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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작품 ‘마하’는 옷을 입어도, 벗어도 문제
고야의 작품 ‘마하’는 옷을 입어도, 벗어도 문제
  • 김재호
  • 승인 2020.10.20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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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그림 속 여자가 말하다
이정아 지음 | 영진닷컴 | 344쪽

미의 여신인 여인
뒷골목의 매춘부
조선의 여성 화가까지

 

책의 표지가 강렬하다.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의 작품 「오필리아」는 한 여인이 강물에 몸을 맡긴 모습을 그렸다. 창백한 여인의 얼굴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드러낸다. 이 작품은 <햄릿>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자기 아버지가 햄릿에게 불의의 사고로 살해되자 오필리아는 정신이 나가 시냇물에 빠져 죽는다. 오필리아는 햄릿의 연인이었다.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인 『그림 속 여자가 말하다』는 작자 미상의 「폼페이 여인의 초상」(55∼79년)부터 나혜석의 「자화상」(1928년경 추정)까지 그림 속 여인들의 삶을 추적한다. 폐허 속에서 발견된 고대 시인에서부터 미의 여신으로 숭배된 여인, 세상의 모든 남성을 저주한 화가, 19세기 파리 뒷골목의 매춘부, 한 명의 인간이고 싶었지만 짓밟힌 조선의 여성 화가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거치며 변화한 여성들의 삶은 때론 억압받기도 했지만 때로는 세상을 군림하기도, 변화시키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특출하게 특별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의 우리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고 사랑에 아파하고 때로는 비참하고, 때로는 환희에 넘쳤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작품 「오필리아」.
오필리아가 정신이 나가 시냇물에 빠져 죽는 모습. 사진 = 위키피디아

 

 

뮤즈와 마녀, 예술가인 여신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격려한 뮤즈도 있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예술가를 혹독하게 조련한 마녀도 있으며 직접 예술가로 거듭난 여신도 있었다. 이들은 거침없이 세상에 도전하고 욕망과 상처가 이끄는 대로 파국을 향해 나아가기도 했다. 현실에 존재했지만, 완전히 새롭게 재창조된 이들도 있었다. 많은 여인들이 스스로 택한 것이든 주어진 것이든 미술사에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제2장 ‘순수와 관능의 경계’ 중 「옷을 벗은 마하」는 ‘옷을 입어도 문제, 벗어도 문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작품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0년 작품이다. 왜 옷을 입어도, 벗어도 문제가 됐던 것일까? 화가인 고야는 왕의 화가였지만 1815년 종교 재판소에 끌려갔다.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그렸던 것뿐인데, 고야는 이단죄와 음란죄를 받았다. ‘마하(Maja)’는 집시 여성을 뜻한다. 이 작품은 중세와 보수적 스페인 사회에서 세속적 욕망과 한 화가의 예술적 소명과 자유 의지를 당당하게 보여줬다. 


저자 이정아는 “16∼17세기 스페인 여성들은 지성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아내와 어머니의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못하는 삶을 강요받았다”며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솔직하고 원시적으로 드러낼 뿐 아니라 여성도 욕망을 품고 있는 주체이자, 심지어 밑바닥에 음란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드러낸다”고 밝혔다. 

 

보수 사회에서 드러난 세속적 욕망

 

이 책은 ‘그림 속 저 여인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 담겨 있다. 그림 속 여인이 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림이 그려진 배경, 화가와 모델의 관계, 역사적 맥락 등 사슬처럼 얽힌 다양한 흔적을 면밀히 고찰해야 한다. 원래의 세계에서 그림이 가졌던 의미와 과정을 되짚어 나가며 화가가 만든 미학적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일차원적 이해 방식을 넘어 그림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작가의 초상화로 정의를 내리는 대신 그녀가 왜, 그러고 어떻게 선택되고 그려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어떠한 표정과 몸짓으로 세상을 마주 보아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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