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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쿠스 솔루스
로쿠스 솔루스
  • 교수신문
  • 승인 2020.11.0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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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몽 루셀 지음 | 송진석 옮김 | 문학동네 | 320쪽

미셸 푸코가 전기를 바친 유일한 문학인이자,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울리포, 누보로망 작가들에게 열렬한 찬사를 받고, 뒤샹, 에른스트, 자코메티, 짐 자무쉬를 비롯한 시각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신화적 존재 레몽 루셀.

『로쿠스 솔루스』는 루셀이 1913년 발표한 두번째 장편소설로, 무한한 상상력과 치밀한 계산이 결합된 루셀 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걸작이자 『아프리카의 인상』과 더불어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로쿠스 솔루스(Locus Solus)’는 ‘외딴곳’을 의미하는 라틴어로, 소설에서는 그 이름을 딴 광대한 빌라 정원을 배경으로 진기한 구경거리와 그에 얽힌 사연이 잇달아 소개된다.

사후 30년이 지나서야 미셸 푸코의 발견으로 뒤늦은 영광을 누리기까지 작가로서 루셀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어디서도 볼 수 없던 광경이 펼쳐지는 그의 작품에 앙드레 브르통을 비롯한 당대의 초현실주의자들은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으나, 폭넓은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는 끝내 실패한 채 어디까지나 주변적인 존재로 남아 있었다.

모든 책은 자비로 출간해야 했으며, 1909년 발표된 『아프리카의 인상』은 초판이 소진되기까지 2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로쿠스 솔루스』 역시 비슷한 운명을 겪어야 했다. 1913년 10월에 단행본으로 출간하고 11월부터 『골루아 뒤 디망슈』에 ‘부지발에서의 몇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뒤에도 반응은 미미했고, 대중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로 대본과 연출, 무대장치, 의상 모두 당대 최고의 전문가에게 의뢰해 연극무대에 올렸지만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다.

1933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의 삶은 성공과 거리가 멀었으나, 1963년 우연히 푸코의 눈에 띄어 다시금 세상에 나온 그의 작품들은 즉시 재조명을 받으며 그야말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수많은 예술가가 “하늘과 땅을 머리에 인 상상력”(폴 엘뤼아르)에, “시인의 합리성과 수학자의 열정”(레몽 크노)이 결합된 그 세계에 찬사를 보냈고,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그의 작품들은 갈피갈피를 풍요롭게 채우는 기상천외한 이야기와 그 이면에 숨겨진 수수께끼로 지금도 전 세계 독자들을 매혹하고 있다.

2019년에 국내에 처음 소개된 『아프리카의 인상』에 이어 선보이는 『로쿠스 솔루스』는 여러 작품 가운데서도 루셀의 특징이 아낌없이 발휘된 작품으로, 삶 자체를 초현실적인 작품으로 가꿔낸 작가 자신의 모습을 엿보기에도 손색이 없다. 신경증을 치료하기 위한 정신과 상담에서 이 작품의 주인공 ‘마르시알 캉트렐’을 예명으로 썼다는 사실로 짐작되듯 세상과 동떨어진 채 연구에만 몰두하는 주인공에게는 루셀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작품에 열일곱 차례 등장하는 샴고양이 이름 ‘콩덱렌’에 포함된, 어느 언어에도 없는 문자 인쇄를 위해 특수 활자를 제작한 작품 바깥의 사연은 막대한 비용과 열정을 쏟아부어 세상에 없던 존재를 만들어내는 주인공의 모습과 정확히 겹쳐진다. 이제, 그 신화적 작가 루셀의 초대로 황홀한 상상력 실험의 전시장 ‘로쿠스 솔루스’의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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