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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를 발견하다
동아시아를 발견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20.11.0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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쑹녠선 지음 | 김승욱 옮김 | 역사비평사 | 488쪽

헤겔 이래의 주류 역사관은 시간을 절대화하고 지역을 상대화했는데, 이 역사관에 따라 각기 다른 인류 사회는 절대적인 시간 축 위에 하나하나의 단계를 구성하는 것이 되었다. 이에 따르면 세계의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선형의 과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는 어떤 통일된 종점을 향해가는 과정이 아니다. 이 책은 한 구역의 시각, 즉 동아시아의 시각에서 출발하여 세계 역사의 시간이 어떻게 이 공간에서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헤겔과 그의 철학적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는 아시아를 유럽의 안티테제로 바라보았다. 인류 역사는 생산력이 부단히 진화하는 과정이고, 가장 선진적인 생산양식은 유럽의 자본주의 생산이다. 유럽의 안티테제로서 아시아는 전제, 낙후, 우매, 정체였다. 아시아는 외부적 충격을 빌려서야만 비로소 자본주의로 발전해나간다는, 이른바 서구의 충격과 이에 대한 대응이라는 패러다임은 아시아를 바라보는 전형적인 역사관이었다.

세계 육지의 1/3을 차지하며, 한국·중국·일본을 포함하는 지역을 일컫는 말은 ‘아시아’다. 아시아는 영어 ‘Asia’의 발음을 그대로 표기한 단어이며, 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하고 동쪽 지역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라는 말은 따지고 보면 ‘동쪽 지역의 동쪽 지역’이라는 뜻이 된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동아시아’라는 말에는 “엉덩이를 여전히 서쪽에 놓아 앉고” 바라보는 관점이 담겨 있다. 즉, 단어 그 자체에 서양의 시선이 내포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어원적 의미라도 반영하듯 그동안 동아시아 역사는 대체로 서구의 관점에서 서술되었고, 동아시아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주체적이고 독자적인 서술은 드물었다.

19세기 유럽에서 ‘동아시아’ 또는 ‘아시아’는 단순한 지리적 존재가 아니었다. 자본과 식민의 확장에 따라 이 지역은 시간성을 부여 받고 하나의 역사와 문명 개념이 되었다. 헤겔과 마르크스 이래 아시아는 전제·낙후·우매·정체였고, 유럽의 자유·선진·문명 및 진보를 역으로 부각해주는 것이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쳐 경제·사회·정치·문화 면에서 고도자본주의국가를 지향해나가는 발전주의를 ‘식민 현대’로 지칭하고, 이러한 관점에 단호히 반대한다. 서양인의 눈으로 본 동아시아 역사를 거부하고 동아시아인의 관점에서 동아시아 현대사를 바라본다. 저자가 동아시아 삼국(한국, 중국, 일본)의 현대가 시작되는 분기점으로 잡은 사건은 임진왜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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