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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솔루션, ‘융합’, ‘역량’, ‘독서’ 교육을 제시하다
철학 솔루션, ‘융합’, ‘역량’, ‘독서’ 교육을 제시하다
  • 이관호
  • 승인 2020.10.02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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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는 책
이제라도 삶을 고쳐 쓸 수 있다면 | 이관호 지음 | 웨일북 | 328쪽

교양대학의 기능이 강화되면서 대학 내 학생은 물론 인접 시민들을 향한 인문학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신입생들에게 전공을 무난히 습득할 수 있는 지적 토양을 마련해 주는 것이 전통적인 대학 교양교육의 역할이었다면, 지금은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는 역량 강화라는 책무까지 요구받고 있다. ‘AI 시대에 맞닥뜨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가’. 대학 교양교육의 성패는 이러한 실용적 요청에 인문학이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출간한 이제라도 삶을 고쳐 쓸 수 있다면은 필자가 교양대학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문제의식을 풀어낸 책이다. 생활 속에서 고민하게 되는 30개의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인문고전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인문적 사유를 가르치는 일과 그것을 현실의 문제와 연결 짓는 일은 다른 영역이다.

 

대중들에게 학문적 성과를 쉽게 전달하는 책들에 비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인문학의 힘을 보여주는 책은 쉬이 보이는 않는다는 점에서 출간의 의의를 찾고 싶다. 현재 교양대학이 수행하고 있는 교과·비교과 프로그램들의 주된 전략과 관련지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몇 대목을 소개하겠다.

 

 

융합교육, 하나의 이치 깨닫는 것

 

첫째, 융합 교육이다. 대부분의 대학은 4차산업혁명시대를 언급하면서 융합형 인재만이 미래사회를 선도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오래 전 공자의 공부법은 학생들에게 이에 대한 모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 그는 제자인 자공에게 내가 많이 배워서 지식인이 된 줄 아느냐?”고 물은 후 그렇지 않다. 나는 하나로 세상의 이치를 꿰뚫었다고 자답했다. 이처럼 융합은 배움을 통해 형성된 자신의 관점을 하나로 삼아 다양한 지식을 엮어내는 힘에서 나온다.

 

일이관지(一以貫之)의 방식을 활용하는 융합형 지식인으로 유발 하라리를 꼽을 수 있다. 미래문명에 대한 그의 목소리에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미래학이나 진화생물학을 전공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중세 전쟁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다. 그는 자신의 인문학을 기반으로 인접 지식을 입체적으로 연결해 인류의 문명을 통찰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융합적 사유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가 AI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한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아마존보다 구글의 알고리즘보다 우리 자신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한다며 서양철학의 원류인 소크라테스의 결론으로 돌아왔다. 이 책의 미래가 두려울 때: 소크라테스, 유발 하라리편에서 다루었다.

 

둘째, 역량 교육이다. 졸업 후 직장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을 대학이 교육해야 한다는 요청은 당연한 듯 들리지만 교양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들에게는 불편한 것이 현실이다. 인문학은 본디 실용적인 목표를 갖지 않고 게다가 교원들이 직장생활을 충분히 경험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현실에 애정을 갖고 각자의 연구 성과를 들여다보면 그런 역량 강화를 위한 보석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경제성이라는 단어가 인문학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성을 추구하는 근대의 경향에 영향을 끼친 오컴을 통해 학생들은 쇼핑뿐 아니라 사유에도 경제성이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이른바 오컴의 면도날로 불필요한 가정들을 최대한 배제하며 논의를 전개하는 훈련을 해볼 수 있다.

 

자신의 과거와 대화를 나누다

 

또한 많은 학생은 입사 면접장에서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어려움을 겪는다. 인문적으로 접근해 보면 이 고민은 실상 자신의 과거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학자와 과거 사실 간의 관계를 다룬 글이지만, 이는 학생들 각자의 역사인 이력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의 과거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학생은 지나온 삶에서 새로운 요소를 발견하고 차별화된 스토리텔링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회의 시간을 줄이고 싶을 때: 윌리엄 오컴이력서와 자소서를 쓸 때: 에드워드 핼릿 카에서 다루었다.

 

셋째, 독서 교육이다. 대학들은 필수 교양 도서를 지정하고 학생들에게 독서를 독려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학생들이 한 번 읽고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이 적지 않다. 입시 때문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지 못했던 학생들은 입학 후 한껏 독서의 의욕을 갖지만, 고전의 무게에 눌린 후 효과적인 독서의 방법을 묻곤 한다. 이럴 때 인문학의 역할은 세세한 독서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일이다.

 

양명학을 창시한 왕수인은 독서의 수준을 3단계로 나누고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기억하려고만 한다면 이해하지 못하게 되며, 단지 이해하려고만 하면 자신의 본체(마음)를 밝히지 못할 것이다.” 또 이해가 어려운 글귀를 만났을 때 너무 얽매이지 말라면서 고전은 사람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독서의 목표는 책 그 자체가 아니라 읽는 사람 내면의 강화에 있다. 이러한 조언은 입학을 위해서, 취업을 위해서 공부해 온 다수의 학생을 주체적인 독서의 자세로 이끄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효과적인 독서법이 궁금할 때: 왕수인편에서 다루었다.

 

카프카는 책은 우리 안의 얼어있는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다가오는 시대에 인문학이 여전히 교양교육을 주도하려면 스스로 도끼가 되어 실용적인 역량 강화에 기여해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그것으로 얼어붙은 내면의 바다를 열심히 깨면 무엇이 나올까? 그것을 깨고 나오는 무엇도 실상 자기 자신이다.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아직 내면에 숨어있는 또 다른 나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다. 인문학이라는 연장을 통해 삶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일. 이런 경험들은 학생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에너지로 작용할 것이다. 이제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말고 그것을 연장으로 만들어내는 연구를 병행하자. 그리고 연장을 그들에게 쥐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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