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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 개혁과 투자의 미래
고등교육 개혁과 투자의 미래
  • 김명환
  • 승인 2020.10.15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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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 개혁 핵심은 사립대 비리 척결·교수집단 반성·과감한 투자
대학 투자 늘리려면 교수집단의 철저한 자기갱신 필요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어영문학과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어영문학과

문재인 정부도 어느덧 후반기에 들어섰다. 우리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되고 치른 2017년의 19대 대선으로 탄생한 이후 지금까지 성과도 많았지만 우여곡절도 못지않았다. 올해 초부터는 전 세계를 휩쓰는 코로나19 감염병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느라 중요한 현안들이 대중의 관심이나 정책결정권자들의 책상머리에서 쉽게 뒤로 밀리고 있다. 고등교육 개혁과 투자도 그중 하나이다. 그러나 좌절해서는 곤란하며, 현 정부 후반기에서 차기 정부까지 일관되게 추진할 고등교육 개혁 방안을 만들어 실행의 길을 터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역주행’과 ‘헌정 파괴’에 저항해 범국민적 행동으로 창출한 새 정권에 대해 대다수 국민의 기대가 컸던 것은 당연하다. 나 역시 취임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항쟁 기념식이나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식에서 한 연설을 접하며 한껏 기대를 부풀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국민적 기대의 상당 부분은 현 정부의 역량을 벗어나는 소망에 불과한 면도 있었다. 물론 마땅히 할 일을 하지 않거나 준비 부족으로 정책 부실이 두드러져 국민의 요구, 시대의 요청을 배반한 경우도 많다. 특히 관료층을 포함한 기득권 세력을 다루는 일에 미숙하거나 태만해 벌어진 불만스러운 일들이 허다하고, 그중에서도 고등교육 개혁의 실종은 여러 원인이 겹쳐 있을 것이다.

냉전수구세력의 틀에 갇힌 제1야당의 주장은 거론할 것도 없지만, 일각에서 주장하듯이 현 정부가 박근혜 정부와 오십보백보 수준으로 퇴행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과장이다. 다음 대선에서의 승리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감히 위험한 예측을 하건대 현재의 여권이 승리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 정부 후반기에도 고등교육 분야에서 정부가 할 일을 하도록 압박하고, 다른 한편으로 차기 정권의 고등교육 혁신 사업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고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래야 차기 대선의 승리도 뜻있을 것이다.

냉정히 말해,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에서 교육개혁, 대학개혁의 내용은 부실했다. 범개혁 진영의 의제들이 망라돼 있었지만, 실제 이들을 하나로 묶어 유기적으로 밀고 나갈 실행계획은 마련되지 못했다. 수능 및 대학입시제도 개선을 둘러싼 혼선, 고교 체제 개편을 머뭇거리다가 소위 ‘조국 사태’를 계기로 공정성을 앞세우며 갑자기 정시 40% 확대를 대학에 강요한 갈지자 행보가 그 점을 단적으로 입증한다. 고등교육 분야의 공영형 사립대나 국공립대 네트워크 공약도 힘이 실리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부터 전열을 정비하고 원점에서부터 치열한 논의와 준비를 해야 한다. 현 정부 후반기에 해야 할 일은 일대로 하면서, 차기 대선 과정에서 자신 있게 제시해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고등교육 개혁의 청사진을 준비해야 한다. 당면 과제가 한둘이 아니지만, 고등교육 개혁의 핵심은 세 가지, 즉 한국 대학의 80%가 넘는 사립대의 비리 척결, 교수 집단의 자기갱신, 과감한 투자이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이다. 10년 넘게 등록금을 동결해놓고도 정부의 대학 지원 예산은 제자리를 맴돌았다.

그러나 잊지 말 것이 있다. 대학에 대한 투자의 필수 전제는 사학비리 척결과 한국 교수 집단의 자기갱신이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부실기업에 세금 지원이 불가한 것과 마찬가지로, 비리와 부정, 무기력에 물든 사립대학을 지원하는 정책에 동의할 국민은 없다. 나아가 사학비리 척결을 하려면 대학 운영의 주역인 교수 집단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사학비리에 맞서 싸워본 양심적 교수들은 사심 없이 희생을 각오하고 단결한 교수 10명만 있으면 어떤 규모의 대학이든 비리사학 운영진을 몰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그런 사학 정상화의 동력이 지속되려면 정부의 철저한 사학 감독과 더불어 재정 지원이 절실하며, 그렇지 않을 때 대학 정상화·민주화는 종종 좌초한다.

코로나19 위기 속에 대학교육의 질은 더욱 저하되며 양극화되고 있다. 이 와중에 대학개혁과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구조조정까지 하려면 과감하고 일관성 있는 재정 투입 확대가 필수이다. 연 1,900조(2019년 기준 1조 6,463억 USD)가 넘는 총 국민생산액에서 OECD의 고등교육 예산 평균치인 1%는 19조가 된다. 우리 고등교육예산은 11조 남짓에 머물고 있으니, 최소한 연 8조, 즉 앞으로 3, 4년간 매조 2조 이상 증액해야 한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 수요의 증가와 경제 침체로 인한 세수 감소가 겹쳐 이런 규모의 고등교육 예산 증액은 꿈처럼 느껴진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고등교육 투자 부진이 결국 국방비의 과중한 부담을 강요하는 분단체제 때문임을 다시 확인한다. 말을 바꾸면, 한국의 교수·연구자 집단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며, 고등교육 개혁이 무엇보다도 먼저 학문 연구의 방향과 내용에서 우리 현실에 맞는 주체성과 다양성을 다듬는 노력을 뜻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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