 발끝까지 오는 긴 옷을 입고 있는데 네덜란드는 추운 나라이기 때문에 17세기 풍속화를 보면 집안에서도 인물들이 두툼한 옷을 입고 생활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책상에는 펼쳐 놓은 책이 놓여 있고 책상 덮개로 사용되고 있는 양탄자 옆에는 천문관측의가 눕혀져 있다. 천문관측의는 천체의 각도와 위치를 재는 장치로서 선원들이 별을 관찰하면서 항해하는 데 중요한 도구다. 

이 작품에서 베르메르는 양탄자의 문양을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서 장식효과를 주고 있다. 당시 양탄자는 바닥에만 까는 깔개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탁자의 덮개로도 사용했다. 

학자가 돌리고 있는 천체의 왼쪽에 큰곰자리가 보이고 중앙에는 용자리와 헤라클레스자리, 오른쪽에는 거문고자리가 보인다. 별자리는 남자가 천문학자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묘사한 천체의는 1618년 요도쿠스 혼다우스가 제작한 것이다. 책상 위에 펼쳐진 책은 아드리안 메티우스가 쓴 『별들의 탐구와 관찰』이다. 

학자 옆으로 옷장이 있고 벽에는 아기 모세를 발견하는 장면이 그려진 그림이 걸려 있다. 성경에서 모세의 탄생은 예수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에 이 그림은 새로운 과학을 상징한다. 옷장에 로마 숫자가 적혀 있는데 그것은 이 작품이 완성된 날짜다.

베르메르는 빛의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책상을 창문 곁에 두었다. 당시 전기가 발명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최대한 빛을 이용해야 했다. 

얀 베르메르(1632~1675)는 현미경 발명가인 안토니 반 레웬후크(1632~1723)와 친분을 쌓았다. 레웬후크는 베르메르가 죽은 후 유산 관리인으로 지명되었을 정도였으며 그와의 교류는 베르메르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베르메르는 실내의 모습을 정확하게 재현하기 위해 카메라 옵스쿠라(암실 장치)를 사용했다. 어두운 상자를 사용해 그리고 싶은 상을 평면에 비추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위에 덧그리면 원근감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다. 베르메르는 카메라 옵스쿠라를 사용해 사진 같은 그림을 그렸다. 

'아내와 함께 있는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1788년, 캔버스에 유채, 259x194,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아내와 함께 있는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1788년, 캔버스에 유채, 259x194,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라부아지에를 자상한 남편으로 묘사한 다비드
베르메르가 인물보다는 천문학에 중점을 두었다면 실제로 18세기 유럽에서 가장 저명한 화학자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를 그린 작품이 다비드의 「아내와 함께 있는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다.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1743~1794)는 자연과학에 흥미를 느껴 1766년 가로등을 발명한다. 가로등 발명으로 한림원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또 한림원 회원인 게타르와 함께 알자스로렌 지방의 광물 지도를 1764에서 1770년에 걸쳐 완성하고 그 공로로 25세에 한림원 회원이 되었다. 

또한 라부아지에는 관리로 일하면서 개인적으로 화학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실험 결과를 통해 연소 반응에서 산소의 역할을 밝히고 화학반응에서 물질 보존의 법칙을 규명해 근대 화학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의 업적은 과학 분야에서 프랑스 혁명과 같은 큰 영향을 미쳤다. 

실험 결과를 통해 새로운 이론을 정립한 라부아지에는 책을 출판한다. 그의 저서 『화학 명명법, 1787년』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화학용어의 기초가 된다. 

라부아지에와 결혼한 마리는 라부아지에의 중요 저서 『화학이론』에 삽화를 그려 실험의 내용을 그림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혁명의 소용돌이를 라부아지에는 피하지 못하고 장인 자크 폴제와 함께 체포된다. 1794년 5월 8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혁명파의 몰락으로 물러난 마리는 라부아지에의 실험노트를 정리하여 책을 출판했다.  

이 작품에서 마리는 남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관람자를 향해 미소 짓고 있다. 라부아지에는 오른손으로 깃털 펜을 쥔 채 시선을 아내의 얼굴에 고정시키고 있다. 책상 위와 아래에는 실험도구들이 놓여 있다. 라부아지에 앞에 놓인 실험 노트는 1년 후에 『화학 원론』으로 출간된다.

라부아지에는 검은색 양복을, 마리는 흰색의 드레스를 입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다비드는 과학자와 법률가로 활동하고 있는 라부아지에의 직업을 나타내기 위해 검은색 양복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 검은색은 진지함과 안정감을 나타낸다. 마리의 흰색 드레스는 순결과 부부의 행복을 상징한다. 

화면 왼쪽 배경에 있는 드로잉집은 마리의 것으로 그녀가 남편의 저서에 삽화를 그리고 있던 중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마리는 다비드의 제자였다.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는 이 작품에서 라부아지에를 저명한 과학자로 표현하지 않고 따뜻하고 자상한 남편으로 묘사해 가정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과학은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 놓은 혁신적인 제품들을 만드는 데 혁혁한 공로를 한 학문이다. 과학은 나와 상관이 없는 학문이 아니다. 내가 생활하면서 불편하게 느꼈던 것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면 누구나 과학자가 되는 것이다. 로또만이 부자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로또가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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