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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민영감의 두려움
<딸깍발이> 민영감의 두려움
  • 교수신문
  • 승인 2000.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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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09 11:59:12
 ◇ 권오훈 (편집위원 / 한양대)
그럼, 영감님도 두려운 게 있소?”
“가장 두려운 게 나 자신보다 더한 것이 없소. 나의 오른쪽 눈은 사물을 바로 보자는 용이요, 또한 왼쪽 눈은 못 볼 것을 보아서는 안되는 범이라오. 혀 밑엔 말 잘못하면 찍는 도끼를 간직하고 있고, 꼬부라진 팔은 잘못 쓰면 화살로 사람 다치는 활처럼 생기지 않았소. 그리하여 내 마음을 잘 다루면 어린애처럼 착할 것이고, 까딱 잘못하면 오랑캐도 될 수 있으며, 삼가지 못하면 제 스스로 물고 뜯고 끊고 망칠 수도 있지 않겠소? 그러므로 옛 성인의 말씀 가운데서 ‘자기의 사리사욕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仁이다’느니, 또는 ‘邪心을 막고 참된 마음을 갖는다’느니 하였으니, 그들도 일찍이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소.”
꽤 길게 옮겨 쓴 위의 문답은 연암 박지원이 스물 한 살 나던 해인 1757년에 지은 ‘閔翁傳’의 한구절이다.
햇수로 치자면 무릇 234년전에 연암은 소설의 주인공인 민영감의 입을 빌려 자칫 빠져들기 쉬운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을 경계한 셈이다.
요즘 입에 오르내리는 ‘대통령학’이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지는 소상히 아는 바 없으나, 짐작컨대 막중한 지위에 걸맞는 역할을 밝혀내는 데에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대통령의 소임을 마친 당사자를 모셔다가 해부학에서 실습하듯 실체를 한 번 파헤쳐 보겠다는 것이리라.
그러나 얼마전 고려대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캠퍼스 밖에서 전해들은 실상은 참으로 한편의 서글픈 우화를 연상케 한다.
만일 민영감이 타임머신을 타고 두 세기 반을 거슬러와 이 꼬락서니를 보았다면 “에라, 이놈들아! 소시쩍 서당보다 한치도 나아진 게 없네그랴”하고 민옹전 한질을 내던진 채 침을 탁 뱉고 돌아섰을지도 모르겠다.
곧잘 우리는 서양인, 특히 그 중에서도 미국인의 경박성을 꼬집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후보들인 고어와 부시가 대학 내에서 격렬한 토론으로 맞붙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과연 우리네 대학에서도 그것이 가능할 지를 가늠해 본다.
더욱이 여느 할아버지 같은 수수한 차림새의 카터 옹이 옆구리에 연장주머니를 매단 채 지붕 꼭대기에 올라앉아 망치질을 해대는 정경을 접할 때마다, 줄줄이 무리지어 나라 안팎을 휘젓고 다니는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들의 의기양양한 행차에 황당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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