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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휴먼' 어디로 가는가
'포스트 휴먼' 어디로 가는가
  • 김재호
  • 승인 2020.11.02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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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재단 학술사업 40주년
기념 심포지엄 '인간·새로운 지평‘

대우재단 학술사업 40주년 기념 심포지엄 '인간·새로운 지평 : 융합적 성찰, 의제와 전망'이 지난달 30일 밀레니엄 힐튼 서울에서 펼쳐졌다. 이날 이진우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가 「인간을 넘어선 인간 : 인간 본성의 새로운 지평」,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이 「과학의 눈으로 보는 인간의 지평」, 박명규 서울대 교수(사회학과)가 「포스트휴먼 지평과 인간의 자리」를 발표했다. 

 

 


이 교수는 고전적 휴머니즘과 포스트 휴머니즘을 인간 본성이 주어진 것인지 만드는 것인지로 구분하며, 새로운 인간이 탄생함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을 구속하는 자연을 극복하여 새로운 인간, 즉 포스트휴먼을 창조하려는 이념과 운동”이라며 “중요한 것은 태어난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되는가이다”라고 밝혔다. 


노정혜 이사장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지평이 확장됐다며, 빅뱅에서 분자까지 살펴봤다. 노 이사장은 “위대한 능력을 가진 인간이 지구 생물권의 마지막 대멸종을 초래하고, 스스로의 서식도 불가능한 상황으로 인류세를 비가역적으로 끌고 갈지, 아니면 그 속도를 늦추고 막을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며 미래의 지평을 넓혀갈지 기로에 서 있다”고 우려했다. 


박명규 교수는 시민사회와 책임윤리를 강조했다. 그는 “인류 전체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지구적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일은 더욱 시급해질 터인데 그럴수록 디지털 능력과 확장된 책임윤리로 무장한 역동적인 다수들이 새로운 주체로 부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다움 질문, 과학기술에 거리두기, 혐오의 정치 극복”

기계와 구분되는 인간다움이란
과학기술의 진보, 거리두기 필요
민감한 감수성 갖춰야

 

대우재단 학술사업 40주년 기념 심포지엄의 첫 번째 세션에서 이진우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는 인간성과 도덕성, 포스트휴먼이 담보해야 할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성찰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해 인간의 특징은 이성과 사회성이라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고전적 휴머니즘은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별할 수 있는 특성을 인간 본성으로 규정함으로써 인간다움을 서술하였다”며 “만약 인간의 종차적 특성이 ‘이성’과 ‘사회성’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동물적 특성조차 이성과 사회성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전적 휴머니즘은 인간 향상을 반대한다.


하지만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 향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이 교수는 “과학과 기술을 통한 급진적 인간 향상을 추구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은 궁극적으로 인간 본성마저 고치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에 반해 자연을 인간에 대한 제약으로 인정하는 고전적 휴머니즘은 인간 본성은 과학과 기술에 의해 훼손될 수 없는 부분으로서 인간 행위의 규범적 방향을 제시한다고 주장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교수는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 본성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실질적 도덕적 규칙의 원천이라는 점은 부정하지만 인간이 도덕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능력이 최소한의 인간 본성이라는 점은 인정한다”면서 “포스트휴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유일한 본성은 아무런 본성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그렇다면 새로운 인간은 기계와 구분되는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인간의 유일한 본성은 본성이 없다는 점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과학기술로 인해 인간의 기원이 밝혀지고, 지평이 확장됐지만 과학기술에 압도되면 안 된다고 우려했다. 노 이사장은 “인간을 만든 재료가 별로부터 왔다는 멋진 사실을 인간은 20세기 중반에 알게 되었다”며 “약 46억 년 전, 수소분자들과 헬륨, 별 먼지들이 모인 구름이 중력에 의해 응축이 되고 그 중심에서 태양이 생겨나고, 태양주변을 원반처럼 돌던 물질들이 행성과 위성들을 이루며 태양계가 만들어졌다는 이론이 현재의 정설이다”고 알렸다. 


노 이사장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들은 통일성을 갖는다. 그건 바로 유전자 암호와 이 암호를 해독하는 방식, 그리고 단백질로 발현해 내는 경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돌연변이를 거치면서 진화해왔다. 그런데 하나의 조상에서 가지가 뻗어나가는 방식으로 변화해갔다. 그렇다면 그 하나의 조상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그곳은 바로 얕은 바다나 화산지대의 따뜻한 열수구 부근이다. 노 이사장은 “LUCA(가장 오래된 공통 조상)에 대한 계통유전학적인 추론은 바닷속 열수구가 생명체를 배태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지질화학적 이론과 합치한다”며 “요즘은 화학반응의 용이성과 세포의 화학성분에 비추어 볼 때 바다보다는 육상의 열수구(화산지역)가 LUCA의 탄생에 더 적합하지 않겠는가 하는 가설도 제시되고 있다”고 밝혔다. 

 

과학기술로 진보했으나 압도되면 안 돼

 

박명규 서울대 교수(사회학과)는 위험사회에서 국가가 강해지는 것을 우려했다. 그는 “위험은 극복되기보다 관리되는 상태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고 기술행정적 역량이 커지는 만큼 개인과 공동체가 치러야 할 기회비용도 커질 수 있다”며 “방역을 위한 대대적인 조치, 체계적 검사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감염자 추적,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재정지출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존재감은 확실히 커졌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디지털기술은 사회 전반에 퍼졌다. 효율적 검사 혹은 감시가 만연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박 교수는 디지털기술이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사회적 취약계층을 돌봐야 하며 타문명에 대한 혐오의 정치를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포스트휴먼 조건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이 필요하다. 


한편, 이날 두 번째 세션인 '시대 전환에 대한 의제별 전망'에서 김선욱 숭실대 교수(철학과)의 「코로나19 시대의 인간적 가치」, 권보드래 고려대 교수(국어국문학과)의 「탈-보편과 탈-내면, 글쓰기의 미로」, 한경구 서울대 교수(자유전공학부)의 「비대면적 대면과 불가촉 접촉: 느닷없는 미래와 고통스러운 선택」, 장 훈 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과)의 「21세기 민주주의와 경쟁자들의 새로운 지평: 서구의 동요와 모니터링 민주주의」, 홍윤철 서울대 교수(예방의학과)의 「문명과 함께 펼쳐진 질병, 그리고 의학적 전략」을 발표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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