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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비, 일제가 정말 변조했을까?
광개토태왕비, 일제가 정말 변조했을까?
  • 김재호
  • 승인 2020.11.0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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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_사라진 비문을 찾아서
김병기 지음 | 학고재 | 352쪽

역사 속에서 세 번이나
소외된 광개토태왕비
어떻게 변조되었나

 

“광개토태왕비는 세 번 죽었다.” 첫 번째는 우리 역사에서, 두 번째는 일제의 소행에 의해서, 세 번째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통해서. 20년간 광개토태왕비의 비문을 연구한 학자가 있다. 바로 김병기 전북대 교수(중어중문학과)다. 


그는 일제에 의해 광개토태왕비가 변조됐다는 걸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하고 있다. 중국 시학과 서예학을 전공한 김 교수는 금석학(金石學)을 기반으로 연구해왔다.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 는 2005년에 출간된 서적이다. 이번에 김 교수는 ‘글씨체로 밝혀낸 광개토태왕비의 진실’이란 부제를 달아서 신판같은 증보판을 내놨다. 


2018년 1월 7일, JTBC 교양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제43회)에서 김 교수의 주장을 방송했다. 주제는 한자 교육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지만, 이를 통해 임나일본부설 등 역사적 문제에 대한 비판까지 나아간 것이다. 임나일본부설은 광개토태왕비의 비문 중 신묘년 기사 부분을 근거로 일본이 가야에 ’일본부‘라는 기관을 두고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했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35년 전 유학 시절 광개토대왕비 탁본을 우연히 접하고 비문 글씨의 매력에 빠져 베껴 쓰기인 임서(臨書)를 했다. 그런데 김 교수는 “임서에 한참 몰입해 있는데 비문의 어느 부분에 이르자 갑자기 붓이 멈칫하더니 콱 막히는 것이었다”며 “지금까지 써오던 리듬과는 다른 리듬의 글자를 만나서 잠시 붓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른 것이다”고 적었다. 나중에 놀랍게도 붓길이 막혔던 글자가 바로 재일 사학자 이진희가 변조된 글자로 주장한 글자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 계기로 장장 20년에 걸쳐 비문 변조 추적 작업을 한다. 

 

 

 

과연 광개토태왕비는 변조된 것일까

 

김 교수는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태왕의 훈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에 본래 고구려의 속민이었던 백제와 신라를 왜가 깨부숴 그들의 신민으로 삼았다는 치욕적인 내용을 왜 새겨 넣었겠느냐”면서, 일부 학자가 제시한 “백제와 신라를 깨부술 정도로 매우 강력했던 왜를 후에 고구려가 제압했음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광개토태왕의 무공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근거 없는 개인적 ‘상상’일 뿐이라며 통렬하게 비판했다. 


광개토태왕비는 서기 414년에 세워졌다. 광개토태왕비는 높이가 6.39미터이며, 화강암으로 된 좌대(座臺) 위에 놓였다. 특히 네 개의 면을 돌아가며 44행에  총 1천775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판독이 힘든 글자는 141자다. 한 개의 글자는 가로 세로가 대략 12센티미터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제1부 : 고구려 건국 신화와 광개토태왕의 행적 △ 제2부 : 광개토태영와 토벌 사실들과 이로인해 획득한 성 및 촌락과 인마의 규모와 수 △ 제3부 : 광개토태왕릉을 지키는 책임을 다할 백성들의 출신과 가구 수 등. 

 

 

 

장수왕이 치욕적인 내용을 새겨 넣었을까

 

광개토태왕비문의 신묘년 기사는 고구려의 입장에서 백제와 신라를 고구려와 동일 민족관계에 있는 ‘속민(屬民)’으로 보고 기록한 문장이므로 백제와 신라를 다시 동일 민족 관계가 아닌 ‘신민(臣民)’으로 칭해야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신묘년 기사의 ‘신민’은 고구려의 입장에서 왜(일본)를 칭한 말이며, 이 기사의 원래 문장은 당연히 ‘고구려가 왜를 고구려의 신민으로 삼았다’이다. 


김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신묘년 기사는 다음과 같이 된다. “백제와 신라는 예부터 (고구려의) 속민이었다. 그래서 줄곧 조공을 해왔다. 그런데 왜(일본)가 신묘년 이래로 백제와 □□와 신라에 대해 조공을 들이기 시작하였으므로, 고구려는 왜도 고구려의 신민으로 삼았다 / 百殘新羅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入貢于百殘□□新羅 以爲臣民”


아울러, 김 교수는 일본이 변조한 ‘도해파(渡海破: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를 깨부쉈다)’ 세 글자의 변조 전 원래 글자는 ‘입공우(入貢于: 왜가 백제, 가야, 신라에 조공했다)’였음을 글씨체를 분석하는 서예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했다. 김 교수는 일제가 제시한 ‘래도해파(來渡海破)’구에 대해 한․중․일 어디에서도 고대에나 지금이나 ‘도래(渡來)’라는 단어만 사용해왔을 뿐 ‘래도(來渡)’라는 용어를 사용한 예는 전무함을 확인함으로써 이런 구절을 제시한 자체가 변조의 증거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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