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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부족한 지식인들, 웃음거리가 되다
상상력 부족한 지식인들, 웃음거리가 되다
  • 김재호
  • 승인 2020.10.13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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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_고전에 맞서며
메리 비어드 지음 | 강혜정 옮김 | 글항아리 | 648쪽

데모크리토스의 웃음
제정신인 미치광이
세계의 부조리를 비웃다

 

고전의 묘미는 현재성에 있다. 옛날 문헌을 읽는 이유는 그 시대나 지금이나 똑같이 적용되는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최신작 『고전에 맞서며』의 부제는 ‘전통, 모험, 혁신의 그리스 로마 고전 읽기’다. 전통을 모험하고 혁신을 이끌어낸다는 의미일 테다. 저자인 메리 비어드는 고전학 분야의 전문가로서 BBC 다큐멘터리를 진행한 바 있다. 그는 케임브리지 뉴넘 칼리지 특별연구원이자 고전학과 교수다. 이 책은 그리스 로마 세계를 31가지 주제로 여행한다. 


여류 시인 사포, 알렌사드로스 대왕, 한니발, 율리우스 카이사르, 클레오파트라, 칼리굴라, 네로, 부디카, 타키투드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이들이 책에 등장한다. 유명한 인물들뿐만 아니라 노예, 말단 병사, 백성들의 이야기 역시 나온다. 그들 역시 궁핍과 결혼 생활의 어려움과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다. 


저자 메리 비어드는 서론 ‘고전학에 미래가 있는가?’에서 고전 연구가 쇠퇴한 이유를 자업자득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영국에서는 라틴어 학습이 오랫동안 엄격한 계급적 특권과 사회적 배타성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했습니다”면서 “고전이 제국주의, 서구 모델이 최고라는 유럽중심주의부터 사회적 속물근성, 지루하기 짝이 없는 주입식 교육 행태까지 온갖 문화적, 정치적 잘못과 죄악에 대해 너무나 자주, 편리한 면죄부를 제공해왔”다고 적었다. 

 

 

 

문화적 언어인 ‘고전학’이 쇠퇴하다

 

그렇다면 고전학이란 과연 무엇인가? 좁은 의미로 고전학은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대한 학문적 연구이다. 넓은 의미론 고대 세계를 향한 우리들의 다양한 관심들의 총합이다. 메리 비어드는 고전을 ‘문화적 언어’라고 표현했다. 고전에 대한 여러 시선들은 문화를 낳고, 그 문화에 대한 해석은 또 다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고전에 맞서며』는 1부 고대 그리스, 2부 초기 로마의 영웅과 악당들, 3부 로마 제국 : 황제, 황후, 적들, 4부 밑에서 본 로마, 5부 예술과 문화 : 관광객과 학자들로 이뤄져 있다. 기원전 3세기 로마 사절단이 그리스 식민도시 타렌툼(현재 이탈리아 타란토)를 방문한 적이 있다. 협상 진행 중 그리스인 진영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이로 인해 로마인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하니, 그때나 지금이나 외교가 얼마나 우연적이고 단순한지 알 수 있다.


그리스인들이 웃은 이유는 로마 사절단의 엉망인 그리스어나 로마인의 전통 의상인 토가 때문이라고 고전을 보면 나온다. 토가는 우리가 흔히 보는 로마인들의 옷이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입고 있는 옷이 바로 토가이다. 그리스인들에게는 토가가 우스꽝스럽고 불편해보였다. 그래서 로마인들을 조롱했다. 저자 메리 비어드는 “남을 놀리는 농담을 하는 사람이 역으로 그로 인한 희생자가 되기 쉽다는 것은 고대 ‘웃음학(gelastics)’의 확고한 법칙이었다”며 “웃음은 항상 고대 군주와 폭군들이 애용하는 도구였고 그들에게 대적하는 좋은 무기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예전이나 현재나 제때 적당히 웃어야 생존할 수 있다.  

 

17세기말 앙투안 쿠아펠이 그린 웃음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 / 출처 = 위키미디어.
17세기말 앙투안 쿠아펠이 그린 웃음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 / 출처 = 위키미디어.

 

폭군들이 애용하는 도구였던 ‘웃음’

 

기원전 4세기에 지어진 『필로겔레스』엔 260가지의 우스운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제일 많이 등장하는 건 상상력 없이 다른 이들의 말을 곧이곧대로만 듣는 지식인들이다. 지식인 농담은 희화화 하기 좋은 소재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가 아침에 일어나 20분 동안 어지럽다고 하니, 의사는 그러면 20분이 지난 다음에 일어나라고 답했다. 지금 들어도 답답하고 우습다. 


17세기 말 프랑스 화가 앙투안 쿠아펠은 데모크리토스를 그렸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란 말을 처음 쓴 철학자다. 그는 활짝 웃고 있지만 집게손가락이 보는 이를 가리켜 조금은 으스스하다. 『히포크라테스 서한집』에 따르면, 히포크라테스는 항상 웃는 데모크리토스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온전한 정신 상태라고 봤다. 데모크리토스는 미치광이라고 불렸지만 자신만이 유일하게 세계의 부조리를 알아차린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고전을 통해 웃음의 역사와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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